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ost Analysis. 보이는 게 다가 아냐

인문학으로 MBA하다 (6)

by 피터 화엉
인문학으로 MBA하다 (6)
Strategic Cost Analysis & Performance Management. 보이는 게 다가 아냐
2023 Fall - Mod 2
#원가회계, #문학, #카프카, #변신, #기회비용



Strategic Cost Analysis & Performance Management. 우리나라로 치면 원가관리회계를 가르치는 존 갤모어 교수가 첫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들어섰을 때 긴장했던 이유는 20년 전 학부에서 이 수업을 들을 때 꽤나 고전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경영학과 1학년 때 회계원리를 듣고 난 우리는 소위 회계학 테크트리를 어떻게 탈 것인지에 대해 적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다. 일찌감치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에 들어간 친구들은 공부와 수업을 일치시키는 것이 편하다며 심화 회계 과목을 수강했는데 중급, 고급, 관리, 세무 이렇게 회계학 수업 앞 글자만을 부르며 ”넌 이번에 뭐 들을 거야?”, “아, 난 이번에 고급까지는 들으려고.” 라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나처럼 공인회계사 시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친구들은 깊은 회계학 지식을 배우는 심화 과목을 많이 들을 필요는 없었고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 3학년 또는 4학년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들어야하는 전공필수 회계학 수업만을 이수하곤 했다.


관리회계는 나 같은 일반적인 경영학과 학생들이 배우는 회계학의 마지노 선이었다. 기업이 생산하는 원가를 계산하는 법을 배우는 관리회계는 어려웠기 때문에 끝까지 듣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목이었다. 군대에서 복학한 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넘쳐났던 2007년 가을 관리회계 수업을 들었지만 한 학기 내내 고전했고, 어찌저찌하여 성적은 나쁘지 않게 받았지만 뭔가를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원가관리회계를 MBA가 시작된 지 세 달 만에 덜컥 배워야하는 셈이었다. 다행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게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과목인지 감을 못 잡고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학생들, 또는 창업해서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느라 내 사업의 원가를 잘 이해하고 싶다는 몇 몇 학생들의 참여도가 유독 높았다. 아직까지는 250명 모든 학생이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같은 전공필수 수업을 들어야하는 시기라서, 이 수업을 들을 지 말 지 선택할 자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다행이었던 건 이 수업을 가르치는 존 갤모어 교수가 무척 친절했다는 점이다. 갤모어 교수는 40대 초반의 젊은 교수였는데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고 늘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다녔다. 수업은 월요일 오전 8시에 시작했는데 강의실을 채운 60명의 학생은 아직 잠에서 다 깨지 못한 조용함이 깃든 가운데 갤모어 교수만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수업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갤모어 교수는 내가 20년 전 학부에서 관리회계를 배울 때보다 훨씬 친절하고 쉽게 원가관리 과목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고정비, 변동비의 구성비에 따른 의사결정의 차이나 ABC 원가관리 시스템 등 기초적인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원가관리 수업에서 지금까지도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은 바로 <기회비용>이었다.

기회비용은 일반적으로 경제학원론 수업에서 배우는 개념이다. 고전 경제학 이론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임을 가정한다. 다만, 각자가 가진 돈과 시간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포기한 수많은 옵션들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이 내 의사결정의 기회비용이 된다. MBA 첫 Module에서 배웠던 Microeconomics 수업에서 가장 흔하게 언급되었던 기회비용은 MBA 그 자체였다. 평균적으로 5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가 MBA에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우리가 연 평균 1억원 가까이 지불하며 MBA 과정을 밟을 때의 기회비용은 각자가 MBA에 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하고 있었을 직장생활의 연봉과 보너스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1억원을 받던 친구가 그 돈을 포기하고 MBA에 왔다면, 적어도 2년 동안 2억원의 기회비용보다는 큰 가치를 만들어서 다시 필드로 돌아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를 Microeconomics 교수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경제학에서 배우는 기회비용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느라 다른 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에, 기회비용은 내게 실제로 돈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상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가상의 화폐다. 현실의 비용과 가상의 기회비용은 구분되어 있고 이들을 머리 속으로 비교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원가관리회계에서 기회비용은 유휴설비의 존재와 결합되어 OCEC (Opportunity cost of excess capacity)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100만 원 상당의 세탁기를 샀다고 해보자. 고정비용이 100만원 발생한 셈이다. 만약 이 세탁기는 최대 100번의 세탁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세탁을 한 번 할 때의 원가는 만 원이 된다. 총 100만 원의 비용을 100번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실질적으로 세탁을 60번 밖에 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나는 60번의 세탁을 세탁 당 만 원의 비용으로 한 셈이니까 세탁을 위해 실질적으로 발생한 원가는 60만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엇, 이상하다. 분명히 우리는 100만원을 주고 세탁기를 샀는데 실질적인 비용만을 따져보니 60만원만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머지 40만원은 어디 갔을까? 갤모어 교수는 이 40만원이 유휴설비로 인한 기회비용이라고 말한다. 100번 돌릴 수 있는 세탁기를 산 뒤 60번 밖에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40번을 더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즉 40번의 유휴 설비가 발생했고, 세탁을 40번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40만원은 나에게 기회비용이 된다.


많은 학생들이 이 지점에서 헷갈려했다. 세탁 한 번 당 만 원인데 세탁을 60번만 했다면 나의 원가는 100만원이 아니라 60만원 아닌가요? 라는 질문이 머리 속으로 피어났지만 갤모어 교수는 “The cost does not change” 라고 말한다. 세탁과 관련한 원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100만원이었다. 다만 관리회계적으로 100만원 원가를 뜯어보면 60만원은 실제 발생한 지출이고, 나머지 40만원은 세탁을 더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실제 발생하지도 않은 기회비용까지 포함해서 원가를 분석해야 한다는 개념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에서 도망치고(avoid) 싶어했는데, 교수는 거기까지 예상했다는 듯 “Do we want to avoid OCEC?” 라고 물으며, 기회비용은 의사결정에 있어 아주 중요한 개념임을 강조한다. 만약 기회비용이 많이 발생한 제품이 있다면, 최대한 더 생산하고 판매해서 기회비용을 줄이고 총 원가를 더 많은 제품에 분산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품 당 실제 생산원가는 낮아지기 때문에 기회비용을 줄이는 것, 즉 설비를 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것이 훌륭한 의사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리송했다. 세탁기 사례를 추상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실 100만원 = 현실 60만원 + 가상 40만원, 즉 현실은 현실과 가상의 합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OCEC의 구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피어난다. 처음에는 기회비용이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고 설비를 더 돌리지 않아 발생한 일종의 가상 비용이라는 점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배제시키려고 했는데, (즉 60만원 중심으로 생각한 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전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또는 현실에서 주목받지 않는 대상에도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즉 나머지 40만원의 기회비용에도 주목해야 전체 100만원의 원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는 생각이다.


현실에서 주목받지 않는 대상에 시선을 돌릴 때 비로소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서 나는 그 즈음 읽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사실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러시아 고전문학에 오래도록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프란츠 카프카를 그 이름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카’라는 글자로 이름이 시작된다는 이유로 카뮈와 함께 비슷한 작가로 생각하기도 했다. 카프카나 카뮈나… 라며 말이다. 카뮈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문학가이고 카프카는 폴란드와 체코 문학가라는 점, 카뮈의 카는 C(Camus)이고, 카프카의 카는 K(Kafka)로 시작한다는 간단한 차이조차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2020년 COVID-19가 시작된 이후 <페스트>를 읽으며 <이방인>, <시지프 신화>, <결혼, 여름> 등을 연달아 읽으며 어느 정도 그가 말하는 실존주의 문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었지만 카프카의 책은 카뮈에 비해 꽤 어려웠기 때문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때마침 세계문학전집을 전자책으로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참에 카프카의 작품을 여럿 읽어보기로 했다.


낮에는 원가관리회계로 끙끙대고 고생하다가 밤에는 책상에 앉아 카프카의 <변신>, <소송>, <성>을 읽었는데 의외로 카프카 작품은 정말 재미있었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부조리한 말과 행동을 하며 상황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았는데, 역설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카프카 책을 읽으며 제법 소리내어 낄낄대며 웃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TBWA 박웅현 디렉터가 2011년에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이 책 제목은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Ein Buch muss die Axt sein für das gefrorene Meer in uns.” 라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속 글귀에서 유래했다. 정작 그 책에서 카프카 책은 다뤄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박웅현 디렉터는 2016년 <다시, 책은 도끼다> 라는 제목의 속편을 출간했는데, 그 책에서도 카프카는 끝내 다뤄지지 않았다. 카프카는 도끼만 빌려준 셈이었다…


아무래도 카프카의 대표작은 그가 1915년 펴낸 단편 <변신>이다. <변신>의 내용은 파격적이면서도 단순한 편이다. 젊은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거대한 갑충(바퀴벌레)으로 ‘변신’해 있음을 깨닫는다. 갑충이 된 그는 사람의 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어 같이 살고 있는 가족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가족들은 징그러운 벌레가 된 그를 보고 처음에는 경악하고 두려워하며 멀리하지만 이내 그가 자신의 가족 그레고리 잠자임을 알고 먹을 것을 주며 이해해보려고 약간의 노력을 해본다. 그러나 그의 흉측한 모습에 결국 마음을 열 수 없었던 가족들은 차갑게 돌아서기 시작했고, 그레고리 잠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몸에 박혀 사과가 썩어가며 결국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들은 손쉽게 그레고리 잠자를 잊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가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이 책에서 주목받는 대상, 그러니까 <변신>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갑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리 잠자다. 많은 이들이 그레고리 잠자가 사람에서 갑충으로 변신한 것에 주목하며 갑충이 지닌 메타포를 해석하려고 한다. 갑충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소외를 상징하는 것이다, 혹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면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카프카를 카뮈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보기도 한다. 모두 틀린 해석은 아닌 것 같다. 어디까지나 소설 <변신>의 핵심은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변신>의 내용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 중 내 관점의 전환을 가져왔던 어떤 해석이 있었다. 변신한 것이 과연 누구냐에 대한 해석이었다.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가 갑충으로 변신한 이후 변화를 겪은 건 그만이 아니었다. 소설에서는 그레고리 잠자가 갑충으로 변신한 이후 방을 기어 돌아다니거나 먹이를 갑충스럽게 먹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과 행동 변화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갑충이 된 그에게 먹을 것도 주고 방도 청소해주며 어느 정도는 가족이었던 시절과 다르지 않게 그를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인간이었던 그레고리 잠자가 아니라 그냥 갑충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점차 그를 냉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이윽고 그가 죽고나자 가족은 해방감마저 느끼고 웃으며 그를 잊는다. 그러니까 그레고리 잠자만 변신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도 함께 변신했다는 것, 어쩌면 진짜 변신한 것은 그레고리 잠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해석이었다. 모두가 그레고리 잠자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소설의 제목이 말하는 <변신>이란 그레고리 잠자라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 곁에 배경처럼 인식되었던 가족들의 <변신>이라는 해석은 아주 흥미로웠다.


<변신>은 그레고리 잠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동시에 발생했다고 생각하자, 이 책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었다. 누군가 아주 잠깐 다른 존재로 변했다고 해보자.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은 꼭 외형적인 측면만을 말하지 않는다. 약간의 말, 약간의 행동, 심지어 약간의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그 약간의 다른 변신은 그 자신의 변화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부된 타인의 변화까지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변화는 동시에 상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네가 변하는만큼 나도 변하는 것이다. 너와 나를 뒤집어 놓고 말해도 이는 성립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변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너와 나의 변화를 모두 들여다봐야 한다. 그레고리 잠자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그들을 규정짓는 닫힌 생태계라고 한다면, 집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집 안에서 발생한 변화는 누구 한 사람만의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에 밀려 주목받지 않았던 다른 대상의 변화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갤모어 교수가 말했던 것과 일치했다. 전체 비용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탁기를 100만원을 주고 이미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100만원의 비용은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에서 발생하는 것 (60번 세탁에서 발생한 60만원)과 주목하지 않는 대상에서 발생하는 것 (40번을 더 세탁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아서 발생한 40만원의 기회비용)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 주목받는 대상의 변화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제품 당 원가를 잘못 과대계상하게 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판단할 때 변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카프카의 <변신>에 기대 원가관리회계 기회비용 개념을 생각하자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갤모어 교수는 무척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고 호감가는 강의 태도와 함께 말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나는 종종 그가 <위대한 쇼맨>에 나오는 마술사 같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는 TV에서 가끔 마술쇼를 할 때 매우 흥미롭게 ‘마술’을 봤고 다만 나이가 들어서는 ‘저건 다 트릭이겠지’ 라고 약간은 심드렁한 태도로 마술이 아닌 ‘쇼’를 봤다. 마술은 변화에 대한 예술이다. 있던 것을 사라지게 만들고 없던 것을 나타나게 만든다. 이 변화를 단순히 거짓이나 속임수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다. 다만, 사람들이 마술사의 트릭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술사가 특히 강조하는 말과 행동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자 여러분 이것을 보세요, 이것이 어떻게 바뀌는 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마술사가 말할 때 우리는 모두 시선을 그것에 고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된 그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에서 진짜 변화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마술은 사람들이 주의깊게 보는 것과 사람들이 주의깊게 보지 않는 것의 총합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것이 마술을 쇼가 아닌 마술로 만드는 법이다.


미래 가정법의 언어로 다른 세계관에서 발생할 수도 있었던 기회비용을 관리회계적으로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쉽게 주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해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었다. 원가관리회계가 마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원가관리회계는 직관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비용과 우리가 인식하기 어려운 비용을 잘 구분하고 이를 관리할 때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했다. 재무회계가 세 재무제표 사이의 연결과 흐름을 강조했다면, 원가관리회계는 전체로서의 원가를 가시적으로 인식되는 것과 쉽게 인지되진 않지만 원가로서 기여하는 것의 구분과 인식을 강조했다. 한쪽은 숫자를 계속해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한쪽은 숫자를 고정해놓고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본다. 찬찬히 뜯어볼 때 보이지 않던 것이 인식되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갤모어 교수는 내가 MBA 2년 과정 동안 유일하게 교수 호출을 받아 그의 집무실을 찾아갔던 교수이기도 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교수에게서 다음 주에 시간될 때 집무실로 찾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최근 시험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약간 긴장한 채 Office hour 때 집무실로 찾아가니 그는 원래의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앉으라고 하더니, 최근 내가 Cheating을 한 것 같다는 다른 학생들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한다. Cheating?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간고사 시험 기간 때 문제를 받아들고, 문제에 약간의 숫자 오류가 있는 것 같아서 250명 학생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에 “나만 문제에 숫자 오류 있는거야, 아니면 다들 그래?” 라고 올린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다른 학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이 비춰져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시험을 치뤄야 하는’ 규정 위반으로 누군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학생처에 규정 위반으로 제보를 해서, 결국 교수에게까지 통보가 간 상황이었다. 100+200=400이라고 적혀 있을 때, 나만 문제가 잘못 나온거야? 라고 무심코 물어봤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행히 교수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 세트 중 일부에 숫자 오류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이해를 해주었고 내가 규정을 위반한게 아니라고 학생처에 이야기 해두겠다고 웃었다. 상황은 그것으로 잘 끝나고 나는 집무실을 빠져나왔지만 당혹스러운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 겉보기에 즐거움과 협력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것 같았던 단체 대화방에서 누군가는 나를 규정 위반으로 생각하고, 제보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단체 대화방에서 공존하는 수 많은 감정의 표류 중에 표면 위로 부상한 일부만을 인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마술이나, 카프카의 <변신>이나, MBA에서 배우는 경영학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전부라는 것이 꼭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2025. 2. 1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Statistics.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