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퇴근길에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듭 반복해야 하는 자들에게 바칩니다.
어느 평범한 출근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비게이션은 통행량으로 인해 막히는 도로 상황을 반영해 예상 도착시각을 알려 주지만,
정작 운전자가 이 막히는 도로를 헤치고 목적지를 향한 차선 변경에 성공할 것이라는 가설까지 어떻게 세우는가?
그러니까,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위한 길을 설명하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바에 따르면, 내가 지금 우회전을 어떻게든 성공해서 새로운 도로의 마지막 차선에 진입한 후. 다시 무려 4개의 차선을 변경해서 좌회전 신호를 받을 수 있는 1차선까지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내가 성공하리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네비게이션의 믿음은 어떤 걸까.
벌써 운전 7년차이지만, 여전히 운전을 어려워하고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초행길에 올라서야 할 때면 사전에 몇 번의 네비게이션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안심이 된다. 그럼에도 막상 운전대를 잡았을 때 걱정되는 순간은 딱 두 가지이다. 바로 통행량이 많아 차들로 꽉 막힌 도로와 우회전과 좌회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차선 변경. 그런데 이제 두 가지가 합쳐질 경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다. 그 많은 차들을 뚫고, 절대 끼워주지 않을 것 같은 틈을 비집고 차선변경을 해야 할 때를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만약 내 차에 다른 동행자가 탑승해 있다면 그에게 차 문을 내려서 바깥으로 다른 차를 향해 손이라도 빌면서 차선변경 해주십샤, 할텐데 생각해 볼 뿐이다.
우리 집 근처에는 IC가 있어서 통행량이 많고, 특히 퇴근시간은 고역이다. 집으로 향하는 5차선 가운데 1차선이 좌회전 신호, 5차선이 우회전 신호를 받는 차선이다. 이때 보통 좌회전이나 직진하는 차들이 많아서 5차선은 상대적으로 통행량이 적어서 한산하고 뚫려 있는데, 보통 차들이 5차선을 이용해 신호 직전에 4차선으로 (고의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껴들곤 한다. 때문에 4차선에서 급정거할 때가 종종 있어서(흑흑 왜 3차선에 서 있지 않냐고 물으시거든, 그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을 해야 해서 직진 신호 차선의 마지막에 서있답니다..) 해당 구간을 지나갈 때면 나도 평상시보다 더 신경을 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와, 저렇게 가는 차들의 네비게이션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주인님이 예상시간보다 빨리 도착했어요!”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나의 네비게이션은 ‘주인이 역시나 차선 변경에 겁 먹고 있어서, 차선 변경하기 전부터 가장 수월한 차선에 소심하게 대기하고 있을 테니,, 아마도 제가 생각한 시간보다는 역시나 늦어지시겠군요’라고 생각하려나.
차선 변경이 아니더라도, 도로 위 변수는 늘 많다. 접촉 사고로 인한 차량 통제, 초중고의 개학과 동시에 평상시보다 막히는 도로 상황 등 여러 변수에서도 나는 꿋꿋이 미리 바뀔 차선 변경을 위한 차선에 얌전히 대기한다. 다른 차선을 이용하다가 차선 변경이 필요한 순간, 재빨리 원하는 차선으로의 진입을 성공하거나 혹은 깜빡이를 들이대며 (혹은 정말 뻔뻔하게도 차 머리만 넣으며) 이동하는 것. 그것은 내게 판타지나 대담한 상상력에만 불과할 뿐이다. 때론 나는 이렇게 착실하게 차선 변경을 위해 줄 서고 있는데, 앞에서 끼어들어 나보다 빨리 통과하는 차들을 보면, 비범하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을 느끼곤 하지만. 그래도 저 차들은 차선 변경을 미리 안내받지 못했을 거야, 혹은 바쁜 일이 있어서겠지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물론 능숙한 자들일 확률이 더 높지만.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의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차가 막혀서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혹은 내가 차선 변경을 어려워 해서 (그리하여 남들만큼 잘 끼어들지 못하고 대기하느라) 예상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의 네비게이션에게 하소연하고 싶다. 요즘 AI 시대라는데 너도 이제는 내게 맞춰줄 순 없겠느냐, 나랑 함께한 지 어느덧 7년이다, 얘. 내가 차선 변경 어려워하는 것 정도는 이제 파악해서 미리미리 어느 차선인지 더 정확히 알려주고, 예상 도착 시간도 늦춰주면 안되겠니?
매일 출퇴근길에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듭 반복해야 하는 숙명. 나는 과연 언제쯤 자연스럽게 원하는 타이밍에 차선 변경을 할 수 있을련지, 그 날이 오긴 할련지. 오늘도 내 도착시간을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게 이야기하는 내비게이션에게 물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