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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an 21. 2017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후마니타스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후마니타스, 2016


후우-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까. 그래, 이 책으로 2016년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없이 고마웠다. 읽는 내내 한 숨만 내쉬어지고, 나에 대한 반성, 그리고 눈가엔 눈물이 계속 고였다. 읽다가 집에 가서 아내에게도 한숨을 반 섞어가며 이 사회에 이러한 일이 있었노라 전해주며, 그렇게 소중한 이틀을 보내게 해 주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정의로운 사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크고 형체가 애매한 담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정의롭고 싶지. 하지만 그 정의롭지 못하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미시적이고 구조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년엔 대선도 치러지게 될 터인데, 또다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뀔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뽑지 않을 것이다. 지난 87년 이후 우리는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 지도자를 배출했으며, 그분들은 문민정부를 이뤄내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권위주의를 청산했을 뿐만 아니라 인권이란 가치를 사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이끌고 나왔다. 경제는 한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세계 11위 수준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정부도 결국 장단점은 존재했고,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완벽한 사회를 이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의로운 사회.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분들이 말한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정말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힘쓰시는 분들이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가지 ‘늦은’ 정의,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그리고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모두 사회적 약자에게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이다. 그러한 폭력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오늘날에도 자행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두 사건, 즉 삼례와 익산의 사건의 경우는 어떠한 악마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시점에 따라 되돌리지 못하는 사람의 치졸함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내며 현 정부의 역린이라 평가받는 어느 유명하신 분도, 30여 년 전 학력고사 전국 석차 53등의 탁월한 성적으로 S법대를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로 만들겠다”라고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십여 년 흐른 지금, 그는 한국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하며 부정과 부패의 몸통으로 수사받고 있다. 이렇듯 사람은 본디 정의를 입에 담고 살 수 있지만, 때에 따라 정 반대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삼례와 익산의 이야기에는 정말 무고하게 피해를 당하고 살인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복역하는 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폭행하고 죄를 뒤집어 씌운 경찰과 검찰, 그리고 사법부가 등장하며, 진범들도 차례로 나오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자 일은 꼬여가고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연출된다. 눈을 딱 감고, 거기서 석고대죄를 하든 뉘우침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악마의 씨앗은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다.


“변호사나 기자나, 그냥 보면 안 보이는 걸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당신이나 나나, 그런 거 해야 해요. 안 보이는 걸 보여 줘야지…. 안 그래요? P.26”


변호사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 내가 이 부분에서 벌써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에 이처럼 자신의 직업을 본연의 의미에 맞게 수행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나는 얼마나 직업윤리 혹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이분들은 이 억울한 재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SNS의 가족사진도 다 내리고, 밤에 잘 때는 몽둥이를 침대 위에 놓고 주무셨다고 한다.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그렇게 자신의 권리와 행복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며 아쉬운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언제 그렇게 굳은 각오로 무언가를 해본 적 있는가 하는 반성이 들더라. 아울러 이렇게 정의로운 분들이 세상을 조금씩 밝혀 나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박 변호사는 그때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다. 1999년 2월 6일 발생한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치사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3인조 중 두 명에게 지적장애가 있고, 한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이다. P.37”


이 지점에서 문득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과외를 받아보지 못하고, 학원도 몇 달 다녀본 적 없고, 대학 다닐 때 용돈을 혼자 벌어야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유학 갈 돈이 없다고, 결혼할 때 한 푼 지원 없이 결혼했다고, 신세를 한탄하던 시절,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대기업이란 그럴듯한 직장을 다니며 사회를 살아가지만, 아직도 간혹 재벌이나 탑스타 연예인의 삶을 볼 때마다 이 사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불만이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진정 이 사회의 소외된 계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애초에 가정환경 자체가 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대응할만한 인적 지적 능력이 부족한 분들에겐 이 사회가 어떻게 느껴질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에게 가해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미성년자 거나 중등교육 이상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던. 이런 점을 언급할 때 또다시 여당이나 박 대통령 같은 기득권층만 떠오른다면 당신도 반성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야당과 진보 언론의 이중적인 태도는 특별하지 않다. 대개의 한국 시민은 시국 사건 등 정치적이고 유명한 사건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에서 사회적 약자들, 일명 ‘잡범’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겪는 인권유린에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P.322”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경찰은 한글을 쑬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 자술서를 만들게 하였고, 검찰은 그것을 바탕으로 구형을 하고, 사법부는 받아들였다. 단돈 1만 원이 없어 자신을 위해 무료변론을 해주는 변호사와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로 1만 원만 달라고 부탁을 한다. 진범이 범행을 저질렀어도 검사는 너희는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이 사건들이 대부분 00년을 전후로 일어났으며, 범인이나 피해자들 중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00년, 내가 홍대 앞에서 신나게 놀면서 영화와 책을 읽으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던 그때, 이 분들은 그렇게 억울한 고초를 겪으면서 십 년 넘게 복역을 하셨다는 게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 울음소리 사이에 세상을 향해 외쳤던 삼례 사건 피해자 강 XX 씨의 말로 마무리를 해본다.



“세상에서… 나를 위해… 울어 준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진범…”


2016년이 두 시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시점, 2017년에는 부디 올 해보다 조금 더 나아진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박상규 기자님, 그리고 박준영 변호사님께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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