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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Sep 02. 2016

자연은 정말 언제나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일까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종편에도 불구하고 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가 있다. 딱 한번 본 적 있는데, 저마다 사연 있는 분들이 숲 속에서 살면서 나름 살아가는 모습이 드라마틱하더라. 이와 비슷하게 최근 ‘자급자족의 삶’을 추구하는 어느 가족이 EBS에 나와 또 주목을 받고 있다. 혼자서 그렇게 사는 거야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오늘 그분 페이스북 일부를 보니 백신이 중금속 발암물질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는다고 하더라. YTN 뉴스를 보고 알았지만, 백신 부작용에 대한 논란은 9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까지 퍼진 괴담이라 한다. 이러한 백신 거부 운동으로 인해 2015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약 170명이 홍역에 걸렸다. 아울러 해당 운동을 주도한 영국 의사는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고, 논문은 허위로 판명되었다 한다.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에서는 지금도 그 예방접종을 맞지 못해 죽어가는데, 미국이나 영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스스로 그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해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인류의 문명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얻어졌다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잘 한번 생각해보자.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상 의식주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게 된 것은 수 백 년도 아니고 고작 수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먹을 것의 변화는 드라마틱해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은 대기근으로 아사;die of starvation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니까 19세기 발명된 냉장기술이 있기 전까지, 건축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형 물류창고가 존재하기 전까지 인간은 매년 수확하는 농작물에 의존한 삶을 살았다. 아울러 농업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감자 마름병과 같은 역병이 유행하면 수확 자체를 하지 못했다. 현대의 경우 항만 및 공항 등 물류의 발달로 인해 특정 지역에 흉년이 나도 수입해서 먹으면 되겠지만, 과거에는 우리 지역에 흉작이 계속되면 그냥 계속 굶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에서는 18-19세기 기근;Famine이 종종 발생했는데, 그중 19세기 발생한 대기근으로 인구의 1/3이 굶어 죽었다.



상하수도 시스템의 개발은 인류 수명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우리가 이용하는 수돗물은 일반적으로 댐과 같은 취수장에서부터 혼화지, 응집지, 침전지, 여과지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쳐 처리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염소로 소독되어 정수지로 이동하고, 배수지에서 각 가정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균 등 미생물들을 제거하게 되며, 소독제로 인해 냄새가 다소 나기는 하지만, 정수장에서 가정까지 세균들의 침입이 없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수도 시스템이 없던 과거에는 마을 어귀 우물에 독이나 상한 음식이라도 투입되게 되면 마을 사람 전체가 괴질에 걸리기도 했다.
하수도는 어떠한가. 나만해도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엔 하수도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매월 똥차라 하는 분뇨수거차가 매번 들어오곤 했다. 현대의 하수도의 경우, 분류식과 합류식이 있는데, 분류식은 오수관과 빗물관을 분리해서 운용하고, 합류식은 빗물과 오수를 하나의 관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즉, 분류식이든 합류식이든 하수도는 오수와 함께 빗물을 처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폭우가 오더라도 빗물이 빨리빨리 하수처리장이나 빗물 토구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80년대만 하더라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은 무릎이나 허리까지 차오르고, 그 물 위에 분뇨도 같이 떠다니기도 했다. 더 과거로 가게 되면 이러한 홍수가 나면 당연히 역병도 돌게 되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여기서 글을 맺어볼까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산소도 주고, 물도 주고, 태양도 준다. 그 기초적인 에너지가 없으면 인간은 생활할 수 없다. 아끼고 보살펴야 할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홍수도 주고, 병충해도 주고, 음식을 부패하게도 만들어 준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그 변화가 불가피하며, 그 변화의 폭을 줄여나가야지 아예 없애버리고자 하면 곤란하다. 생태계를 보라. 정말 자연적이라 함은 생태계의 포식자와 피포식자가 개채 수량을 절묘하게 맞춰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러한가. 인간은 태어났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의식주를 갖추며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 애초에 그런 자연적 생태계에서 이탈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혼자 자연 속에서 살겠다고 가는 것까지야 말리지 않겠지만, 인간 문명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을 조롱하거나, 현대 의학을 깡그리 무시하는 생각으로 자기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부디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이 지구에서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언제부터 현대와 같이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아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맛있는 것 먹지 못하고, 비싼 옷 입지 못하고, 자가주택 얻지 못하며 하는 불평이라면, 100년 전만 하더라도 귀족만의 특권이었다. 우리 대부분이 성씨가 있고 족보가 있다 해서 모두가 조선시대 귀족이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통계청 사이트에 따르면 조선 초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양반은 5% 내외였다고 한다. 조선말 통계에 양반이 증가하였다고는 하나, 이도 군역을 피하기 위해 유학에 편입하는 편법적인 측면이 존재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먹고사니즘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은 현대문명은 그러한 우리 선배들의 무구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노력을 헛되게 해서는 되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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