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옫아 Jan 11. 2023

나의 20대에게

이제 나는 너를 부르고 너를 주워 먹겠지

나는 말야, 너와의 이별을 꽤 오랫동안 생각해왔어. 

후회 없이 앞으로 나아갔기에 분명 뿌듯함만이 자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오만이더라. 

마지막 장을 이내 닫는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감, 서러움이 몰려와서 꽤 당황스러운 연말연시였어. 

그렇지만 너를 잘 보내주고 싶어서 나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지. 


가족들의 품에서 벗어나 호수가 아름답던 학교에서 16번의 계절을 함께했고, 

새로운 전공을 만나서 시야를 넓혀갔고,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로 교직이수를 밟았어.

대학생활 4년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2016년 4월 교생실습 기간이라 말할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조금 더 잘 즐기지 못했음을 인정하게 되는 학업 부문은 눈물과 웃음의 범벅이었다. 

장학금과 학점에 목매어 울면서 공부하고,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왔을 땐 이내 기뻐하다가 허무해지는, 그런 나날들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매번 처음인양 힘껏 감정의 파도를 받아들였지. 

어느 정도의 인정 욕구와 어느 정도의 내 솔직한 마음이 모여, 나는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어. 

왜 이렇게 일찍 떠나냐는 주변 지인들의 아쉬움 속에서 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지.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과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가볍게 여겼지만, 역시 사람 일은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어.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로웠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내 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건 다정한 마음들 뿐이더라. 나도 그런 선배나 동료로 지금 자리하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종종 물어보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는 직장 동료들과 차츰 유대관계를 쌓아가고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더 즐거워지며 차츰 직장생활 적응 완료에 다가섰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푹 빠지게 된 사람도 만났어. 

오빠를 만나기 며칠 전 본 타로점에서 ‘내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는, 그래서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도록 만드는 사람을 만난다’고 들었는데 그게 진짜일 줄이야. 

다른 지점이 많아 서로의 마음을 진실로 확인하기에 어려웠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으나, 이내 우리는 수평선이 아닌 일직선을 향해 수 많은 점들을 찍고 있지. 당신과 함께될 내일은 분명 다정하고 깊을 거라고 생각해.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은 것도 재밌고 특별한 경험이었어. 

내가 만난 20대의 충격적인 사건을 내 목소리로 하나의 논문으로 담고, 대상이라는 상도 받고.

박사 과정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학업에 열중했던 어떤 시간들은 나의 새로운 일부가 되었음은 확실해.


이렇게 나는 몇 가지는 손꼽아 이야기할 수 있어. 

그렇지만 더 소중한 건 더 사소한 것들이 아니겠니?

하나하나 다 텍스트로 담을 수 없는 값진 경험들과 소중한 추억들이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어. 

그걸 만들어준 사람들, 나의 감정들, 통과의례와 같은 시간들이 지금의 날 만든 거고, 나는 그 힘으로 너와의 이별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지. 


난 말야, 너를 만나 충분히 슬펐고, 충분히 행복했고 충분히 나로 살아갈 수 있었어.

남들도 다 흘려 보내주는 20대임에도 내가 끝끝내 너를 붙잡게 되는 건 그만큼 너에 대한 나의 유별난 애정 때문이겠지. 유별나다는 표현 대신 특별하다고 정정해서 들어주길 바랄 뿐이야. 

나는 이제 너를 지나쳐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해. 

그 여정을 시작하기 앞서 네가 알려준 많은 것들, 네가 심어준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할 거라고 약속해. 


더 좋은 햇살이 내리고 있는 나날들로 나는 걸어갈 거야. 

이따금 네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너를 부르고 너를 주워 먹겠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인데도 말야. 

그럴 땐 너무 놀라거나 다그치는 대신, “그래, 나는 여기에 있다고, 언제까지나 변함 없이 있을 거야”라고 다정히 이야기 해줘.  

이것 하나 부탁하고, 나는 이제 즐거운 시간들로 나아갈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나의 20대야. 


매거진의 이전글 내 슬픈 조각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