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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Nov 14. 2023

입사 만 7년을 앞두고,

누군가의 진심 어린 축하와 축복은 든든한 뿌리가 되지요.

약 한 달 뒤면 현 회사에 입사한 지 만 7년이 된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희로애락을 전부 경험한 7년이었다. 여기까지 성실히 달려왔음에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직무에 임하고 있어서, 사실상 업무에 있어 크게 달라진 바는 없지만-물론 연차에 따라서 업무 강도는 차이가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의 전성기는 오히려 사원 때였던 것 같기도. 그때 거의 팀장 대신 업무를 해왔으니까-, 그 사이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은 2번 바뀌었고, 중간에 조직개편이 이뤄지면서 소속과 함께 팀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간의 시간들을 긍정하며, 그렇게 만 7년을 소소히 자축하고 싶다. 단, 그동안 회사에서 내가 잘해온 일들과 이뤄낸 성과들 하나하나를 짚는 대신, 그 시작으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처음 이 회사를 들어오기 전, 그러니까 약 7년 전으로.


2016년 10월. 4학년 2학기 중간고사 시기에 나는 현 회사의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시 김영란법 이슈로 인하여 취업계가 내는 것이 쉽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교수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과제 대체 혹은 기말고사 일정 등을 조정했다. 취업 소식에 많이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지만, 지금까지도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내 마음 한켠에 은은한 온도로 남아 있는 한 교수님의 특별한 축하가 있다. 그 축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축하의 발화자, 전형연 교수님(실명 언급에 대해 오래 생각해 봤지만, 꼭 남기고 싶어서 밝혀본다)에 대한 이야기를 내 브런치 공간에 담고 싶다.


전형연 교수님은 당시 내가 다니던 광진구 K대학교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님이셨다. 나는 국어국문학과 소속이었지만,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복수전공으로 하는 학생이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인기가 매우 높았던 학과로, 전과자와 복수전공 및 부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수강신청의 난이도는 늘 높았으며, 실제 수업 참석 학생의 밀집도도 상당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국어국문학과 수업보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수업이 더 흥미로웠고, 실제 적성에도 잘 맞아서 전과도 고려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본과 교수님들보다 해당학과 교수님들에게 받는 애정과 관심이 더 컸는데, 그 중에서도 전형연 교수님은 특별한 분이셨다.


교수님의 수업 과제 업로드 중에 한 번 오류가 있어서 내 첨부파일이 올라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전형연 교수님께서 직접 내게 연락을 주셨는데, 그때 하셨던 말씀이 교수님께서 과제 누락을 확인했는데 “‘에이스 (내 이름)’가 그럴 리 없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그때쯤 타 전공 학생으로서 갖는 작은 소심함과 위축감이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르르 녹아지고 내 가슴에는 오직 “나는 전형연 교수님의 에이스”라는 자부심만 남았다. 덕분에 더더욱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수업에 더 열정적으로 참여했고-막학기 취업계로 인한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 전부 다 A 이상 학점을 기록했다- 전형연 교수님 수업은 꼭 전부 다 수강하고자 했다.


특히 교수님께서는 내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당시, ‘마케팅’직무보다는 ‘홍보’분야가 더 내게 잘 맞을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덕분에 진로 방향을 정해서 취업을 준비했고, 내가 원하던 조건의 일반 사기업 홍보 직무 공개채용에 최종합격할 수 있었다. 최종합격 소식을 들고 교수님 방을 찾아가던 날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교수님 방문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왜냐하면 내가 임하게 될 직무는 교수님과 함께 논의했던 홍보 분야가 맞지만, 회사 직종은…. 내가 생각하던 분야와 전혀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뮤지컬, 연극 등 문화 예술 혹은 콘텐츠 관련 부문의 홍보 직무로 일하고 싶었지만, 내가 다니게 될 회사는 1차 산업인 축산업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문화예술 홍보가 더 폼이 난다고(!) 생각했고, 축산업 홍보 부문이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것이면 어떡하지, 살짝 겁이 났던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가 그렇게 크게 자랑스럽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물론 그건 지금도 조금 난제이긴 하다-. 그래도 우선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다 부합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교수님 방문을 두드렸다.


합격 소식을 듣고, 교수님께선 매우 기뻐해 주심과 함께 더없이 감사한 축하의 말씀을 해주셨다. 토시 하나 안 틀린 정확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래와 같은 메시지와 키워드가 담긴 말씀이었다.


(내 이름)야, 너무 축하한다. 정말 잘 되었어. 네가 원하던 조건에 부합하는 홍보 직무라니, 정말로 축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축산업이라니! 정말 재밌겠다! 축산업은 1차 산업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문의 산업이기 때문에 홍보할 거리들이 꽤 많을 거야. 아직까지도 홍보의 큰 필요성을 못 느꼈던 분야일 수 있어서, 오히려 네가 하나씩 찾아내서 일하는 분명 있을 거고, 무엇보다 해당 산업은 우리 사회 속 필수 산업이다보니 그 어떤 부문의 산업보다 네가 홍보의 책임감을 느끼고 즐겁게 업무에 임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 (내 이름)라면, 정말 잘해낼 거야!


당시 나는 교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스며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오늘 내게 주신 교수님의 언어들로 몇 년 동안 잘 살겠구나. 내가 있을 자리에 자부심을 느끼고, 내 일을 더 사랑하려고, 더 애착을 가지려 노력하겠구나.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정말로 의미 있는 노력들임을 교수님 덕분에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빛은 바래지기 마련. 아무래도 생업이다보니, 종종 내 일을 스스로 관조적인 시선으로 볼 때가 있고, 꽤 자주 출근하기 싫어 노래를 부를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내 자리에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위축되지 않고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며 올곧게 서 있을 수 있었던 건 교수님의 말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 뿌리를 단단히 잘 잡아 주신 덕분에 나는 그 방향대로 서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고통스럽지만 의미 있는 시간과 성과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 내게 전해 주신 따뜻한 축하의 불씨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씨는 따뜻한 그 온도 그대로 내 몸 속 어딘가에 자리하며 나의 위축을 기꺼이 멈추고, 어쩌면 조금 진부한 단어 ‘초심’을 상기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그래왔듯. 밥벌이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일에 대한 조금의 애정과 나름의 의미를 잃지 않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성실히 나아가고 싶다. 그러다보면, 이윽고 교수님이 내게 해준 조언과 예언 그 사이 어디쯤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지 않을까.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기록합니다.

제자들을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해 주시는 사랑하는 전형연 교수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내부 발표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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