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근하던 날 문득, 회사 옆 CU에 들러 초콜릿을 산 적이 있었다. 그냥 하나 사러 갔는데, 2+1이 있길래 세 개를 집었고, 아몬드 초콜릿이 맛있어 보이길래 그것도 세 개를 집었다. 그러고 돌아서려니 빨간 키캣 세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길래 고놈들도 집어 총 아홉 개의 초콜릿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문득 들려오는 편의점 점원분의 목소리.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 봐요?"
"네??" 나는 난데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 점원분을 보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야근하시다가 이렇게 초콜릿 상품을 많이 가져가시길래.."
"아, 네, 직장생활이 그렇지요 뭐" 하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점원 분은,
"힘내세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도, "넵! 그쪽도 힘내세요!" 하고 나왔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이고, 개인적으로 나도 그 개인주의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난데없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나니,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남이 무엇을 하는지 상관할 바 아닌 세상은 누군가에겐 편리하고 윤택할 순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처럼 차가운 세상도 없을 것이다.
한 에피소드를 더 하자면, 예전에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던 어느 현장소장님을 뵌 적이 있었다. 지금도 보면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그 장팔사모를 든 것 같은 아우라는 오금을 살짝살짝 저리게 만드는 위엄이 있더라. 하지만 듣던 바와는 다르게, 그 소장님은 상당히 젠틀하고 그다지 직원들에게 간섭을 많이 하지 않으시더라. 무언가 듣던 바와 다르다고 생각하다 저녁을 같이 먹으며 맥주를 같이 했는데, 이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전엔 직원들 한 명 한 명 업무는 물론 인간 개조를 할 만큼 업무 외 시간에도 간섭하고 관리하고 했다고. 하지만 요즘엔 상향 평가라는 것을 하여, 꾸준히 그러한 클레임이 회사에 전달되고 하여, 이제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당신도 이제 귀찮으시다고. 다 잘되라고 하는 것이었다고.
음, 요즘 젊은 세대라 함은, 물론 나도 포함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윗세대의 간섭에 대한 강한 반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간섭에서 해방되어 개인주의적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간은, 정말 그러한 동물인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물의 왕국에 가면 사자와 표범이 존재한다. 사자는 군집을 이루어 다니고 표범은 홀로 다닌다. 동물도 본디 태어난 습성에 따라 군집을 하기도 하고 홀로 다니기도 한다. 인간은 사자의 습성을 가지고 태어났나 아니면 표범의 습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니면 그것은 각자 내재된 유전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것인가.
모두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를 간섭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각자 제 잘난 맛에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만해도 어릴 적 엄마가 멀리 출타를 하시면 옆집 아주머니가 밥을 해주시고, 아빠가 간혹 출장을 가시면 아빠 회사 동료분이 나를 데리고 시내에서 영화도 보여주고 피자도 사주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응팔에서 보인 바와 같이, 그때만 하더라도 마을 공동체 개념이 있어 동네 어르신들의 잔소리도 참 많았다. 심지어 서로 보증을 서주기도 하고, 자주 돈을 꿔주기도 하였다. 지금 어디 동네 주민이 나에게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면 은행을 가보시라 하며 응수할 것이다. 그만큼 나도 많이 차가워졌다.
물론 그 시절의 향수를 예찬하자는 건 아니다. IMF가 지나며 개인보증의 시대도 막을 내렸고, 개인 간 대출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어느덧 회사에서도 시니어가 주니어를 그렇게 심하게 간섭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개인적으론 상당히 선호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리고 내가 혹시 이 직장에서 그만두게 된다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소득이 없어져 은행도 카드사도 더 이상 나를 고객(이라 쓰고 호갱이라 부르리라)으로 상대해 주지 않는다면. 그러면 알아서 도태되어야 하는 것인가.
소설 속 주인공은 끊임없이 사회의 규칙과 이질 된 본인을 두고 고민을 한다. 적절히 자신의 패턴을 유지하며 사회 속에서 존재하려 하지만, 주변에선 계속해서 간섭을 해댄다. 삼십 대 후반에 여자, 그리고 미혼에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그것도 편의점. 거기다 연애도 한 번도 안 하고 결혼할 생각도 없다니. 그게 정상이니? 하며 간섭을 하고 힘들게 만든다. 아이고, 이분들 참 오지라퍼들이네, 뭐 이렇게 남으 일에 간섭을 하고 지랄이니. 하는 생각에 머무른다면 이 책이 굳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진 않았겠지. 대학을 졸업한 후, 편의점에서만 근무한 지 이십 년에 가까워 편의점의 소리가 들린다는 주인공. 그렇게 편의점에 익숙해진 개인은 매뉴얼에 몸을 맡기며 일상을 살아간다. 인생의 매뉴얼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매뉴얼에서 살짝 달리 사는 주인공, 그러나 편의점 점원의 매뉴얼에선 정석을 사는 주인공, 그렇게 다른 두 자아는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데. 개인과 사회. 어찌 보면 이질적일 수도 있고 조화로울 수도 있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바라보며, 나는 어느 것이 낫다고 감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개인주의자 선언. 그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