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내년부턴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다. 생산가능 연령의 사전적 의미는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를 말하는데, 64세라 함은 대략 현재 기준으로 1950년대 초반생을 말하니 1차 베이비붐 세대인 58년 개띠 분들로 가면 이제 그 기울기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변에서 종종 요즘 태어나는 애들은 인구 자체가 줄어드니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공부를 굳이 열심히 안 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고냥 장삼이사 월급쟁이 수준의 상식으로 그 인구가 줄어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재 한 국가의 부를 측정하는 기준은 보통 GDP로 한다. GDP는 국내총생산의 준말로서 한 나라 안에서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 등 경제주체가 일정기간(1년) 동안 창출한 부가가치 혹은 최종 생산물의 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GDP를 인구수로 나눈 게 일인당 GDP;GDP per capita이며,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이는 보통 해당 국가의 경제 수준을 가늠하게 해 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GDP라 함은 '일정기간'이란 단서가 붙어 있는 생산성의 개념이란 말이다. 예전 중상주의 시대와 같이 막 금을 곳간에 쌓아놓고 우리나라가 제일 부자야, 이런 게 아니라 일 년 동안 얼마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걸 또 소비했느냐의 총량이 현대적 개념의 부자라는 말이다. 국가경제는 개인이나 기업과 그 개념이 다소 상이해 수십 년째 만성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왜 그러할까.
국가재정을 이루고 있는 세금을 한번 생각해보자. 현대 국가는 각기 다른 조세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거두어들이는 세금의 큰 축은 소득세와 부가세, 그리고 법인세로 구성된다.
즉, 상기 언급한 GDP가 높다는 뜻은 그만큼 부가가치를 창출한 상품의 양이 많고, 그로 인한 임금 소득자가 많으며, 영업이익을 창출한 기업이 많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가재정을 이루는 부가세, 소득세, 법인세의 양이 증가하며, 이는 국가재정을 더욱더 튼튼하게 만든다. 여기서 생산성의 개념이 도입되는데, 한 국가의 생산성은 보통 1인당 GDP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게 된다.
생산인구가 줄면서 GDP를 유지시키려면 생산성이 계속 증가해야 하는데, 선진국의 경우 그 생산성 증가율은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산성의 급격한 증가 없이는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GDP의 하락과 그에 따른 재정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될 것이다.
재정 감소가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2016년 기준 중앙정부 재정지출 중 예산 부문 총액은 263조 원가량으로 전망된다. 이 263조 원 중 47%에 해당하는 무려 약 123조 원이 보건복지 고용 분야에 쓰이고, 이는 고령화되는 사회에 있어 점점 더 그 비중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흔히 세금을 막 잡아먹을 것처럼 생각되는 국방이나 건설은 39조 원, 25조 원으로 각각 10% 남짓 사용된다. 현재까지 통계로는 앞서 언급함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생산인구 내에 들어있다. 이는 다른 말로 기초노령연금을 수령받지 않는 나이대에 위치하다는 말과 같다. 최근 선거를 보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복지예산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모두 내놓는다. 노인빈곤이 심각한 문제인 작금의 상황에서 바람직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조가 계속되고, 생산인구 감소-노인인구 증가로 이어진다면 결국 재원 고갈로 정부 재정지출은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 숫자를 줄여야 하고, 기초노령연금 혹은 기타 복지정책을 점점 줄여나가야 한다. 복지가 줄어들면 앞서 언급한 국방이나 SOC 예산도 줄여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국방력 감소도 예상할 수 있으며, 유지보수 미비로 인한 각종 갈라진 도로나 위험한 철로 등이 그대로 방치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엔 인구가 감소하며 각종 인프라가 취약해져 지방인구는 감소하고 오히려 도심 인구는 늘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도심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저소득자는 많이 져 양극화는 더 심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출산율을 높이면 되는데, 그건 쉽지 않다. 결혼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갈수록 증가하고, 결혼을 하는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어 출산율이 앞으로 기적적으로 증대되긴 어려울 것이다. 5년 전쯤 아이 셋을 낳으면 지자체에서 막 3백만 원, 5백만 원씩 주기도 했지만 최근 지방정부 재정위기 해결책의 일환으로 대부분 철수된 지 오래다. 이제는 국가가 아무리 애를 키워준다고 국민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해도 그것을 순진하게 믿고 따를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최소 20년은 내다보고 세워야 할 중장기 계획인데, 적절한 재무계획 없이 낳는다면 개인 인생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부로 무자녀 가정에게 아이 낳으라고 하면 안 된다. 애를 20년 동안 키워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울러 구라파(?!)와 같이 굳이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갖는 것이 일반화되면 모르겠지만, 유교적 마인드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두 번째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인근 베트남이나 인도 등에는 젊은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는 전체 인구가 약 1억 명이며 평균 연령이 무려 29세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의 경우 인구수로 조만간 중국을 추월할 지구 상 유일한 나라이다. 결국 출산율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국가들로부터 생산가능 인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영주권 발급대상은 한국어 구사능력이 높은 고학력자들이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이주한 이들은 고학력자라 할지라도 단순노무 일에 그다지 반감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 중 더 능력 있는 자들은 의사나 교수 등의 괜찮은 일자리를 가져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선배들이 미국이나 호주에서 정착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결국 이렇게 된다면 현재 태어나는 우리의 아이들은 더욱 힘든 사회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예는 브렉시트를 경험한 영국이나 다문화를 배격하다 테러를 일으킨 2011년 노르웨이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들기 바라는 것, GDP가 우리 행복과 상관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 바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그 비극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흔히 북유럽 국가의 경우 500만 명의 인구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비교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500만 명의 인구면 모르겠지만, 5천만 명에서 5백만 명으로 줄어드는 건 비극일 수 있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그 살아남는 5백만 명의 대다수는 생산가능 인구가 아닌 노인인구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 인구 5백만 명의 나라들도 현재 시리아 등 난민의 유입으로 극우정당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극좌로 가면 공산당이 나오지만, 극우로 가면 파시즘이 나온다.
설국열차. 그래 우리는 설국열차에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량;stock이 아닌 유량;flow가 중요한 생산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피할 수 있는 것과 피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올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린다 하여 그 유토피아가 올 리 만무하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설 것인지 머리를 맞대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