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나는 취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가능하면 졸업을 하기 전에 취직을 하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나는, 당시 취업에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고3 때도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공부하며 낙천적이었던 내가 장염을 달고 살며, 때론 복통이 너무 심해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까지 있을 수준이었다.
이십칠 년간 부모님의 우산 아래 학창 시절을 보내다 스스로 세상에 한 발짝 딛는다고 생각하니 그 큰 부담감은 나를 지속해서 짓눌렀다. 취직을 하고 난 후 현재까지 장염을 다시 느껴보지 못한 것을 보면, 장염은 필시 스트레스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울러 당시 내가 느낀 그 인생의 무게감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스트레스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건대 삼성 사트 모의고사를 봐도 교내에서 꽤나 상위권이었고, 설마 나를 뽑아줄 회사 하나 없을까 하는 자만심도 다소 존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인적성 검사에 한번 떨어지고, 서류전형에서 두어 번 떨어지기 시작하니 자신감은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의 동요는 실로 기울기가 극심하여, 과연 이 세상에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더라.
그러다 교회의 어느 목사님과 마주쳤고, 그 목사님은 대뜸 "취직이 뭐 어렵나? 나 이전 교회 있을 땐 청년들 다들 그냥 대기업 가고 공무원 가고 그러던데" 하는 말을 나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말이 그렇게도 서운했다. 그 목사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진심으로 이를 ㅂㄷㅂㄷ 갈았다. 취업을 마치 취미생활쯤으로 보고, 각자 다른 케이스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가벼운 고민쯤으로 격하시키는 데에 대한 분노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목사님은 종교적 의미는 전혀 없으며, 시대가 다른 기성세대 정도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되돌아보면 그런 말을 던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취직한 지 십여 년이 지난 나에겐 그저 여러 개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사건은 정말로 치욕적이고 상처가 된 한마디였다. 알아서 다들 그냥 하는 취업을 왜 나는 못하는 걸까. 나는 정말 쓸모가 없는 인간인가.
사람은 각자 환경과 처지에 따라 고민하는 바가 상이하다. 이는 어느 절대적 기준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부장님은 신입사원의 고민을 이해하기 어렵고, 부자는 빈자의, 빈자는 부자의 고민을 이해하기 어렵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렵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부모가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 자녀의 고민도, 자녀에겐 정말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힘든 고민일 수 있다.
치열하게 고민을 해본 사람만이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 인생에 별 고민이 없이 잘 살아온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중간중간 고민은 많았지만, 그 고민의 흔적을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도, 다른 사람이 고민이라 하면, 그 고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뭐라 할 말이 없으면 말을 하지 말자. 내가 보기엔 정말 시답지 않은 고민이라도, 그에게는 정말 큰 인생의 고민이고 고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