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Disgrace, J.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동아일보사
현존하는 국가들 중 가장 심한 문화 경제적 격동을 겪고 있는 나라라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꼽을 수 있다. 이 나라는 1994년 이전까지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보장된 국가였으며,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에 따르면 흑인은 일정 구역 외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소웨토 지역 같은 곳이며, 이는 영화 디스트릭트 9에 등장한 지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나는 디스트릭트 9를 보진 않았으니 "그렇다 하더라")
이것은 결과론적 관점, 그리고 철저히 제삼자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히 잘못된 일이었고 고쳐야 하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이 책 초반에 남아공 화폐인 400 란드가 약 8만 원이라 언급되는데, 역자가 번역한 2000년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400 란드의 가치는 3만 4천 원 수준이다. 16년간 화폐가치가 절반 이상 하락한 것인데, 이 기울기는 만델라의 취임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는 현상이다. 즉, 평등은 이루었지만 경제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만델라 이후의 흑인 대통령은 상당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하야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설에도 등장하는 빈번한 강도와 강간, 주로 가하는 쪽은 흑인이고 당하는 쪽은 백인이다, 백인에 대한 증오. 그리고 백인도 네덜란드 출신의 보어인들과 영국 혹은 독일 출신 간들의 갈등. 이들의 갈등은 지난 수백 년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며, 과연 봉합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운 지점에 이른다. 여하튼 이 소설은 그러한 사회적 환경 한가운데서 쓰인 작품이며, 그 이국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인간사회에 대한 조소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이하 소설 중반까지 스포 있음)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케이프타운 어느 대학의 교수이며, 어떤 면에 있어서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나는 본능의 관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를 발견하고, 문제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그 상황을 흥미롭게 읽어갔다. 하지만 이내 장면은 케이프타운이란 도시에서 이스턴 케이프라는 시골로 옮겨가며, 그 장면 전환으로부터 데이비드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흔들림을 감지한다. 사실 환경은 한 사람의 관점을 재단하는 프레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주변인들은 나의 시각에 꾸준히 클리셰를 양산해 나간다. 이러한 데이비드에게 앞서 언급한 백인과 흑인과의 갈등, 혹은 지엽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범죄는 더 그를 어렵게 만든다. 현대인, 한국사람이라면 이제는 당연히 여길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또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 그것은 머리로 받아들여지더라도 가슴으론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조금씩 분리하려는 그의 모습, 어린 시절 교육의 대상이었던 딸이 어느덧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독립적 개인으로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간접적 체험을 하게 된다. 나는, 얼마나 그리고 비좁게 내 시각에 의해 살아오고 있는가. 그런 사회의 굴레는 벗어버리는 게 좋은 것일까, 순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노벨문학상, 그리고 부커상에 빛난다 하기엔, 쿠 시라는 작가는 그러한 상을 수상하러 가지도 않는다 한다. 역자는 그의 냉소적 성향은 카프카의 비관적 세계관과 같이 어떠한 디폴트 된 성격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자가 책을 번역하며 본 쿠시는 상당히 친절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작가였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 세계관, 하지만 때로 발현되는 그 냉소적인 시각 혹은 멜란 콜리 한 감성. 그것은 어찌 보면 한 사람에게 모두 투영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겨울비 내리는 이런 12월에는 출근길마저 감상에 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