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나름 범생이었던 나는 그렇다고 딱히 전교권에서 놀만큼 공부를 월등히 잘하진 못했다. 그저 모의고사, 혹은 수능이라는 은덕으로 인해 그나마 인서울 문턱이라도 넘었지, 아마 내신성적으로 대학에 갔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인생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튼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딱히 선생님들에게 주목받는 아이도 아니었고, 편애란 건 받아본 기억이 그닥 없었다. 아버지께서 교편에 계시긴 했지만, 그것도 공무원 하다가 내가 중학교 때 이동한 케이스라, 딱히 학교 다닐 때 선생님 자식이란 메리트(?)도 없었다. 물론 부모님의 그 크신 사랑은 말도 다 형용 못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현재의 자존감이 형성되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기는 좀 부족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엄마가 수십 년 동안 우리 아들 잘생겼다고 하는 거랑, 동아리 처음 들어갔는데 어떤 여자 선배가 슥- 보더니 ‘오, 너 잘생겼다’ 한번 할 때 느끼는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나에게 특별히 잘해줄 이유 없는 사람이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 무언가 비행기에 뜬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편애란 걸 경험하기 시작한 건 군대 있을 때부터인데, 편애는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등병 때 포병에서 고생하고, 일병 때 사단장실에서 꿀 빨다가, 상병 때 정보병과로 이동했는데, 그때 대위였던 정보장교가 나를 그렇게 편애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통의 행정병들이 한메타자 800타를 칠 때, 300타에 허덕이던 나를 행정의 달인이라 하질 않나, 다른 부서에 가서 이번에 양상병 새로 왔는데 완전 엑설런트 하다고 하질 않나, 이 아저씨가 왜 이러지? 누가 나 몰래 빽을 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헌데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나도 좀 실망시키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
점심을 건너뛰고 한메타자를 연습하기 시작하고, 저녁도 먹자마자 바로 올라와서 막 연습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한메타자도 600타를 넘어서니, 다른 행정병들과 차별성을 강구하던 끝에 당시 좀 생소했던 파워포인트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PPT는 사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한두 달 지나고 나서부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나아가 플래쉬나 프리미어 등으로 차별성을 계속 만들어나가려 노력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엔 해당 소프트웨어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정보장교에 있었다. 전산장교가 대체 왜 군인이 플래쉬나 프리미어 따위가 필요하냐고 했지만, 정보장교는 막 들이밀어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군대는 딱히 그 인센티브가 상당히 결여된 곳이다. 거꾸로 매달아 두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시간만 때워도 되는 그런 곳이다. 헌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앞서 언급한 PPT부터 프리미어까지 겁나 많은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더 나은 성과품을 만들어 내었다. 처음 작전계획 보고를 할 때는 북한군이 STEP에 따라 드문드문 내려오는 것으로 보였지만, 나중에 플래쉬로 구현을 하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리 작계지역에 교묘하게 침투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더 나은 성과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월급의 상승도 아니요, 휴가 같은 포상도 아니요, 순전히 정보장교의 ‘편애’ 때문이었다. 뭔가 하나 만들어 가면 ‘이야~, 아니 이것 보세요, 참모님, 양상병이 이런 것도 만들어왔어요’ 하며 호들갑을 떠는 그의 모습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장교의 RPM 올라가는 BGM에 나는 계속 춤을 추게 되었고.
사실 상기 사항은 회사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한 반에 50명씩 콩나물시루처럼 앉아있던 학교 다닐 때완 다르게, 나만의 사수가 있고, 나를 지켜보는 팀장이 있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임원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믿고 나에게 의지한다는 인상이 들기 시작하면 내 능력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라 생각한다.
편애해야 한다.
물론 공교육 선생님에겐 좀 해당하지 않을 말이긴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땐 편애를 하는 편이 어떠한 개인에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무언갈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아직 고참이라 하기엔 부족한 연차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 주변 후배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뭐 싹수가 아주 아닌 친구 이상에야, 너 뭐 하고 있니, 오 그거 잘한다, 대단한데, 하며 건네주는 한마디가 그에게 조금은 능력을 더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다. 아재와 같이 너무 오지랖을 펴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상대방에겐 의외로 삶의 생기를 불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개인주의도 좋지만, 주변에 내가 편애할(관심을 가질) 누군가를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그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그런 관계가 형성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끝.
P.S. 이 글의 영감은 얼마 전 읽은 책(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동조)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내용을 가져온 건 아니고, 편애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따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