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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Aug 17. 2016

"Could you speak slowly?"

외국인과 회의하기 (2)

해외업무를 하며 항상 의식되는 부분은 '영어'이다.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하는지, 얼마나 영어공부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나도 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스스로의 장단점을 파악할 때 종종 영어 때문에 해외사업을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 직원이 영어를 잘한다고 안 되는 사업을 성공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본질은 숫자(=성과)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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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 회의를 할 때 가장 꺼내기 어려운 말이 "Could you speak slowly?" 혹은 "Would you mind saying it once more?" 정도 일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고, 당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듣습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부분이 그 회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느리게 이야기해달라는 말은, 즉 나의 흐름으로 회의를 이끌어가게 해달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를 마칠 때 "Let me briefly summarize for this meeting~"으로 우리가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고, 결론을 내렸는지를 주도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것도 처음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인데, 내가 영국인이나 미국인의 말을 100%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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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각을 한번 돌려보자. 1988년 세계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일본 기업이 1위부터 10위까지 싹쓸이했던 때가 있었다. IBM이나 엑슨 정도가 10위 이내, SHELL이나 GE정도가 겨우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NTT라들지 유수의 일본은행들이 이름을 드높일 때 말이다. 한 국가의 외국어 실력을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나라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당시 소니나 도요타 같은 회사는 얼마든지 자사의 제품을 세계에 내다 팔았다. 즉, 영어가 아주 능통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수 있고, 이는 이미 결과로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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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한국말로 회의를 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결론을 내고 끝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으면 몇 달 뒤 서로 딴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에야 영어를 완벽히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상기 언급한 문장들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부끄러움 없이 구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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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는 어제 지인과 점심을 먹다 어느 글로벌 회사 아시아 총괄 CEO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난 것이다. 회사명은 물론 밝힐 수 없지만, 그 CEO는 영어가 네이티브같이 능통하지 않은 분이라 했다. 그런데 글로벌 회사니 전 세계 conference call 같은 걸 하는데, 본인이 이해를 못하면 다시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회의를 잠시 중단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상대방 입장에선 이게 답답할 수 있는 행동이다. 예상했겠지만 결국 실적으로 성과를 보여주니 영미권 CEO들도 인정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이해를 못했으면 이해 못했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용기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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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하지만 영어 자체가 사업의 주가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따지면 영어를 모국어를 쓰는 나라의 기업들만 잘 나가야 하는데, 독일이나 일본, 네덜란드 같은 나라의 기업들도 얼마든지 세계경제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지 않은가. 잘하려고 애쓰는 건 좋은데, 잘하는 척 하지는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영어 수준을 드러내도, 기술력이나 경력 등의 자기 실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사업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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