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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Feb 28. 2017

[서평]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동녘사이언스

아툴 가완디라는 의사의 책은 작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이 책,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은 그 이전에 나온 책인데, 영어원제는 Complications이다. 영어 제목이 짧으니 이하 Complications라 지칭하겠다. Complication은 한국어로 문제, 혹은 합병증의 의미를 뜻하는데, 아무래도 가완디는 중의적인 의미의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책은 크게 오류 가능성, 불가사의, 불확실성의 주제로 이어지는데, 의사로서 여러 가지 문제에 최선을 다해 접근하지만, 그 답을 찾기는 요원하여 문제는 점점 쌓여간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제목을 짓지 않았나 싶다. 의료현장뿐만 아니라 이 세계는 불확실성과 딜레마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업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 파트인 오류 가능성에서는 가완디가 외과 전공의 수련과정에 들어온 지 4주째 되던 때에 배웠던 중심정맥관 삽입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중심정맥관 삽입은 환자의 흉부를 국소 마취한 후, 길이가 약 20 센티되는 카테터를 심장으로 연결되는 대정맥까지 집어넣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어려워 보이는 이 일은 간혹 정맥을 찢어놓는 과다출혈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뛰어난 두뇌보다 좋은 손기술이 필요로 하는 이런 일을 하며 가완디는 깊은 상념에 빠진다.


“그들(외과의사들)은 연습을 믿지 재능을 믿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외과의가 되려면 손재주가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외과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볼 때 바느질을 시켜 보거나, 손재주를 테스트하거나, 손을 떨지 않는지 확인하는 시험관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손가락 열 개가 다 있을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물론 재능이 있으면 좋다. (중략) 외과의들은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끈기는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p.32”


나도 처음 중동의 건설현장에 발령 났을 때, 그 막막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선배들로부터 된장이라고(해외현장 초짜를 된장이라 하더라) 무시당하고, 하도급업체 인도 매니저들과 현장에서 매번 언성을 높이고, 영국 감리원들의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고, 노무자분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해상공사를 하기 위해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잠수부 아저씨들과 옥신각신할 때는, 과연 내가 여기서 이런 거친 일을 할만한 역량은 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냥 학교 다닐 때 리더십 있고 싸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사람이나 뽑지, 왜 맨날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만 하던 나 같은 놈을 뽑아 회사는 회사대로 생산성을 내지 못하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를 받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 나는 오기가 생겼고,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실수를 오늘은 하지 않으려 했고, 밤마다 선배들을 찾아가 이런 경우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어봤다. 수백 페이지짜리 계약서 및 스펙을 밤새워 읽고, 도면을 보며, 악바리같이 버티어냈다. 어떻게 하면 저 거친 아저씨들을 데리고 원하는 공사기간에 맞추어 완료할 수 있을까 고민 고민을 했다. 그렇게 첫 휴가인 4개월째가 되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하더라. 현장에선 노무자분들이 할 일이 있고, 반장님들이 할 일이 있고, 나 같은 매니저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었다. 감리는 감리 나름대로, 팀장이나 소장은, 발주자도 다 그 나름의 할 일이 따로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물론 매니저로서 사람들을 잘 이끄는 통솔력도 필요했지만, 공정을 관리하는 능력, 물량을 계산하고 관리하는 능력, 계약이나 스펙에 맞는 시공을 계획하는 능력도 필요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능력을 원래부터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다. 결국 내 자리에 요구되는 덕목은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배울 수 있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약간의 영민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외과의사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이 부분을 보며 꽤 많은 것을 느꼈다. 나도 사실 신입사원의 능력 중에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꾸준함과 영민함이다. 사실 이건 일정 시간 옆에서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토익점수나 학점 같은 대체할 수 있는 정량적인 점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나마 일련의 정(+)의 상관관계는 이룰 것이다.


서양의학은 한 가지 명령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의료행위에서 기계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술실에서 동료 의사들한테 듣는 가장 큰 찬사는 “가완디, 자넨 정말 기계 같아.”라는 말이다. 여기서 ‘기계’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특정 상황 하에서 인간은 정말 기계처럼 행동할 수 있다. p.59”

나는 이 부분에서, 내가 하는 해외건설 업무도 어떻게 하면 균질한 품질(?)을 낼 수 있게,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사실 건설, 특히나 내가 하고 있는 견적업무는 어느 정도 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의학이 어떠한 프로시져를 만들어 의사에게 그 기계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내 업역에서도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안전이나 품질업무에는 이미 꽤나 적용되었는데, 시공에 있어서는 조금 그 다양한 변수로 인해 요원하긴 하다. 그나마 해외현장의 경우는 여러 절차서와 프로시져를 명문화하여 균질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조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건설업에서도 Lessons Learned는 많이 시행한다. 의사들은, 드라마에서 보듯이 이런 Lessons Learned를 실제로 많이 한다고 하더라.

“의사들이 자신의 실수에 대해, 비록 환자들에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의사들끼리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유병 및 사망사례 회의;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또는 간단히 M&M 콘퍼런스라고 하는 것으로, 미국의 거의 모든 수련 병원에서 대개 매주 한 번씩 열린다. (중략) 비록 한계는 있지만 개인의 과실 책임에 대한 칼날 같은 원칙은 M&M의 큰 덕목이다. (중략) 우리에게 요구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중단 없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p.104”


건설업은 상당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특히나 해외건설업은 더욱더 그러하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 분야의 위기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고민이 많다. 어쨌든 미래라도 인프라에 대한 니즈는 계속될 것이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충분한 인프라의 건설이 필요하므로, 해외건설의 시장 확산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 다만 그 시기, 그리고 부침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건설에 있어서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벽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적이지 않은, 진짜 과거의 장단점을 따져볼 수 있는 Lessons Learned, 혹은 M&M과 같은 회의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게 된다.


책에는 수많은 환자와 의사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의학 관련 교양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지나친 전문용어의 등장으로 이해가 좀 안 가기도 하면서도, 점차 적응되며 병원이란 곳에 대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치료에 대한 결정이 과거에는 의사의 절대적 재량권에서 점차 환자 및 보호자에게 설명, 그리고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넘어가는 추이도 흥미롭다. 환자에 대한 이야기 중 단연 백미는 마지막 부분 등장하는 엘리노어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의사에게는 그만의 엘리노어가 있다. p.309”

단순한 피부병인 줄 알고 입원했다가,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다리를 잘라내야 치료가 가능할 만큼의) 중병에 걸린 이십 대 여자 엘리노어를 치료하며 의사 가완디가 겪은 불확실한 환경과 결정의 연속은 의사로서의 고뇌를 진심으로 느끼게 해준다. 사실 세상 어느 것이나 그렇듯이, 의료계에 있어서도 그 확률만 존재할 뿐이지 100% 이 병이다, 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느 정도 추리와 통계, 경험, 그리고 직관을 통해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 때문에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결정의 연속임이 느껴졌다.


의사만 그러할까. 나도 건설현장에서 결정을 하고자 하면, 그 많은 위험요소 및 리스크가 머릿속에 흘러간다. 본사 사무실 책상머리에서도 결정할 일이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데, 내가 사인했을 때 훗날 벌어질 리스크를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을지, 감사팀이나 유관팀에서 나중에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들이 많다. 그러한 불확실성은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말끔히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결정에 있어 최선을 다했다는 노력과 당시의 정보와 환경으로서는 최고로 합리적이었다는 논리만이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완디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마 지금 자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p.362”

나도 잡문이라도 쓰기 시작한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지만, 글을 쓰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한 걸음 조금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됨을 느낀다. 악성 댓글도 많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단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는지도 종종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의사가 쓴 책이라 어찌 보면 딱딱하고 나와 상관없을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먼저 인생을 살아간 선배님의 진솔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업역은 다르지만, 끈기와 노력, 완벽을 추구하려는 노력, 결정의 연속적인 순간에서 근육을 키워나가는 그를 보며, 나도 조금은 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누구나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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