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작년 말에 적은 글인데, 일이 바빠 조금 늦게 포스팅을 옮겨 놓습니다
기억의 편린을 하나둘씩 끄집어내는 일에 사용되는 도구로는, 대표적으로 음악을 들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유럽여행을 하며 들었던, 군대에서 각 잡고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옴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은 어떠한 다른 도구와 엮여서 저장되고, 그 도구를 통해 고구마 줄기와 같이 끄집어 내게 된다.
저녁에 다시 회사를 가야 하는 불우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31일을 맞이하여 집안 대청소와 함께 일 년 치 읽은 책을 정리해 보았다. 기억 속엔 있지만 안 보이는 책들도 있고, 이게 올해 읽은 책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었다. 공통점이라 하면, 읽으며 느꼈던 감정, 일상의 기억, 출장지에서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는 것. 그럼 책을 통해 기억을 한번 정리해 보자면.
작년에 이어 올해는 경제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 초반 홍춘욱 박사님의 환율의 미래를 필두로 스마트한 경제공부, 그리고 벤 버넹키의 연준과 금융위기를 말하다, 행동하는 용기까지 나아갔다. 솔직히 벤 버냉키의 첫 번째 책은 정말 감명 깊게 읽었지만, 두 번째 책은 역량의 한계로 중간에 접은 기억도 난다. 그리하여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를 정리해보고자 권 교수님이 번역하신 교과서 경제학원론을 사서 탐독했고, 하반기엔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타 글리츠의 책들을 보며 조금 더 진보적이고 불평등한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미시적으로는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 그리고 김동조 선생의 책을 통해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엉이 선생의 추천을 받아 구매한 채권투자의 비밀, 내년엔 이 채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에 있어서는 초반 오르 부아르라는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필두로 거인들의 몰락, 세계의 겨울 시리즈를 통해 근현대 유럽의 역사를 조금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로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팩트에 조금 더 다가가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석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건 황금의 샘과 에너지 전쟁 2030은 인생에 보탬이 될만한 수준의 책이었고, 다시 읽은 총 균 쇠와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 전체의 역사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정말 미시 거스를 꿰뚫는 코스모스를 읽은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하나씩 더듬어 가며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며, 이는 내년에도 쭉 이어지길 바란다.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쿳시의 추락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아울러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긴장감을 돋우는데 효과적이다.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인간의 바닥을 느낄 수 있는 르포였다. 김훈 작가의 소설들이 어디로 간지 모르겠는데, 역시나 일 년에 한두권 가량 김훈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비단 백 년 조금 넘은 정약용 선생 일가의 기억을 소설로 엮은 흑산이 기억난다.
그밖에 조 스터드웰의 아시아의 힘은 한국인으로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고, 채 작가님의 뉴 스테이도 참으로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하는 바이다. 김동조 선생의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문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나의 최근 삶의 궤적과 비슷한 방향을 드러내고, 박상규 박준영 공저 지연된 정의는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을 통해 우리는 이전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행복의 기원을 통해 그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을 심리과학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에 대한 책도 의학의 발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알게 해주며, 신의 언어를 통해 신학과 과학은 양립할 수 있음을 새삼 또 깨닫게 되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논픽션 쓰기를 통해 글쓰기 실력이 조금 늘었나. 그건 조금 의문이지만, 두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여하튼 대략 백여 권의 책을 사고 절반 정도 완독 한 것 같다. 책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2016년은 나름 일도 열심히 하고, 괜찮은 책도 많이 읽고, 훌륭한 SNS 친구들도 많이 접하게 되며, 의미 있고 뜻깊은 해였던 것 같다. 부디 정유년에는 그 관성으로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관계를 잘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이 건강해서 기분이 좋고, 내년엔 동생도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어 행복하다. 계속해서 어려운 일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어려운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내재되어 있으면 좋겠고, 비관보단 낙관이 주를 이루는 인생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도 2017년 즐거운 한 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