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한국의 신용평가등급이 올라가 이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 그리고 S&P로부터 모두 AA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피치만 AA- 수준) 뭐 경알못이라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은 여하튼 GDP 세계 11위 수준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낮은 건전한 국가경제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채무 불이행할 권리를 공공연하게 외치는 어느 국회의원도 있는 자유로운 나라이기도하다)
이게 피부로 잘 와 닿지 않아 결국 다 대기업이나 있는 놈들 지갑 속으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교적 한국은 인프라가 골고루 제대로 갖추어진 나라로, 수십 년간 경제성장을 이룩해서 국민 모두가 누리는 혜택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리고 그 혜택을 발판으로 이전보다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사회가 되고 있다. 보통 개발도상국의 수준을 평가할 때 과거 우리 60년대, 80년대 등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거를 더듬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먼저 현재 한국엔 비포장도로가 거의 없다. 그리고 터널과 교량이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이게 토건족이 판을 치는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혀를 끌끌 찰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물류비용을 줄여주고 불필요한 자동차 내구수명의 단축을 방지시켜준다. 나는 공사현장에 자주 다니다 보니 비포장도로를 다닐 일이 많은데, 내 차를 타고 갈 경우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감속하라고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20-30km/h 수준으로 운전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돌부리나 패인 바닥에 걸려 자동차의 베어링이나 샤프트가 나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든 콘크리트든 국토 대부분이 포장도로라는 것은 생각보다 느끼지 못하는 대단한 혜택이다.
아울러 교량과 터널은, 개발도상국으로 가면 생각보다 매우 희소성이 커지는 구조물이다. GDP가 1만 불 이하로 가게 되면 이러한 교량이나 터널을 만들만한 재정도 구축하기 어려워 대부분 산이나 바다를 뱅 돌아가게 도로를 만든다. 예컨대 서해대교가 없다면 인천에서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까지 아마 4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현재는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서해대교 덕에 2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여기에 만약 서해안 고속도로도 없고, 앞서 언급한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라면 10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게 무슨 차이냐면, 그만한 도로 인프라가 갖추어졌기에 총알배송이니 하는 택배시스템도 가능하게 된 것이고, 지역에 따른 물가 차이도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만한 도로/철도 인프라가 없었다면 아마 태안이나 해남 같은 도서지역과 수도권의 양극화는 더없이 증가했을 것이다.
서해나 남해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그 수많은 연륙교들을 볼 수 있다. 덕분에 거제도나 진도, 강화도 같은 큰 섬들 뿐만 아니라 작은 섬들까지 국민들 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중소 교량도 공사비만 1-2억 불 하는데, 재정이 여의치 않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이러한 공사는 거의 국가적 프로젝트 급이다.
그럼 경제성장에 따라 나아진 신뢰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치안과 법치의 확립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인천공항에서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택시 기사분들이 종종 계신다. 하지만 정말 그 GDP 1만 불 이하로 내려가는 나라에 가면 그 신박한 경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에 가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캐리어에 노트북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캐리어가 샘소나이트 니 만다리나덕이니 비싼 걸 쓰고 자물쇠를 채워놓는다 할지라도,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선 공항 검색대 직원들 조차 지퍼를 열어 노트북을 빼어가곤 한다. 듣기론 송곳 같은 것으로 신속히 절개를 하고, 다시 재빨리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봉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출장 갈 때는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이 노트북같이 고가의 제품은 가능하면 캐리어에 넣지 말고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표적이 된다. 그냥 돈이 많아 보이면 강도 떼가 나타나서 나의 물품들을 빼앗어가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아직도 법보단 힘이 더 센 나라는 꽤 많이 존재한다.
택시를 타고 요금을 낼 때에도 조심해야 한다. 신뢰가 부족한 어느 개발도상국에서는 내가 천 원짜리 8장을 한꺼번에 건네면 2장 정도는 수금 통에 집어넣고 6천 원만 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현금으로 무엇을 지불할 때는 한 장씩 한 장씩 건네며 소리 내어 카운트할 필요가 있다. 택시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면? 택시는 올타쿠나 하고 질주를 할 것이고, 경찰이 설령 그 기사를 잡는다 하더라도 내 고가의 소지품은 경찰서 어느 서랍에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 아울러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자국의 화폐보다 달러나 유로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제아무리 IMF사태를 경험한 우리나라라도 상점에서 달러로 달라고 한 경우는 들어본 역사가 없다. 그만큼 한국은 인정되고 신뢰가 있는 사회란 말이다.
물론 유럽이나 북미 선진국과 우리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단 30년 4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상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신매매와 소매치기가 횡횡했고, 조직폭력배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며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걷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경제가 성장하며 조금씩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게 성숙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웬만한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의 신뢰가 있는 사회가 되었다. 부족한 점은 아직도 많다. 하지만 신용평가등급이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듯이, 은연중 우리 사회의 신뢰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물론 우리 각자 스스로의 노력도 많이 필요한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