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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Dec 06. 2016

인센티브의 사회

간혹 현대사회는 부자들이 탐욕적으로 계속해서 자기 부를 늘리려고 하고 베풀지 않아서 문제라고 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결국 영속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그런데 잘 한번 생각해보자. 완벽히 만족할 수는 없지만, 인류 역사상역대 이렇게 모든 사람을 죽음과 폭력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장애를 가지거나 부모가 없이 태어나거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성인이 될 수 있게 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사회, 대부분의 선진국 시스템에는 복지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가난하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분들께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거나, 국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주거나, 교육을 시켜준다. 이 복지비는 대략 국가예산의 절반 가량으로, 대부분 부자라 분류되는 사람들의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의 명목으로 거두어들인다. 결국 현대사회는 부자들의 돈의 일부를 가난하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사각지대 분들에게 가져다 드리는 시스템이 확립되었고, 이러한 사회는 역대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쉽게 조선시대를 생각해보자. 태어날 때부터 왕족, 귀족, 천민, 노예 등으로 계급이 정해져 있어,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계급은 바뀌지 않을뿐더러 나이가 어려도 귀족은 천민에게 함부로 대하고 명령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게 비단 백 년도 안된 일이다. 천민이나 노예는 굶어 죽거나, 서당을 다니지 않거나, 미성년자 때부터 일을 하더라도 국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계셨던 시대에도 병자는 그저 혼자 곪아 죽어갔을 뿐, 국가나 사회에서 한센촌 같은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일단 민주주의란 개념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인류문명 대부분 사각지대에 몰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다.



간혹 태평성세를 이야기하며 요순시대에는 백성들이 너무 먹고살기 좋아 군왕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이렇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공무원이 사회복지 등의 업무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일을 잘 하는가, 시장이, 국회의원이 일을 잘 하는가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선거를 통해 심판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있었으니 예전과 달리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삶이 적어도 최저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다시 부자의 탐욕으로 돌아와 보자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신의 부를 증진시키려고 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한국도 헌법을 통해 사유재산의 존재를 인정하는 나라다. 자신의 부를 늘리려고 노력하며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 등 각종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다면 돈이 아주 많은 부자라 할지라도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편법으로 경영승계를 한다던지, 탈세를 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때에 따라 법적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을 구분하지 않고, 이 사회의 문제점은 모두 그 탐욕스러운 부자들 때문이다 라고 재단하는 것은 좀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한 룰에 따른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부여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 인센티브를 뺏어오는 게 좋은 사회는 아니란 말이다. 예컨대 그다지 성과에 집착할 필요 없는 공무원의 숫자를 과도히 늘려나가는 사회, 공기업의 민영화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회, 과세구간을 계속해서 높여 부자들의 돈을 국가로 가져오길 바라는 사회,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버스요금이나 지하철 요금은 올릴 수 없는 사회, 이렇게 큰 정부를 만드는 사회에서는 결코 그 인센티브의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진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그의 공약 중 하나는 구글이나 애플 등의 글로벌 기업의 사업장을 미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높은 법인세, 미국 외에서 발생한 이익까지 세금을 매겨버리는 현재의 인센티브 낮은 시스템에서는 이들 글로벌 기업들이 아일랜드나 카리브해의 조세 장벽이 낮은 섬들로 사업장을 이동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들이 발생시킬 수 있었던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가 미국 땅에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솔직히 지금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국내 영업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상기 언급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과 같이 사업장을 조세 장벽이 낮거나 인센티브를 많이 부여해주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사내유보금을 꺼내놓으라거나, 베풀면서 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공에 맴도는 의미 없는 메아리일 수 있다. 결국 이 국가재정 자체가 그 기업이 낸 법인세, 기업들이 만든 상품으로 파생된 부가세, 기업이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으로부터 발생한 소득세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근로 혹은 사업 확장 의지를 꺾는다면, 그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려울 것이다. 괜히 스웨덴이 상속세를 없애고,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법인세를 낮춰간 것이 아니다. 그들도 결국 기업, 그러니까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없애면 나라의 영속성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국민들이 현정권에 분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내 생각엔 기업들에게 삥을 뜯어 본인들은 몇백억 원의 재단을 맘껏 운영한다던지, 아들이나 딸을 이상한 말 같은 것에 태워 명문대에 거저 입학을 시키고 교수 위에서 학점을 잘 받고 하는 부분에 분노의 임계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렇게 초법적인 월권행위가 더 이상 이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못하는 아이는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 않은 학생은 낮은 학점을 받고, 높은 직위의 누구와 친하다고 어떤 특별한 혜택을 받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지 않나 생각해본다. SM5를 타고 다니는 검사장 친구가 불쌍해 보여 제네시스를 선물한 기업인 친구, 청렴한 공직생활을 해서 변변치 않은 재산을 못 모은 친구에게 몇십억 원의 주식을 준 친구, 이런 분들에겐 법적으로 확실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깨워 드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란법의 도입은 정말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시스템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한국은 물론 인류 역사상 끊이지 않는 돈이나 물건으로 사사로운 일을 매수하는 행위의 근절이, 적어도 법적으로 시스템이 시작된 것 아니겠는가. 이런 법적인 규율을 확고히 만들고, 그 위에 어떠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또 만들어갈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그저 남의 곳간이 너무 많으니 저것 좀 가져다쓰면 안 되겠나 하는 도둑놈 심보 말고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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