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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30. 2016

경험이 값진 사회

얼마전 똑똑한 신입에 밀리는 김 과장이란 기사를 봤다. 대체 신입사원이 얼마나 똑똑하면 입사 십년차 경험을 가지고 있는 과장을 치고 올라올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그러한 기사와 같이기업에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로 그 경험의 가치를 쉽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미국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어느 대학생이나, 올림피아드를 석권하는 고등학생, 혹은 프로무대에서 기량을 뽐내며 고액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 매번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이나 작가들의 실력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대중은 그들의 능력을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그 조직의 일원이란 이유 때문인지 대부분 무언가 하나의 어떤 균일한 능력의 집단으로 느껴지나 보다.



하지만 현업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들 능력은 분명 제각각이고 모두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한 그 뛰어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건 대기업/중소기업, 사무직/생산직, 국내/해외 등의 구분을 가리지 않는다. 수백 장의 영문서를 접수하고도 1시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모두 검토하고 보고하는 어느 대리님, 외국 설계사와 미팅을 해도 그 두꺼운 계산서의 오류를 하나하나 다 검토하여 더듬더듬 거리는 영어지만 실력 하나로 몇십억 원의 클레임을 이기는 어느 과장님, 애플이나 MS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 하나하나를 다 리뷰하며 현업에 적용하는 어느 차장님, 회의를 하며 상대방의 눈빛을 파악하며 자신의 속도로 전체를 조율하며 협상하는 어느 부장님, 복잡하게 꼬일 대로 꼬여버린 프로젝트를 어느 순간 가위로 잘라버린 것 같이 정리해버리는 상무님.



그런가 하면 남들은 용접하면 반나절만에 깨져버리는 쇄암봉을 그 4배인 이틀이나 버티게 만드는 용접사님, 수중에서 현란한 워킹 기술을 보이며 남들보다 몇 배는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잠수부님, 남들 이틀 걸리는 일을 하루 만에 끝내는 철근반장님, 자신만의 장인정신으로 도면대로 모두 꼼꼼하게 준비될 때까지 콘크리트 타설을 실시하지 않는 반장님,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측량기를 들고 다니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신뢰도 있는 결괏값을 보여주는 측량사님들. 나는 이러한 분들과 같이 일을 할 때면, 내 능력이 이 분들의 생산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무던히도 노력한다. 보탬은 되지 못하더라도 마이너스는 되지 말아야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분들의 능력이 일일이 다 조망받을 필요는 없다. 뭐 각자 경험이 많고 능력이 좋다면 그만큼 월급을 많이 받던지 근속연수가 늘어나든지 알아서 그 인센티브는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렇게 묵묵히 일하는 분들을 그저 도매급으로 평범한 직장인이라들지, 한낮 경험도 없는 신입사원에게 밀린다느니,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속품 정도로 인식하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다. 사실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분들은 화려하게 드러내 놓고 반짝 스타와 같이 주목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밤새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며, 공장에서 용접을 하며, 수중에서 조선소를 만들며,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가며 일을 한 분들일 것이다.


학위도 좋고, 전문 자격증도 좋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경험이라 생각한다. 어느 한 시험, 혹은 자격증만 통과하면 평생 먹고살만한 직업이 생기기 때문에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20대 후반 및 30대에도 몇 년 동안 공부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현업에 들어와 경험을 쌓는다면,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에 공시생들의 선택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솔직히 나도 대기업 공채 출신이고 한 직장에서 십 년 가까이 근무 중이지만, 나는 경험 많은 경력직의 이동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 공채로 뽑히고 나면 실력을 키우지 않아도 자리를 눌러 잡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경력직의 순환이 되어 잘 하는 사람들은 더 잘되고, 태만한 사람들은 조금 자극을 줄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려면 사회적 안전장치, 즉 고용보험의 기간 및 보험금의 정상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아직은 그러기엔 우리 사회가 조금은 부족하다.


한 분야에서의 5년 경험, 10년 경험, 20년 경험, 나아가 30-40년의 경험은 책이나 교육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교수나 학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현업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다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사회의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 경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한 사회가 발전해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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