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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Feb 28. 2017

[서평] 행운에 속지마라

행운에 속지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렙 지음, 이건 옮김, 중앙북스, 2004

실은 나는 계량 트레이더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탈렙의 전작인 블랙스완도 읽다가 도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잘 안 되어 중간에 덮은 전적이 있다. 아울러 저자는 책에서 서평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서평자의 자질이 지극히 높지 않다면 서평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서평자의 수준을 드러낸다. p.278"

맞다. 이와 같이 해당 분야에 전문지식도 없고, 자질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책의 서평을 쓰는 건 다소 부끄러운 일일 수 있다. 전문가가 보기엔 분명 그 수준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평을 쓰는 이유는, 유익하게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은 이유도 있고, 이렇게 기록을 해 두면 훗날 인용을 하거나 기억을 상기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레이딩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미안하지만 이 무지의 서평을 그만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책의 원제는 Fooled by randomness이다. 그러니까 한국어 제목인 행운에 속지 마라는 맥락은 비슷하지만, 오히려 원제에 비해서는 다소 완곡한 표현일 수 있다. 저자는 많이 배우고 상당히 직설적인 사람으로서, 대단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일에 주력한다는 것이 자신의 신조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다. 간혹 SNS를 통해 어느 유명한 지식인들의 인터뷰나 발언들이 조리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지나친 비난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건강한 비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판단력을 키우게 하고, 권위에 의존한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직설적인 아저씨가 있다는 것도 사회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실보다 득이 많을 수 있다.


최근엔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과거에는 어느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이룬 분들이 자신의 노오력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나 같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예를 들며 반박한다.


"물론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잘 지키고, 깨끗한 셔츠를 입고, 향수를 사용하는 등 일상적인 통념을 따르면 성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통념에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우리는 이 간단한 원리를 자주 혼동한다. 성공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혼동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복권에 당첨되려면 일단 나가서 복권을 사 와야 한다. 하지만 복권방에 가서 복권을 사 오는 행위 자체가 복권 당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행위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물론 필요조건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는 세계에서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p.19"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항상 필연으로 보는 것을 후견지명 편향 혹은 사후확신 편향이라 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의 노력과 연관시키는 것은 후견지명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즉, 자신과 같이 노력을 아주 열심히 하고 중요한 순간에 과감한 베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성공한 사람은 그중에 소수일 것이라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성공을 한 사람들이 꼭 매우 특별한 능력이나 매력, 신체적 특성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슈퍼스타 K라 가정해 본다면 참가자가 처음 백만 명이라면, 그중에 누구 하나는 분명 1등을 하여 상금 몇억 원을 가져갈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1등 한 사람이 top 10에 탈락한 어느 누구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이나 스타성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이는 심사위원의 주관적 판단, 그 시기의 바이오리듬, 선곡의 미스, 하다못해 공연장까지의 길이 밀려 허겁지겁 와서 노래 부르다가 컨디션을 망치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슈퍼스타 K에서 탑 10에도 들어가지 못한 볼빨간 사춘기가 뒤늦게 음원차트 1위를 하질 않나, 탑 10에 간신히 들어가 심사위원들의 온갖 타박을 다 받으며 2등을 한 장범준이 희대의 히트곡 벛꽃엔딩과 여수 밤바다로 연금 가수 귀족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이렇게 때로 그 성공이라 함은 어떠한 자로 그어 재단할 수 없는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책에는 그 예로 키보드 QWERTY 자판이 등장한다. 애초에 타자기 기술력이 부족하여 비효율적으로 배열한 자판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사람들이 적응하기 시작하니 그저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경로 의존적 결과라 한다. 어느 연예인이 스타가 된 원인, 보편화가 된 자판 배열, 등을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해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저자는 직관에 반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특성을 언급하며 광우병 사례를 가지고 온다.

"광우병은 10년 넘게 과장 보도가 쏟아졌지만, 교통사고 사망자는 수십만 명인데 반해 광우병 사망자는 수백 명에 불과하다. 과장 보도로 언론만 돈을 벌었을 뿐이다. (광우병으로 죽을 위험보다 식중독으로 죽거나 식당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을 위험이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하라) p.79"


광우병과 관련한 논의는 항상 조심스럽다. 얼마 전에도 미 FDA에서 언급한 광우병 관련 포스팅을 올렸다가, 어느 분이 댓글로 상당한 반감의 글을 주신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듯 통계적으로 교통사고 혹은 식중독 등에 비해 현격히 위험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영상이나 소문 등에 의해 위험의 가중치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판단은 상이할 수 있지만, 적어도 decision making이 필요한 업무를 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는 이렇듯 정확히 인과관계와 파생될 리스크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공항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여행객에게 여행 중 사망 시 10만 달러를 지급하는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라는 것과, 여행 중 테러로 사망할 경우 10만 달러를 지급하는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라고 권유했을 때, 대다수는 후자에 더 경각심을 느끼고 심지어 기꺼이 더 많은 보험료를 주고 가입을 한다. 잘 생각해보면 전자가 후자의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영상을 통해 접한 '테러'라는 자극적 단어로 인해 합리적 사고를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두 트레이더, 네로와 존을 들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투자를 해 나가는 네로는 대형 강세장에서도 큰돈을 벌지 못한다. 하지만 약세장에서도 네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미국이 망하지 않으면 말이다. 반면 존은 신흥국 하이일드 채권을 주로 다루어 강세장에선 네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수익을 올리곤 한다. 하지만 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절 신흥국 채권에 투자했던 존은 며칠 만에 폭삭 망하게 된다. 7년을 고액 연봉을 받으며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단지 7일 만에 실패자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나도 실은 리스크를 상당히 회피하는 스타일이다. 회사에 입사하고 2008년 금융위기 시절을 거치며, 허공에 날린 돈이 교훈이 되어 가급적 부채를 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설령 누가 주변에 아파트나 주식에 투자하여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려도 그저 귀를 닫곤 한다. 물론 월급쟁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려면 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믿는 편이라 가급적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상품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09년에 8-9%대의 고금리 예금상품을 제시했던 저축은행들이 무너져 나갈 때, 분양가 1억 8천만 원짜리 송도의 30평 아파트가 6억 원을 넘나들다 다시 2억 5천만 원대로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한 투자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저 차곡차곡 얼마라도 좀 모으고, 기대수익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곧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니 뭐 그렇다고 투자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고, 최소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시장에 대해 공부는 해 나가고 있다.


행운에 속지 마라는 제목의 책이지만, 저자도 어디까지나 입만 벌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과실이 주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노력을 충분히 하고 준비를 웬만큼 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 약간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는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장황한 설명을 해 나간다. 어조는 세고 투박하지만,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지 않아 잘 읽어보면 특별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트레이딩 관련 용어나 개념이 좀 와 닿지 않는 부분은 조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딩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을 잡기 위해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안한 노후를 위해, 오늘도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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