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새 책을 구매할 여력이 없으면 알라딘 중고서적을 이용하던지, 공립도서관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책을 구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일 년 365일 가방을 들고 다니며, 그 가방 속에는 무조건 책이 있다. 아내님은 간혹 격식(?) 있는 자리에 그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 좀 들고 오지 말라며 구박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가방 속에 책을 넣어 놓고 다닌다. 물론 그렇다고 늘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매주 라디오스타, 해피투게더 3, 아는 형님과 케이팝 스타는 빠지지 않고 챙겨본다. 그런데 그런 건, 빨래를 개거나 야식을 먹으며 봐도 되는 일이다. 그리고 SNS의 글을 읽는 시간도 하루의 일부를 제법 잡아먹는다.
그럼에도 일 년 365일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이유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늘 도적과 같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은 물론 아이와 키즈카페에 가거나 병원에 데려가서 대기하거나, 친구와 약속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하다못해 마트 주차장에서 대기할 때도 찾아온다. 업무상 외근을 나갔다가 하릴없이 몇십 분 기다리는 시간도 있을 것이며, 출장 가며 출입국 심사가 한 시간씩 늘어질 때도 찾아온다. 이럴 때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굳이 배터리가 소진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심심함에 벽과 대화할 필요도 없다. 저자와 대화를 하며, 한 장 한 장 읽어가면 그만이다.
간혹 기적의 속독법을 광고하거나 일 년에 책을 몇백 권 읽는다는 사람들을 본다. 독서의 방법과 목적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를 두고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런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목표를 잡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정량적인 수치에 집착하다 보면, 양서를 멀리하고, 휘발성이 강한 가벼운 책을 집게 된다. 책이라고 물론 다 좋거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처음 책과 친해려는 분들께는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 책을 읽었는데, 그것에 대해 대화할 사람이 없거나,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논해봐야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선 대부분 제목이라도 들어 본 베스트셀러와 친해지는 것은 초심자에게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다 보면, 어느 정도 평면적인 책의 내용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글에도 총론이 있고 각론이 있듯이, 책 종류의 총론을 어느 정도 살폈으면 각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읽기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책은 찾기 상당히 어렵다. 안 그래도 비싼 책, 두꺼운 책을 구입하거나 대여한 후, 반도 읽지 않고 버린다면.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여러 권 쌓여가면, 책을 읽는 흥미도 이내 사라져 버린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서평이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어떤 사람이 읽고 재미있다, 혹은 유익하였다는 책을 읽으면 타율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는 예전에도 책은 일주일에 한두권 정도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수준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SNS를 하며, 책과 친한 지인들의 독서목록을 보고, 한 두권 두꺼운 책들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살 땐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며 반신반의하며 샀지만, 이내 술술 읽히는 경험을 하다 보니 이젠 주로 SNS 친구들의 독서목록을 보고 책을 구매한다. 훌륭하고 독창적인 이론의 책은, 때로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임팩트가 크다.
오늘 퇴근길에 집어 든 이 사진 속의 책도 그러하다. 요즘 나의 보물창고인 망치님의 블로그(http://m.blog.naver.com/kerarara/220925897482)에서 골라 온 책인데,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다. 사실 오늘 저녁 또다시 출장이라 이 블로그에 있는 책 중 세 권정도를 사려고 했는데, 이 한 권의 가격이 조금 많이 사악하여 그냥 한 권밖에 사지 못했다. 비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포장을 뜯어 속을 들여다보니, 벌써부터 일이 주일 간 행복할 생각을 하니 흐뭇하다. 인류문명의 그 근원적이면서도 분석적인 접근은, 호기심이 많은 나로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책을 하루 이틀 만에 읽는 속독법으로 읽으면 과연 어떠한 것이 나에게 남을까. 한 장 한 장 곱씹어가며 읽으면서, 저자의 견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며 천천히 읽는 것이. 그리고 흥미로운 부분엔 줄도 그어가며, 내 의견도 적어가며 읽다가 말미엔 졸필 섞인 서평으로 기록을 해두는 편이 나의 인생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책에 있어서 그 일 년에 몇 권을 읽었느냐의 수치는 크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수라 할 지라도 양서를 읽어가며, 나의 가치관을 하나둘씩 형성해 나가는 것이 좋은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 때론 학업 때문에, 업무 때문에 바쁘다고 한탄을 하며,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그저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주야장천 읽는다면, 그것은 현실과 괴리된 형이상학적인 사상에 빠져들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며, 출퇴근 길에, 출장길에, 육아를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틈틈이 읽는 독서에 만족한다. 궁극적으로 독서를 하는 이유도 바쁜 일상에 있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며, 그 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 초2 큰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하는데, 무언가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라면, 지식의 습득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보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 이것이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습관이다. 학원비는 대략 한 달에 아무리 저렴해도 십만 원이 넘고, 수영이나 영어의 영역으로 가자면 이십만 원도 훌쩍 넘는다. 이때 차라리 그 돈으로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고 읽을 수 있다면, 그런 욕심이 든다면, 그것이 아이의 미래엔 더욱더 도움되는 일이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나저나_밀린_서평_언제_다_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