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있어서 스펙에 대한 잡상
얼마 전 2015년 하반기 취업시즌이라 캠퍼스 리크루팅도 다니고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러 다니곤 했다. 여러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만나며 대화도 하고 생각을 듣기도 하는데 주관적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스펙*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스펙 때문에 취직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자신의 스펙이 비교적 괜찮은데 왜 서류에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시다.
*스펙: Specification에서 파생;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
먼저 '구직자'만의 관점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취준생 입장에서 '구직'이라는 말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선발'이다. 내가 회사 들어올 때만 해도 기본적으로 경쟁률이 1:100은 훌쩍 넘었다. 허나 취업은 대학같이 응시의 제한을 두지도 않고 응시료가 따로 드는 것도 아니라 복수지원이 무한 가능하다. 따라서 저 100명이 모두 1을 위해 달리는 무한경쟁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응시자 100명 중에 1등을 뽑은 게 목적이 아니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아마도 똑똑하고 그룹에 잘 적응할 수 있고 '우리 회사를 꾸준히 다닐'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나보다 스펙이 월등히 높은 사람이 나와 경쟁해서 떨어질 확률도 분명히 있는 일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고시를 준비하다가 그냥 기업이 어떤 곳인지 경험이나 한번 해보자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외국 유학 중 내가 지금 스펙으로 대기업에 붙을 수 있는지 확인이나 해보자고 찔러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사팀의 존재 이유도 이런 분들을 걸러내는데 있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놓아도 1년도 안되어 반이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면 사장님이 잘했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남의 스펙 가지고 쫄 필요는 없다. 회사가 스펙을 보긴 보는데 줄 세우긴 아니다.
내 스펙이 어때서!
다음은 위와 약간 상반된 얘긴데, 어느 정도 스펙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100명을 뽑으려 하는데 10,000명이 지원했다고 치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일이 중요하긴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훨씬 많이 있다. 즉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뽑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소서를 열심히 평가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응시자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만 명을 슈퍼스타K같이 한 명 한 명 만나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때 스펙은 기업 입장에서 구직자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학교를 나오고 학점은 어떤지(머리가 좀 영특하고 노력을 하는지), 어학점수가 어떤지(외국어로 업무가 가능한지), 인턴이나 알바 경험은 있는지(조직생활이 가능한지)를 자소서로 판단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물론 스펙과 능력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영어의 예를 들자면 영어실력은 토익점수의 충분조건은 안돼도 필요조건은 된다. 즉, 토익점수가 높다고 꼭 영어를 잘하진 않지만, 영어를 잘하면 토익점수는 높다. 내가 아는 미국 시민권자인 회사 동료는 한 번도 토익공부를 안 하고 회사서 시험 보라고 해서 봤는데 토익/토익스피킹 점수가 990/200 만점이었다. 스펙과 능력의 상관관계를 아예 무시하긴 어렵단 말이다.
내가 시험에 만점이란 걸 맞아 본 게 언제인지...
스펙이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고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명제라고 본다. 다만 그 스펙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서는 필요한 객관적 지표이기에 함부로 떠 받들기도 무시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낮은 스펙 때문에 너무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고 스펙을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한 얘기지만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인 경우가 많다. 노력을 할 만큼 하고 어느 정도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이 꼰대 같다면 미안! ㅠ
취준생님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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