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MBA하다 (4)
인문학으로 MBA하다 (4)
2023 Fall - Mod 1
Microeconomics.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미시경제, #철학, #도올김용옥, #미분과적분, #분석명제와경험명제
‘애쓴다 애써…’
제시 데이비스 교수가 가르치는 Microeconomics 수업이 2주차에 접어 들었을무렵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차는 경우가 많았다. Microeconomics 수업은 강의 제목과는 달리 학부 경제원론 수준의 경제학 기초 이론을 다루었는데 1주차에 수요와 생산 곡선에 대해 배운 이후 2주차 부터는 수요와 생산의 ‘가격 탄력성’ 개념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격 탄력성은 제품의 가격이 변화할 때 제품의 수요와 생산 수량이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주유소 기름처럼 가격 탄력성이 낮은 제품은 가격 변화가 심해도 수요가 크게 바뀌지 않고, (즉 기름값이 많이 올라도 사람들이 주유하는 양은 크게 감소하진 않는다.)
반면 대체재가 많은 음료수 시장의 경우 특정 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사람들은 비슷한 맛을 내는 다른 음료를 선택한다. 음료수 시장은 일반적으로 수요에 대한 가격 탄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가격 탄력성은 가격과 수량의 변화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우는 미적분과 도함수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미분에서 배운 도함수는 어떤 함수 f(x)가 있을 때, 특정한 점 x에서의 순간적인 변화율(즉, 함수의 기울기)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Microeconomics에서 배운 수요-생산 곡선 위의 순간적인 변화율인 탄력도와 같은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수요 곡선이 qd = 16-2p 라고 할 때 이 수요 곡선의 도함수, 즉 한계변화율은 qd를 p에 대해 미분한 값인 -2와 같고, -2에 p/q를 곱하면 가격 탄력도가 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미적분 난이도에 비교해보면 16-2p를 p에 대해 미분하는 것은 장난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나와 함께 수업을 듣는 63명의 학생 대부분 대학교 혹은 고등학교 때 미적분(Calculus)을 전혀 배운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내 딸은 나와 함께 미국에서 2년 동안 머물며 현지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을 다녔는데 한국 초등학교에서 같은 학년에 배우는 수학 문제의 난이도를 비교해보니 저학년 때부터 큰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가져온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초등수학 문제집을 열어보니 네 자리 수에 대한 이해, 곱셈구구, 아날로그 시계 읽기, 덧셈과 곱셈을 응용한 규칙 찾기 등을 배우지만 같은 학년 미국에서 배우는 수학은 꽤 쉬운 편이다.
거실 소파에서 Rainbow Magic 시리즈 책을 보던 아이에게 “요새 학교에서 네 자리 수 개념을 배워?” 라고 물어보니(그 당시 아이는 2학년 2학기였다), “네 자리 수? 세 자리 수도 아직 안 배웠어. 우리가 하는 건 50+10=60 이런 걸 배우고 있다고.” 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국과 미국의 수학 교육 중 무엇이 더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배우는 것이 다르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배우는 난이도의 격차도 달라지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우지 않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사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강남 대치동에서는 초등학교 때 이미 <수학의 정석>을 배우고 미적분을 ‘마스터’ 하거나 ‘끝낸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기사를 읽었는데, 과연 그것이 정상인가?, 그리고 무엇을 끝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제시 교수는 가격 탄력성 개념을 가르치며 우리들에게 “나중에 가격 탄력성 문제를 풀 때는 항상 이 한계변화율 값이 문제에서 주어질 겁니다. 여러분이 따로 구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미적분을 안배웠으니까…” 라고 웃으며 이야기했고 사실 나 또는 인도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미국 학생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제시 교수를 보며 애쓴다고 했던 것은 일종의 연민에 가까웠다. 수학적인 이해도를 바탕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에서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여 최대한 수학적인 공식을 배제하는 상황이 웃프기도 했다.
수학, 특히 미적분은 중고등학교 내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나는 소위 이해찬 마지막 세대로, 199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부터 2004년도 수능까지 적용된 6차 교육과정을 받은 마지막 학생이기도 했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인문계열 학생들도 꽤 심도있는 수학을 필수적으로 배웠다. 1학년 때 배우는 공통수학을 지나 2학년부터의 수학1부터는 미적분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원래의 함수를 미분하면 뭔가 작아지고 적분하면 뭔가 커지는 식으로 미분과 적분이 서로 연결된 개념이라는 것, 그리고 함수(선)을 미분하면 순간의 기울기(점)이 되고 적분하면 함수 이하의 전체 면적(면)이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경영학과에서도 미적분을 쓸 일이 많은지, 수능을 보고 며칠 뒤 2학기 수시모집 1차전형에 통과한 뒤 2차전형 시험을 볼때도 미적분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오후에는 국어 논술 문제를 풀고 오전에는 미적분 수학 문제를 답안지에 가득 적어 제출했는데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운 것이 내가 마지막인지, 다음 7차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웠다는 점에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미적분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이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최근에는 인문계가 아니라 자연계마저도 미적분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배우는 모양이다…
미적분 이야기를 하니 신이 난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자.
수능 점수만으로는 지금 대학에 오기 어려웠을 것이고 다행히 2학기 수시모집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때문인지 미적분을 나는 대학에 와서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대학 수학과에서는 미적분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서 대학교 3학년 1학기 때 수학과에서 개설한 <기초 수학과 미적분학 및 연습(MATH163)> 이라는 그들의 전공필수 과목을 교양과목으로 들었는데, 꽤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따라가니 A+ 학점을 받으며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그 다음 해인 4학년 1학기 때 두 개의 수학과 전공 필수 과목을 추가로 신청했다. <해석학1 및 연습(MATH211)>과 <정수론(MATH223)>이었다. 여기에서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해석학>은 극한 개념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미적분 수업과 유사했지만 과목의 목적과 성격은 전혀 달랐다. <해석학>은 미적분을 도구로 삼아 함수의 연속성에 관한 성질을 연구하는 것으로 단순한 계산보다는 논리적인 추론 학문에 가까웠다. <해석학> 문제는 언제나 “왜 이런것인지 증명하시오.”로 끝나곤 했고, 나는 그냥 계산하니 답이 그렇게 나오니까요… 라고 속으로 분노를 삼키며 수업업을 따라가기 바빴다. 나는 <해석학> 수업 내내 고전했고 결국 앞서 미적분 수업에서 A+를 받은 것과는 달리 이 수업에서는 거의 최하점인 B를 받았다. 그래도 <해석학>은 양호한 편이었다. 함께 수강신청했던 <정수론>은 1+1이 왜 2인지를 논증하는 철학 과목에 가까웠다. 나는 한 번 듣고 <정수론> 수업을 드랍했다.
그때 <해석학>이나 <정수론> 수업을 들으며 내가 종종 떠올렸던 질문은 “도대체 이런 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였다. 내가 전공하던 경영학은 굉장히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현실 세상을 기초로 해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을 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거나 추론해야 하는 과목의 유용함,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는 질문은 Microeconomics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이 종종 말하는 바이기도 했다. 단순히 그들이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우지 않아서, 경제학 가격 탄력성을 이해하기 위한 도함수 개념을 몰라서 “도대체 이런 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는 자신들은 ‘경영학’을 배우러 왔는데 왜 성격이 다른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고, 이렇게 수학 공식과 x축, y축으로 구성된 그래프로 배운 강의실 속 지식이 그들이 MBA를 통해 추구하는 비즈니스 리더가 되는 것의 연계성을 잘 찾지 못하겠다는 질문이었다.
MBA 1학년 때 배우는 대다수 전공 필수 과목이 그렇지만 Microeconomics 수업 역시 6명으로 이루어진 스터디 그룹이 함께 그룹 과제를 다섯 번이나 해야 했는데, 공강 시간에 스터디룸에 6명이 모이면 우선 Microeconomics 수업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Financial tools 수업은 월가 트레이더를 꿈꾸는 이들이 배우는 재무와 금융에 대한 기초과목이기 때문에 왜 배우는지 이해가 되었고, Marketing 수업이나 Strategy 수업은 비록 그 방면의 진로를 꿈꾸지는 않더라도 워낙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에게 크게 부담이 없는 수업이었던 반면 Microeconomics 수업은 배우는 것도 많았고 배우는 것 대부분이 수학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함께 모이면 문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이걸 배우지?” 이 질문을 던지며 또 신나게 잡담을 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나는 아시아계 평균 학생답게 묵묵히 과제 문제를 풀었는데 (문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 역시 이 과목을 배우는 것의 의미를 쉽게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속물같은 생각이지만 배움의 유용성을 찾지 못할 때는 배움의 당위성을 찾기 어려워진다. MBA 과정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던 2023년 8월의 단면이다.
Microeconomics 수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이 수업도 끝난지 오래되고 MBA 과정에 충분히 적응했던 1학년 여름방학 어느 날 인터넷으로 도올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였다. 1학년이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아 여러 책을 보던 중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사상사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는데, 중세의 몰락 이후 르네상스부터 19세기 독일 관념론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를 양분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와 영상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도올 김용옥 선생이 자신의 Youtube 채널에 2010년에 업로드 한 <영어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2025년 2월 기준 109만 명이 이 영상을 봤다고 한다.
도올 선생은 이 세상은 크게 두 종류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한쪽은 경험(Experience)이고 다른 한쪽은 이성(Reason)이다. 경험이라는 건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는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인식한 정보를 오성(Verstand)을 통해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국 동란은 1950년에 일어났다.” 라는 문장은 교수님으로부터 배우든, 책을 통해 알게되든 내가 경험적으로 정보를 습득해서 이해하는 정보다. 그리고 아무리 이 문장을 요모조모 뜯어봐도 문장의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다. 한국 동란이 1950년에 실제로 발생한 것인지 내가 다른 경로를 통해 경험하고 확인해야만 이 문장의 참과 거짓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험으로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종합명제>라고 했고, 도올은 우리가 이 종합명제를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지금까지 여러 언어로 축적되어 유통되는 다양한 정보의 양을 생각해봤을 때 압도적으로 영어로 기술된 정보가 많고, 또 영어로 기술된 정보의 질적 우수함은 다른 언어로 기술된 정보의 질적 우수함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즉, 영어를 잘하게 되면 영어로 기술된 정보를 더 빠르고 잘 할 경험할 수 있게 되어 내가 종합명제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사실 이는 영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큰 범주에서 봤을 때 다양한 외국어를 잘 하게 되면 그만큼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영어(외국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수학은? 앞서 언급한 경험(Experience)과 대척점에 이성(Reason)과 관련하여, 이성이 다루는 것은 종합명제가 아니라 <분석명제>다. 도올은 ‘1+1=2’ 라는 문장을 예시로 든다. 1+1은 주어이고, =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의 2는 술부에 해당하는데 우리는 외부의 정보를 꼭 경험하지 않더라도 왼쪽의 1+1이 오른쪽의 2가 서로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1+1=2라는 것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는 것은 1,2,3 이라는 숫자의 덧셈이 아니라 하나와 하나를 더한 것이 둘이라는 <세계에 대한 개념>이다.
우리가 분석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단할 때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개념이며, 이쪽에서 획득된 개념을 다른쪽에 적용하여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과정을 합리적 추론이라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수학은 이 합리적 추론을 잘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수학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수학 문제를 빠르고 잘 풀 수 있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실제 다른 이론과 현상에 적용할 수 있기 위한 추론 능력 또한 수학으로부터 배운다. 그러므로 수학을 잘 하는 학생은 어떤 한 의미장에서 배운 개념을 다른 의미장에 적용하여 그 의미장을 이해하는데 탁월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예를 들어 삼각함수에서 사인함수와 코사인함수를 그려보면 90도를 기준으로 사인과 코사인의 값은 서로 시차를 두고 바뀐다. (사인함수를 왼쪽으로 90도 만큼 밀면 코사인 함수와 같아진다) 그런데 사인의 제곱과 코사인의 제곱을 더하면 언제나 1이 되는데, 여기서 얻어진 수학적인 개념을 철학적인 의미장에 존재하는 <음양>론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보자. 즉 사인과 코사인이 서로 역할을 바꾸며 계속 순환하는 관계이면서 그 제곱의 합은 늘 1로 동일한 것에서, 어떤 것과 다른 어떤 것이 서로 상보적인 관계인데 그 관계의 합은 언제나 일정하다는 개념을 추출한 뒤 이를 <음양>에 적용하면 음양도 이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음과 양도 서로 순환하며 연결된 개념이고 음양의 합은 언제나 태극으로 동일한 것이다. 사인-코사인함수가 음-양의 관계와 일치하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한 대상영역에서 얻어진 분석적인 개념은 다른 대상영역으로 적용 가능하다. 하나의 개념이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
Microeconomics 수업에서 우리가 수학 방정식을 통해 배운 것은 p와 q가 만나는 지점이 (20, 1200) 이라는 식으로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에 있지 않았다. Microeconomics 수업에서 우리가 배운 가격 변화에 따라 생산과 소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가격 탄력성), 합리적인 주체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만들어내는 비합리적인 경제효과 (부정적 외부효과),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했을 때 생산자가 단기와 장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양상이 다른지 (생산자 곡선), 독점과 경쟁시장 아래 생산자가 어느 수준으로 생산량을 결정할 것인지 등 다양한 상황 아래 경제 주체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 것인지 경제적인 개념을 수리적으로 배운 셈이었다. 경제라는 대상영역에서 존재하는 개념들을 배운 것이었다.
제시 교수는 두 달 동안 이루어진 전체 강의를 7개의 파트로 나누어 설명을 했는데 하나의 파트가 끝날 때마다 ‘Microeconomics in the News’ 라는 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8-9개 정도의 신문 기사를 읽고 학생들과 토론하곤 했다.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제 현상이 무엇인지, 그 현상을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어떤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지, 또 우리가 배운 개념을 적용한다면 해당 경제 현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시 교수는 우리에게 Cold Call(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해서 발표하도록 하는 것)을 섞어가며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제시 교수가 가르쳤던 Microeconomics 과목이 도올이 말한 경험과 이성, 종합명제와 분석명제 중 어느것에 해당하는지는 약간 모호하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볼 따름이다. 그가 가르쳤던 Microeconomics는 다분히 고전경제학 범주 안에 들어가며 이는 확고하게 정립된 이론으로서 경제현상을 이해하고 진단하려는 쪽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이성의 힘을 요구하는 분석명제에 더 가깝다. 반면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가 배우는 경영학이라는 것은 체계적인 이론보다는 많은 비즈니스 케이스 토론을 통해 경험의 범주를 넓히려는 종합명제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학생이 영어(경험)와 수학(이성)을 모두 잘해야 하는 것처럼, MBA 학생 역시 경영학(경험)과 경제학(이성)을 모두 잘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이 학문을 무 자르듯 이분법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저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합리적으로 분석하며 추론하는 것 둘 다 잘 하자는 다짐 정도는 유효하겠다…
그래서 나는 여름방학이 끝난 뒤 MBA 2학년 과정이 시작되었을 때 좀 더 경제학 과목을 들어보고 싶었고 개설된 몇 안되는 경제학 수업 (Behavioral Economics and Decision Making, Global Economics)을 더 들어보았다. 돌이켜보면 기말고사 비중이 전체 학점의 60%나 되는 바람에 수험생처럼 며칠동안 시험 준비를 하느라 Microeconomics 수업은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지만, 제시 교수에게 배운 다양한 경제적 개념과 합리적 추론의 힘은, 경험적 주장으로 가득한 MBA 과정을 조금이나마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MBA과정이 시작되었던 2023년 여름에 나는 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제시 교수를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개강 이전에 진행되는 사전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는데 아마 제시 교수의 자녀도 딸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모양이었다. 바로 어제 나에게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를 먼 발치나마 학부모로 마주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경험과 이성, 종합명제와 분석명제를 모두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MBA에서 수업을 듣는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는 나나 제시 교수나 학부모로서 잊지 않아야 할 점이기도 했다. 늘 책을 읽거나 놀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매일 밤 정해진 수학 문제를 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꽤 골치아픈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도대체 이런 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라고 물어볼 때 해줄 수 있는 답변이 있다는 점은 안도가 된다.
2025.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