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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Nov 11. 2022

내 슬픈 조각들에게,

애틋한 나의 친구들로 인하여


슬픔? 그 귀한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지


- 문정희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中 '망한 사랑 노래' 일부 -



스무 살이 끝나가던 무렵 만든 나의 블로그에는 약 2,172개의 글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아끼는 글들을 몇 개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슬픔에 대한 포스팅도 하나 있다. 애써 좋은 것들로만 채워도 부족할 텐데, 굳이 나의 슬픈 조각들을 모아둔 포스팅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무얼까. 심지어 해당 포스팅의 이름은(*현재는 비공개 게시글이다) '내 슬픈 조각들(겨우 잠이 드는 그런 밤이 있다)'이다. 이 게시글의 시작은 2016년 칼졸업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내게 닥친 어느 시련으로 시작한다. (*나는 학부시절 원전공과 교직이수 그리고 복수전공까지 총 3가지 전공을 이수하고 있었지만, 휴학 없이 그대로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던 대학생이었다. 나는 삶의 매 시기마다 과제가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는데, 이를테면 입시와 졸업과 취업이 뒤쳐지지 않게 제때(?) 이루어져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 정상 이데올로기에 미쳐버린 자였다. 만일 조금이라도 삐끗하게 된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로만 알았던, 다소 안타까운 아이였다.)


(겨우) 23살이 적는 20대에 마주한 슬픔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예상 수능 등급컷이 바뀌어 원하던 대학의 학과에 입학하지 못하게 생겼을 때, 납득되지 않는 성적이 나와 학점 평균이 무너졌을 때, 당연히 받아야 할 동아리 장학금을 받지 못했을 때, 토익에 대한 부담감으로 몸서리칠 때, 교육실습(교생)을 나가야 해서 수업을 한 달 정도 빠지게 되었는데 해당 수업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등등 어린 나에게는 꽤 컸던 고통들이 하나하나 나열되어 있다. 얼마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으면 앉은 자리에서 그 슬픔들을 쭉 나열할 수 있었던 걸까. 사실 그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 게시글을 쓰던 나의 1인실 기숙사 방의 분위기가 생생하다. 11시면 자던 내가 자정이 넘어가던 시각 내 어두운 방에서 책상 조명 하나 켜놓고 눈물 콧물 흘리며 알알이 꿰던 내 슬픈 조각들.


그러나 그 '귀한' 슬픔들이 가져다준 결과들은 꽤 신선했다. 처음 나열한 칼졸업하지 못할 것 같은 슬픔부터 이야기해볼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결국 놀라운 기적을 만들 듯, 나는 4년 대학생활에서 처음으로 매크로라는 편법을 활용해 수강신청 대기에 성공해,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함으로써 결국 4년 칼졸업을 완성시켰다. 예상 수능 등급컷이 바뀌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일감호가 눈부시게 예쁘던 나의 건국대. 납득되지 못한 성적이라고 해봤자 B였으나, 당시 모범생이던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한 억울한 마음에 칼을 갈듯이 준비해 자격증을 따고, 그 다음 학기에 20학점에 4.5 올 에이플을 받으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응당 받아야 할 동아리 장학금을 나 혼자 받지 못해서 속상했을 때 당시 편집장 언니가 관련 부서에 가서 잘 설득해 돈을 받아내주었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따스한 이타적인 노력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꼈더라지. 토익에 대한 부담감은 꽤 괜찮은 점수로 이겨냈고, 교생실습으로 인한 부당한 대우 역시 나 홀로 열심히 공부하며 A 학점을 받아냈다.


귀한 슬픔들은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이끌었다. 감정적 소모는 엄청났지만, 기어코 받아낸 결과물들도 엄청났다. 나의 노력들, 그리고 누군가의 노력들로 완성된 완벽한 나의 슬픈 조각 퍼레이드. 극적인 변화만이 하나의 이야기라고들 하나. 슬픈 조각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하나의 서사가 뚝딱 완성된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아서 마냥 기쁘진 않다. 그 과정 속에서 충분히 상처 입었던 '나'들을 생각하면 애틋해지곤 한다. 그 슬픔을 굳이 변화시키려 노력했던 여정들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거나 잠시라도 좋으니 만끽할만한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최근에도 나는 내 슬픈 조각들을 줍는다. 과거와 달리 슬픔에 오래 매몰되진 않는다. 대신 깊게 짧게 슬퍼하고 툴툴 털고 일어날 뿐이다. 여전히 굳이 겪어도 되지 않을 감정소모에 깊이 투자하곤 한다. 굵게 슬퍼하고 짧게 일어선다. 그렇게 만들어준 하나의 문장이 있다. 어느 사주 어플에서 본 내 사주 관련된 문장인데.


"전반적으로 볼 때 다소 인생의 굴곡은 있는 편이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인생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여 너무 기운이 빠져 있지 말고 항상 본인과 어울리는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니, 정말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문장 아닌가? 우울해 하지 말고, 밝게 일어나. 그래도 뭐랄까, 이 흔하고 당연한 말이 내 슬픈 조각 때마다 위안이 된다. 그래 난 밝은 모습이 어울려. 기운 빠지지 말자. 힘내자. 할 수 있어. 이런 식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읊게 된달까. 그래서인지 저 사주 어플 속 이야기는 씩씩하게 일어나게 되는 별 거 아닌 나의 기도문 같은 존재다. 그렇다, 나는 그저 기대고 싶을 뿐이다. 이 슬픔도 언젠가 지나가겠고 그것은 시간 상의 문제이지만 그래도 나는 나답게 나아가야지, 이내 제대로 일어서고 싶다. 그 힘을 그저 저 문장에서 얻는 것일 뿐이다.


내 귀한 슬픈 조각들, 애틋한 나의 친구들이 있어 인생이 더 깊어지는 거겠지만, 그래도 가급적 덜 마주하고 싶긴 하다. 너희들로 인해 나는 충분히 슬퍼하고 또 뜻밖의 기쁨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귀한 너희들이기에 그 명성에 걸맞게 더디게, 드물게 나를 찾아와주길. 나를 찾아왔을 때는 나는 또 하염없이 무너지고 고통 받겠지만, 또 그 전과는 다른 세계에 기꺼이 나아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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