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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Aug 23. 2016

기록, 그리고 그 관리의 중요성

예전 건설업을 하시던 선배님들은 자리를 이동할 때 서류박스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가지고 다니셨다. 노트에 빼곡히 적어놓은 기록들을 폴더에 정리하고, 다시 그 폴더는 박스에 넣어져 무거운 짐이 되었다. 나는 당시 그것을 마치 어떠한 재산이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외장하드. 나는 지금 이 외장하드를 신줏단지처럼 모신다. 지난 십여 년의 업무기록이 남겨져있는 이 외장하드는 나의 경쟁력이자 남아있는 경험의 산실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업계도 이러한 기록은 상당히 중요한 편에 속한다. 흔히 시간이 돈이라고 하는데, 건설업이나 제조업 할 것 없이 어떠한 시간에 대한 생산성의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머릿속에 기준이 되는 생산성이 있어야 관리를 제대로 할 수가 있고, 보고서 상 수식의 오류가 있더라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오늘 콘크리트 1,000m3를 타설 한다고 하면(대략 가로세로 높이가 각각 10m라고 보면 된다) 한 시간에 타설 할 수 있는 양은 얼마인지, 타설 하는 노무자는 몇 명이 필요한지, 사이클 타임을 고려하면 레디 믹스트럭은 몇 대나 필요한지, 들어가는 시멘트나 골재, 모래나 혼화재, 물 등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물론 잘 찾아보면 적산이나 품셈 자료와 같이 정형화된 데이터는 찾아볼 수 있지만, 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기록이 없다면 딱히 신뢰도가 있다고 하긴 무리다. 결국 상기 리소스 데이터에 단가만 입력하면 직접공사비가 나오게 되는데, 남들 콘크리트 치는데 20시간 걸릴 것을 16시간으로 줄이면 그만큼 경쟁력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기록이 업계에선 자신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한참 선배님들은 기록한 공책이나 노트를 애지중지하며, 요즘엔 나같이 외장하드에 기록하여 신줏단지같이 모시곤 한다. 그리고 외장하드가 혹시라도 뻑이 갈까 하여 주기적으로 새것으로 백업을 해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기억력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비단 한 달 전의 일이라도 기록을 해놓지 않는다면 그 기억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느 회사와 회의를 한다면 몇 줄이라도 기록을 해두어야 하며, 가급적 메일을 통해 기록하며 의사소통을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흔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기록하는 습관만 들여도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도움되는 일은 종종 있다. 나의 경우 외국 호텔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매니저에게 클레임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뭐 대단히 길게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러이러해서 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수준이다. 이는 전화로 백번 항의하는 것보다 효과가 상당한데, 하루하루 지나고 계속 메일이 누적되는데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보상을 해주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불편에 대해 딱히 반박할 논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트러블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문제 되는 사안에 대해 일지를 잘 써 놓고 그 몇일치의 기록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트러블이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이 사람, 기록을 확실히 해서 제삼자(보통은 주무관청)에게 갈 경우 내가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 그리 인생을 불편하게 사는지 숨이 막힐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개인적 습관에 따라 그렇다 쳐도, 일을 할 때에는 적어도 그 기록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나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상기 언급한 일지나 기록이 없으면 그러한 귀책이 누구의 사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 업체와 일을 할 땐 그렇게 회의록을 많이 작성하고 weekly나 2-weeks, monthly report 같은걸 많이 만들고, 이도 형식적인 게 아니라 AOB;any other business와 같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적게 하곤 한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을 지고, 상대방이 잘못한 게 있으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계약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기억만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말싸움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되면 결국 나이가 많거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되기 마련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이러한 기록도 하는 것보다 잘 인덱싱 해놓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메일만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일을 하면 일 년이 가고 삼 년이 가서 다시 찾으려면 찾기 어렵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웃룩의 폴더 기능을 사용해 주제별로 정리하고, 주기적으로 윈도우 제어판 색인 옵션에 들어가 꾸준히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결국 찾을 수 없는 기록은 그 가치가 없을 수 있으니 말이다. 끝.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search/document?photo=SFB7BM9l7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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