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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Feb 28. 2017

[서평]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 지음, 북돋움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가 보장된 시장경제 사회에선 사실 거의 모든 것이 경제와 관련되어 돌아가기 마련이다. 여기서 흔히 다수의 상식이라 통용되는 사고가 있을 수 있고, 소수의 편견이라는 사고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대개 그 비판적 사고 없이 편하게 다수의 상식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저자는 책 표지에서부터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라고 선언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구에게는 상식인 생각도 다른 누구에게는 의견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의견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따라서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이란 결국 자기 목소리로 가득 찬 책일 것이다. P.4”


그리고 당장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생각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받아들여질 것이라 한다. 옳지 않은 생각이라면 당연히 사장될 것이고, 그것이 시장의 작동방식이라는 것이다. 트레이딩을 하며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며 현상을 파악해야 하는 저자는 그러한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공을 보여준다.



책은 제목과 같이 거의 모든 것에 다룬다. 범죄와 정치, 성매매, 결혼, 교육, 사랑, 이혼, 직업 등 셀 수 없이 많은 주제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철저히 경제학의 관점에서 당위적인 면보다 현상적인 면에 집중하여 독자적인 논리를 펼쳐간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학적 사고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편견에 맞서 사회적으로 얼마나 효용성이 높고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지극히 편협적인 사고를 가진 나에게도 이러한 논리는 일정 부분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주장이 모두 옳다고는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저자의 철학이나 담론이라기보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인상 깊은 부분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낙태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실제 현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윤리적 선을 가장한 무지나 위선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P.64” 

성매매와 낙태와 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인간 세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도 국가 및 사회에 따라 그 적용 법이 상이하다.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래빗 교수의 ‘괴짜경제학’에도 등장하는 인물인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인구증가 정책의 일환으로 피임과 낙태를 금지시켰다. 금욕 세라는 항목을 신설하여 자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과세도 하였고, 임신을 회피하는지 감시하고자 월경 경찰까지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계획 없이 무작정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성매매, 소년병 등 환경에 노출되어있고, 각종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낙태나 성매매를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현상에 대해 법이나 정책을 제정할 때에는 도덕적 당위도 고려되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현상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의 윤리기준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가지고 사회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려 하는 게 위험한 것은 이러한 점에 있다.



개인적으론 조금 더 부담스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평균 결혼 연령이 35살 가까운 사회에서 그 시기까지 혼전 성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윤리나 종교 규범으로 다수에게 강제하면 불필요한 위선과 긴장이 팽배하게 된다. P.77”

어떠한 상식이나 규범이 옳은 지 틀린 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사회는 수천 년이 넘게 변해 왔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규칙은 다소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만약 작금의 상황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나 전 국민 중 남성 50%가 사라진다 하면 그러한 제도도 쉽게 유지되긴 어려울 것이다. 중동의 일부 국가, 그리고 과거 첩을 두고 생활을 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쉽게 제단 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지점에 있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일부다처제 등에 대해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지만, 현재 상식으로 통용되고 법으로 규정한 것이 언제나 진리는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웃음을 지었는데, 이 말은 누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지 모르겠지만 희대의 명언이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인센티브 구조도 잘못 디자인되면 없는 것만 못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P.108” 요즘 점점 더 그렇게 느끼는데, 그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저자가 얼마 전 트위터에 남긴 말이긴 하지만 “행복은 GDP에 있지 않다”는 말은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이 해야 하는 말이지 야당의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이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 싱스트리트라는 아일랜드 배경의 영화를 보며 비단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나 이탈리아 등 가톨릭 국가들은 이혼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 근무하며 만난 필리핀이나 스페인 국가 친구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철저히 카톨릭국가인 필리핀은 아직도 이혼을 법적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한다. 이렇게 어떠한 종교의 규범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면 결국 결혼하지 않고 법적인 테두리 밖에서 가정을 이루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발생하게 될 문제들에 대해선 뭐 언급할 필요가 굳이 있나 싶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이혼에 관한 법률은 ‘파탄주의’이며, 한국과 같은 나라는 ‘유책주의’라 한다. 즉, 파탄주의는 이혼을 원할 때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의 과실을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는데, 유책주의는 이혼을 하고 싶으면 배우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선 성격적 차이에 의한 이혼도 굳이 상대방의 단점을 들춰내야 하는 단점이 발생한다. 유책주의의 의도는 굳이 과실이 없는 아내를 남편이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정서가 깔려있긴 한데, 그것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저자는 결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결혼을 둘러싼 인간의 행동과 이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지난 2,00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를 합해도 지난 5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P.152”



교육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의견을 다수 제시한다. 그중 재미있는 부분은 같은 현상에 대해 어떻게 부모가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다. 예컨대 ““부모가 사준 적이 없는 과자를 아이가 먹고 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니 “친구 엄마가 사줬다.”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대답을 한다. 아이의 말은 사실일 수 있지만, 몰래 사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훔쳤을지도 모른다. P.183”” 이러한 상황에서 보통의 부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나는 네 눈빛만 봐도 아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이러면 결과는 좋아질 리 만무하다. 아이가 삐뚤어지기 십상이고 ‘어디 그럼 다음에도 한번 맞혀보시지.’하는 반감만 키운다고 한다. 이럴 땐 다음과 같이 대응하면 어떠게 될까.
“그랬니? 그러면 친구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화를 해야겠구나.”..
이런 식으로 진위를 반드시 확인해보겠다는 태도는 향후 그 아이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회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부하직원이 보고하는 바가 의심스러워도 바빠서 그냥 지나치기 시작하면 부하직원은 상사를 점점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때문에 어떠한 행동에 대해 의심이 간다면 진위를 파악하는 습관을 들여야 좋은 부모도 좋은 상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 언급된 내용만 봐도 솔직히 마음이 불편한 부분은 조금 있을 수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또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에게 항의한다면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으로 다수에게 통용되는 상식으로만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변동성이 크다. 언제나 옳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그 생각의 유연성을 길러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 자라온 환경, 처해진 상황,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에 따라 각기 상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통해 글을 마쳐본다.


“전략적일 수 없다면 철학적이기라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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