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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Feb 28. 2017

[서평] 사피엔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인류의 역사,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며, 선사시대, 그러니까 기록조차 없던 시기의 이야기는 사실 그냥 반신반의하면서 읽는 습관이 있다. 뭐 얼마든지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약 25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부 아프리카에 출현한 이후 네안데르탈인-호모 에렉투스-호모 뭐시기 뭐 이런 식으로 진화된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지역에서 살다가 살아남은 종이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도구를 만든다거나 힘이 더 쎈 종족은 네안데르탈인이나 다른 여타 종족인데, 사피엔스가 그들보다 나았던 한 가지 점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 


여기서 재미있는 필자의 코멘트가 나오는데,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라는 나름 뒷담화 정당화론을 펼친다. 뒷담화를 통해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신뢰할만한 정보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뒷담화가 발달되어 현대에 발생한 것들이 이메일, 전화, 심지어 신문 칼럼이라는 것이다.
비록 문서로 기록은 안되더라도 이 언어를 통한 구전은 상당한 경쟁력을 의미한다. 예컨대 사자는 무서운 동물이다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배운다면 그 근처로 가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무서운 사자가 옆 동네에 왔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도망갈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조금 더 나아가 부족 정신, 국가, 종교 등의 개념을 만들어 사피엔스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끼리 협력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자기보다 훨씬 큰 생물, 매머드, 네안데르탈인 등을 이길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건 예전에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쓴 책 ‘빅 퀘스천’에도 나온 개념이긴 한데, 결국 그렇게 사피엔스는 지구를 철저히 사피엔스에 맞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시시대인 수렵채집의 시기에도 이 사피엔스의 발걸음이 닿기만 하면 정말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시베리아의 매머드, 호주의 최대 유대목이라던 디프로토돈 등이 그렇게 사피엔스에 의해 사라져 갔다고. 사피엔스는 그 본래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언어를 통해서 협력을 할 수 있었고, 매머드 같은 거대한 동물도 이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인지 혁명을 마무리한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 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농업혁명의 시기로 가면 조금 더 이기적인 사피엔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디 이동하며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하며 밀이나 쌀 등을 경작하기 시작하였으며, 풍년과 기근을 경험하며 필요 이상의 것을 보관하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현명한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농업과 더불어 상당히 비자연적인 현상은 가축화된 동물들이다. 1만 년 전엔 몇 백만 마리밖에 되지 않은 양이나 소, 염소, 돼지, 닭이 현재엔 어마 무시한 숫자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각각 10억 마리의 양, 돼지, 소, 그리고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존재한다고 한다. 지구를 이렇게 만든 것, 그것은 인류라는 것이다. 이미 문명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지는 않기 시작했다. 이어 기술되는 현대 인류의 가축 사육기는 참 다시 들어도 거북 해지는 부분이다. 여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에 쓰이는 가축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사육되고, 도살되는지 이런 부분을 들을 때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지 참 어려운 부분이다.


이후 저자는 인류문명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연 평등과 개인의 자유는 보편타당한 명제인가 하는 부분이다.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현대사회의 복지라는 개념은 상기 저자의 코멘트와 어느 정도 모순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명시되어 있는 이 ‘자유’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지점이다. 결국 평등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절묘한 무게중심 잡기는 우리 인류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깊은 생각 없이 이야기하는 보편타당해 보이는 명제를 비틀기 시작하는데, 나름 신선하기도 하면서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도 나는 부분도 보이긴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론 일본-한국의 사례는 아니고, 로마나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의 예를 들며 설명한다. 사실 나도 나름 친하다는 스페인 친구에게 아메리카를 물어본 적 있다. 선교라는 미명 하에, 이사벨 여왕에겐 금을 가져다준다는 명목 하에, 무자비하게 스페인이 정복하였던 아메리카 대륙을 그 스페인 친구는 문명화;Civilization를 시켜준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 부를 추구하려던게 아니라 주민들을 진정한 신앙으로 개종시키려는 것이었다고.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과한 믿음을 경계하는 것은 이런 부분에 있다. 영국도 물론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란 쌍둥이 복음을 퍼뜨리기 위해 식민지를 만들었겠지.


후반부는 과학혁명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요 근래에 읽은 경제 관련 서적, 그리고 앞서 언급한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빅 퀘스천’이란 책과 다소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선한 맛은 조금 떨어졌다. 사실 책을 많이 읽고 여러 방면에 잡다한 분이라면 이 책은 특별히 재미있는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드문드문 비어있는 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류 역사를 한 몸체로 쭈욱~ 이어서 되돌아보는 데에 꽤 괜찮은 책이라고 본다. 책이 다소 두꺼워서(600 페이지가 넘음) 긴 호흡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지만, 나름 소장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혹시 상기 언급한 사피엔스의 주제들, 그리고 자본주의 및 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하긴 뭐 그런 목적이라면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A Little history of the world도 꽤 괜찮은 책이긴 하지만. 구별될만한 점이 있다면 20세기 초반의 곰브리치가 서구적 시선에서 인류를 바라보았다면, 21세기 초반의 유발 하라리는 나름 동양이나 제3세계 쪽의 시선이나 사건도 꽤나 다루었다는 것 정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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