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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06. 2017

[서평]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평론집, 창비

이 책은 본디 1974년 봄에 출판된 책으로, 72년 10월 유신헌법이 통과된 이후 사상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었던 시기에 나온 배경이 있다. 읽으며 제한된 정보와 환경 속에서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명료하게 파악한 선생의 통찰에 감탄을 했으며, 이는 40여 년이 지난 작금의 시점에 있어서도 당시의 사실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선생이 당시 국내 언론사 외신부장을 역임하고, 천조국 북서대(Northwestern university)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한 이력을 통해 보면, 그러한 꾸준한 외신을 접하는 것이 객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시대인식을 가능하게 해 주지 않았나 싶다.


본문에도 뉴욕타임스의 베트남전 통킹만 사례가 나오지만,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라 하여 외신 언론들이 정부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고 사실관계만 적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국내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 보는 시야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외신을 접하며 시각을 틀 수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책은 크게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물론 그 중심을 관통하는 미국과 소련은 책 전체를 감싸고 있다. 솔직히 동북아시아 역사 및 정세에 대해서 나는 아직 충분한 이해와 고찰이 부족한 상태임을 고백한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관심이 높아졌고, 슬슬 개별 국가의 역사 및 지도자들의 평전을 통해 살펴보기 시작할 생각이 생겨졌다. 그럼 그러한 전체를 바탕으로 각 주제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자로 중공(中共)이라 쓰이던 때이다. 한데 당시는 중국 공산당의 약칭으로 쓰이며, 중국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사용된 측면도 있었다. 당시엔 대만의 중화민국을 ‘중국’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게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며 중국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문득 내가 초등학생 시절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엔 정말 대대적인 뉴스거리여서, 정치나 외교를 하나도 모르는 초등학생에게도 무언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 시절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 방문하여, 부친의 직장 위치 때문에 제주도 중에서도 소길리 시골 살던 내가 근 15km를 넘게 집에 걸어간 기억도 난다. 고르비! 고르비! 하며 ㅂㄷㅂㄷ 이를 갈며 말이다 ㅋ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아무래도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조금은 연계된 측면이 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핑퐁외교를 기점으로, 중국과 미국 관계에 있어 해빙 모드는 어느 정도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얼핏 생각하기엔 중국과 소련, 그리고 북베트남 등의 공산주의가 하나의 일체화된 공동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북한을 제외하고는 소련과의 관계가 늘 종속적이거나 일체화되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 (=북한은 소련에 종속적 관계였다는 말이다)


물론 스탈린과의 갈등으로 인해 코민포름에서 영구 제명된 유고연방의 지도자 티토만큼은 아니지만, 모택동은 당시 소련사회를 자본주의화 또는 수정주의로 규탄했다고 한다. 본서에 따르면 소련에서는 미숙련 공장 노동자와 같은 공장의 최고 기술자, 관리인의 봉급이 최고 13배까지 차이가 났다고 한다.(p.104) 아무래도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소비에트 연방이 본디 농업국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산업국이 되려면, 그만한 인센티브 혹은 가혹한 채찍을 통해 인민의 생산성을 극대화시켰지 않을까 싶다. 이 스탈린의 정책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저서를 통해서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책은 장개석과 모택동의 국공합작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 사실 이들은 2차 대전 시절 대일 공동전선을 펴나가며 중국 인민을 협동 단결시켰다고 한다. 사실 1930년대 후반 당시의 시점만으로 보자면, 장개석은 명실상부한 국가지도자 및 영웅이었고, 모택동은 라이징 스타였던 측면이 있다. 전후 미국의 관점에서는 장개석을 통해 자유주의의 동아시아 확장 욕심이 있었지만, 이것이 좌절됨에 따라 동아시아의 역사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이는 사실 2차 대전 당시 일본도 미국의 영토를 침공한 적국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면 조금 더 접근이 쉬워진다. 1945년에서 49년까지 미국은 일본의 철저한 민주화/ 비 공업화/ 무장해제를 강행하며 국민당 중국의 강화에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p.296) 하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1950년 애치슨 라인을 그으며 일본 및 필리핀을 마지노선으로 동아시아 전선에서 다소 후퇴하게 된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 없다지만, 아마도 중국의 국민당이 중국 대륙을 접수하거나 어느 정도 수준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면, 일본은 미국의 지원은커녕 오히려 경제발전을 억제하는 방침으로 나섰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해석 측면일 것이다. 중국에 대해 언급할 때 저자는 “소련이 중국 공산혁명을 도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잘못된 생각은 없다. p.179”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도 그러하다. 일각에서는 베트남 전쟁하면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싸움에서 공산진영이 승리한 싸움이라 여겨지지만, 이 책을 기반으로 살펴보면 그러한 논리는 실제 베트남의 정세와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냉전과 관련하여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인상적이다. “냉전 용어의 관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정치적 사회과학적 사상을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죽일 놈과 살릴 놈, 악과 선의 이치적 가치관으로만 판단하는 버릇이 생겼다. p.355” 개인적으론 마블의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냉전시대 흑백논리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선과 악의 확대 재생산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호오이니, 이를 두고 논쟁할 생각은 없다.


베트남 전쟁은 따지고 들어가자면 1863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까지 근 100여 년 지속되었는데, 이백여 년간 지속된 항불해방투쟁을 고려하지 않으면 베트남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서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민족해방과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치민과 자유주의자로서 프랑스와 미국의 총애를 받은 고 딘 디엠이 그 두 명이다. 어찌 보면 전후 한국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호치민은 북베트남을 이끌었고, 고 딘 디엠은 남베트남을 이끌었는데, 호치민은 김일성보다 훨씬 개방적이며 유연한 사고의 지도자였고, 고 딘 디엠은 이승만보다 훨씬 무능력하고 부패한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북베트남 통킹만 밖에 순찰 중이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 어뢰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통해 미국은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한 시대를 풍미한 전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문제는 이 사건은 미국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 전쟁의 명분을 만든 대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관련 보고서를 입수하여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니까 미국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은 무리하게 동아시아지역의 자유주의 노선을 확장해 나가려는 도구였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백 년 넘게 지속돼 서구 외세에 대항하여 실시한 독립투쟁이었던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은 냉전 초입에 있어 그 반공 정서가 상당했는데, 이는 메카시즘이라는 용어로 대변된다. 자유의 수호신을 자처한 미국은 당시 33개 주가 법률을 제정하여 교사와 교수에게 충성을 선서케 하고 리버럴 한 교과서를 금지하였으며 조금이라도 반공주의의 건전성에 의심을 표하는 서적은 불살랐다고 한다. (p.36)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투쟁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절대적인 가치라는 관념에 지배당하면 이처럼 종교적인 신앙이 되고,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파괴하는 것만이 신의 축복을 받는 일로 생각하게 된다.(p.203)


이 책을 결코 정치적 색채로 누가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만든 책이 아니다. 이는 냉전이라는 체제 하에 행해졌던 정보의 단절, 왜곡, 제한을 통하여 어두워진 사람들의 관념을 조금이나마 환기시켜 주고, 어떠한 사람들에겐 등불과 같은 존재로 쓰인 것이라 보인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접한다 하더라도 세상은 복잡하고 어느 것 하나 무 자르듯이 딱 잘리는 것은 존재할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렇듯 어떠한 사안을 자세히 따지고 보자면 선과 악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국제적으로 이란 문제, 시리아/레바논 분쟁, 그리스 내전, 인도네시아 독립 문제, 팔레스타인 영토문제와 이스라엘-아랍 전쟁, 캐시미르 영토분쟁, 구 이탈리아 식민지 처리 문제, 키프로스 문제, 콩고 내란, 수에즈 운하 문제, 라오스 내란, 나이지리아 내란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p.342) 40여 년이 지난 작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기 언급한 문제 중 절반 정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제도 그러하다. 어떠한 측면에서 보자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니, 비극적 식민역사를 가지고 있다느니, 이렇게 까지 지역문제가 심각할 수 없고, 세대 간 갈등이 큰 나라가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문제는 범인류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며, 해결책이 요원한 문제일 수 있다. 어떠한 적폐 세력이나 악의 근원을 찾아 발본색원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안을 조금은 디테일하게, 자세히 바라보며, 그 문제점을 찾아가야 실마리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리영희 선생과 같이 좌우 균형 잡힌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국제적인 정세와 언론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것이 지식인의 기본자세가 아닌가 싶다. (당시엔 지식인이란 말을 상당히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관점에선 조금은 실소를 내뿜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저자의 용어를 한번 사용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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