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은 신나는 기쁨일까? 부담스러운 무게감일까?
누군가의 자랑이 된다는 것, 난 그 무게와 즐거움에 대해 종종 생각해 왔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은 신나는 기쁨일까? 혹은 부담스러운 무게감일까?
나에겐 만난 지 5년 정도 되는 남자친구가 있다.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 사랑스럽다와 자랑스럽다를 헷갈리는 게 아니냐고? 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자랑과 사랑은 같은 결이 아닌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늘어놓는 남자친구 자랑에 대해 흔히들 이야기하는 콩깍지의 일환이라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오직 그 차원으로 규정하기에는 나의 행동이 언제나 올곧게 이어져 왔다. 오빠의 멋진 부분들, 그러니까 나의 자랑인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때면 나는 언제나 기쁨에 들떴고, 그 시간들이 소중히 다가왔다. 그렇게 자랑을 마치고 나면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을 새삼 다시 확인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멋진 구석을 하나씩 다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기가 돌았다.
남자친구의 (내 눈에만 그렇다고 오빠는 주장하지만) 잘생긴 얼굴과 상냥한 태도, 깊은 다정함과 특별한 지점들을 하나씩 읊는 게 너무도 즐겁다고 오빠에게 종종 고백해왔다. 그 어느 날도 별다를 것 없이 오빠와 통화하며, “난 다른 사람들에게 오빠를 자랑하는 게 재밌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빠는 나의 이야기를 듣다가 웃으며 남자친구가 대학교 합격 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자친구가 (정확한 학교명은 밝힐 수 없으나) 어느 대학교 합격 후 남자친구의 가족분들께서 타인에게 오빠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다. 누군가의 자랑일 수도 있다는 게, 너무도 감사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와 달리 낯가림이 있는 오빠가 타인들에게 본인이 어디 대학교를 입학했는지 밝혀졌을 때, 설령 그게 최고의 명문대라고 하더라도, 오빠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어렵고 껄끄러운 상황 속에 본인이 놓여진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빠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굳이 물어보진 않았으나, 대신 내 머리 속엔 또 한 번 물음표가 생겨났다. 누군가의 자랑이 된다는 것이 가진 무게감과 즐거움, 그 둘 중 어느 비중이 높은지, 이제는 제대로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자랑으로 인해 얻는 묘한 복잡함을 이제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경우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는 게 충분히 즐겁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준다는 사실도 고맙고, 그들의 자랑이 됨으로써 나 역시 자기 효능감도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경우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는 게 어렵다. 바로 나를 너무도 깊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때다. 왜 나는 오히려 날 아껴주는 이들로부터 받는 자랑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나를 깊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다. 어렸을 때와 달리 이제 나는 누군가 나를 자랑스러워해도, 나를 사랑해도, 나를 미워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그 영역은 그들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준다면 얼마든지 그들이 원하는 수준까지도 맞춰줄 수 있을 것 같다. 자랑을 위한 포장의 영역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를 깊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조금 어렵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렵다기보단 오지 않을 것에 대한 지레 겁먹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일지도.
나는 엄마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나에 대한 자랑을 하는 게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렇게 타인들 앞에서는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보고 싶은 나인데도, 왜 어째서 나를 키워주시고 지금도 사랑해주시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 내 멋진 모습이 공유되는 게 어려울까. 나는 그 멋진 모습이 무진장 애를 써야 얻을 수 있는 힘든 결과물임을 잘 안다. 진실로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면 진실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년을 꼬박 쏟아 부은 석사학위 졸업논문, 4년의 피와 눈물을 갈아 완성된 대리 승진 등.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 가지실 내 자랑스러운 모습, 그렇게 또 한 번의 기대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코 그분들의 자랑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자랑이 되기 위해 내가 건너고 넘어야 할 산들을 넘어서야 얻게 될 내 모습이 제 모습의 전부로 생각하실까봐, 그 모습이야말로 그분들의 자랑이자 나 자체의 모습이 될까봐 그게 걱정이 된다.
물론 내가 그런 난관들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아껴 주실 분들이지만, 나는 그분들이 나로 인해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내가 더 빛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 되어 그 곁에 자리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내가 맞바꾸어야 하는 무거운 짐들로 인해 나는 자꾸만 그들의 자랑이 되고 싶다가도, 자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기도 하다. 사실 난 이게 다 나의 오만이라는 걸 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자랑의 무게감을 주는 게 아니다. 자랑이 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내게 자랑의 무게감을 힘껏 안겨주는 거다. 나는 그들의 자랑스러운 존재로서 오롯이 기뻐할 수 있음에도,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기어코 내 안에서 만들어 내는 거다. 왜냐면 난 더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으니까. 더 큰 기쁨을 안겨주고 싶으니까, 지금보다 더 큰 자랑으로 향하는 무거운 길을 상상하게 되는 거다.
누군가의 자랑이 된다는 것. 나는 쉽게 누군가를 내 자랑으로 호명하곤 했으나, 정작 내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을 때의 즐거운 무게감에 대해선 살짝 외면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