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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Nov 14. 2016

위로라는 것에 대해

위로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 나이 서른다섯이 넘은 어느 가장, 하물며 이제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느 아이라 할 지라도 각자 자기 인생에 어렵고 힘든 점은 있기 마련이다.


먼저 학생의 예로 들어가 보자. 학생도 가난하든 부자이든 누구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일단 학생은 자유의지가 거의 없다, 즉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다는 말이다. 상급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옷을 사는 것도, 휴일을 정하는 것도, 심지어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티비보는 것도 일일이 부모 간섭 하에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자유의지가 결여되면 자기 부모가 십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던 삼십만 원짜리 월세방에 살고 있던 스스로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씀씀이의 차이에서 오는 여유로움은 있겠지만, 이것도 더 과도한 통제로 이어지면 어느 정도 역 상쇄되기 마련이다. 괜히 삼성가의 막내딸이 그 같은 선택을 했겠는가.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마저 통제받는 그 삶에 연민마저 느끼게 된다.


따라서 어느 학생이 어려운 고민을 SNS에서 털어놓는데, 거기다 대고 너는 부모도 잘살고, 시대도 잘 태어났고, 외모도 수려하고, 이런저런 류의 위로랍시고 하는 말은 전혀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 깨달음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이지, 누가 가져다줘서 퍼뜩 생각이 바뀌는 게 깨달음이 아니다. 설령 정말 객관적으로 행복을 느낄만한 요인이 많다손 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그게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을 강요해선 안 되는 것이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각에는 나이지리아에선 보코하람에 납치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분들이 있고, 북한에서는 기아로 인해 나무줄기를 뜯어먹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울러 지금 이 시간에도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수술을 하러 전신마취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오늘도 200M 상공에서 클램프 하나 등에 두르고 철골 작업을 하는 분들도 계시다. 그렇게 많은 어려운 분들이 계시지만 우리는 그러한 분들을 항상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해변가에서 수영하다 발바닥에 찔린 유리병 조각이라도 있으면 그 괴로움에 밤낮 잠도 못 이루고 빨간약을 바를 때마다 그 따끔하고 고통스러움에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사람은 이타적으로 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자신이 아니고서야 그 어려움을 잘 알기 힘들며, 그것을 해소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후배들이 계시다. 사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기쁨을 두 배로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각 친인척들 중 어려움을 겪는 일을 두 배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쁨도 슬픔도 빈도가 두배로 늘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복잡다단하고 개인적인 어려움을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회삿일이라면 집에 가서 배우자와 고충을 털어놓고 대안을 생각하지만, 이렇게 집안사가 얽히기 시작하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털어놓지 못하고 얼굴엔 울상만 가득한 나날을 지내게 된다. 이럴 때 누군가 와서 “너 요즘 힘들어 보인다. 어떤 어려운 일 있니??”하는 말을 건네주면 감사하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나한테 다 얘기해봐, 형이 다 해결해 줄게”라든지, “야 그건 다 그런 거야. 결혼하고 그런 걸로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일이나 해”로 이어진다면, 그건 좀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다.


위로는. 가만히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무언가 내가 해결해줘야겠다는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십을 조금 내려놓고. 상대방이 고충을 털어놓는다면, 가만히 손만 잡아주는 것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게 어떨까 싶다. 물론 상대방이 해결책을 물어본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그 고민의 강도는 반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도 그러하다. SNS에 고민을 올려놓는다는 건, 그 얼마나 힘들기 때문에 그럴까 하며 조용히 공감 버튼만 눌러주면 그만이다. 굳이 댓글에 이래저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도움되지 않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이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고, 내 생각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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