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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r 20. 2017

인생의 작은 쉼표

예전 아라비아 반도에서 근무할 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휴가를 가는 날이었다. 회사별로 다소 상이하지만, 우리 회사는 휴가일수 카운팅을 한국 땅을 밟는 시점부터 센다. 보통 두바이-인천 항공편은 밤 11시경에 뜨는데, 나는 무스카트에서 두바이까지도 이동해야 하니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그러면 그 현장을 뜬 시각부터 두바이-인천까지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까지는 어찌 보면 공짜로 주어지는 시간인데, 이 때는 무엇을 해도 행복했다. 막상 한국땅을 밟으면서부터는 마치 시한폭탄의 시간이 째깍째깍 가는 것 같이 휴가기간이 줄어들어 하루하루가 아쉽기 시작한다. 짧은 기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것저것 미뤄 왔던 버킷리스트를 몇 개 하다 보면 이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여하튼 그 무스카트 공항에 도착해 처음 하는 일은 수하물을 보내고, 공항 내 커피가게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음미하는 것이었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심과 동시에 나는 휴가가 시작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인생의 작은 쉼표가 주어지는 순간이다.



비록 일주일간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주말을 반쯤 걸쳐 귀국하지만. 그리고 한국 땅을 밟고 이삼일 후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 찰나의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시간. 숨 가쁘던 지난 일주일을 복기하며, 다음 주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 시간.



출장은 매번 챌린징 한 과제가 주어지는 시간인데, 금번 출장은 그 스트레스의 정도가 더욱더 심했다. 다행히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고 어느 정도 활활 타게 만들어 무언가 결실이 맺어진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든다. 물론 나도 내가 내일 어디에 있는지 모를, 한 치 앞을 모르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 가끔 아쉽기도 하다. 어떤 이들이 볼 때는 비행기 많이 타고 이나라 저나라 자주 다녀서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몇 달은커녕 며칠 앞도 장담할 수 없어 나는 가족여행도 쉽게 계획하지 못한다. 몇 달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내가 담당한 입찰 막바지에 이르러 친동생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출장 덕분에도 만나기로 한 약속 두 개나 펑크 내는 실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가득한 일이지만, 이런 중간중간 찰나의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행운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시간은 비행기 위에서 열 시간 넘게 가며 독서등 켜놓고 하는 타이밍이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그 고요한 수만 피트 상공에서의 독서. 비로소 책과 나만의 교감이 이어지는 시간이자, 내가 나를 오롯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니 생물이라면 누구나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너무 숨 가쁘게, 너무나 바쁘게 시간을 쪼개다 살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과할 수 있다고 본다. 나라는 사람을 리셋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의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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