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Jun 15. 2017

[서평] 덩샤오핑 평전

덩샤오핑 평전, 에즈라 보걸, 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4


흔히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이 사람의 이야기에는 당초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사석에서는 그래도 공돌이 치고는 역사에 관심이 좀 많은 편이라는 소리를 받지만, 나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 내가 속한 동아시아 역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 읽었던 삼국지나 손자병법,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유가 사상, 성리학 등의 영향으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지 않는가 하는 자만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자면, 나는 그 거대한 중국이란 나라의 정치제도 하나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이게 국가주석도 있고, 국무원 총리도 있고, 중앙군사위 주석도 존재하는데, 어느 하나 힘이 약하다 할 수 없는 구조다. 물론 작금의 중국에 있어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서 최고지도자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는 시진핑이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임인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을 할 때는 장쩌민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유지하여 어느 정도의 견제를 꾸준히 받았다. 


아울러 현재에도 시진핑이 비록 군사, 외교 등을 리드하는 최고지도자이긴 하지만, 행정부에 있어서는 리커창이 국무원 총리로서 책임총리의 독립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진정한 권력의 핵심은 그 통수권을 가지고 있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긴 하다. 실제로 중국의 1980년대는 덩샤오핑 체제로 굴러가긴 했는데, 이 덩샤오핑은 국가주석이나 공산당 총서기는 리셴넨이나 후야오방, 자오쯔양에게 시켰지만,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는 9년에 걸쳐 움켜쥐었다.


여하튼 이러한 복잡한 중국의 정치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간 여러 중국의 산업이나 경제 관련 서적들을 읽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피상적인 것을 나열한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이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 사실 이 덩샤오핑 평전은 그런 요량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1천 페이지에 달하는 긴 여정을 마치고 나니, 이제 그 중국의 정치체계 및 산업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는 이 기반을 바탕으로 언론이나 다른 책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깊이 중국이라는 사회 및 시장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여하튼 이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보자면. 덩샤오핑은 약 일백 년 전인 1904년 쓰촨 성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20세기 초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는 시계를 한 백 년쯤 뒤로 돌려놓는다.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이 2004년 출생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이 말이다. 그러면 우리 첫째가 2009년 생인데, 그러면 덩샤오핑은 1917년에 대략 열넷, 중학생 정도 된다는 것이다. 이게 1881년 정도 태어난 사람이라면, 1917년까지 가도 상당히 친근한데, 나의 삶의 궤적을 그 스케일에 맞추면 이해가 조금 더 잘되기 때문이다.


이 덩샤오핑은 1918년 근 공검학 운동에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공장 노동자 겸 학생으로 생활을 했는데, 1904년 출생임을 감안하면, 한국 나이로 대략 15세 즈음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뭐 당시야 워낙에 다들 먹고살기 힘들었다지만, 덩샤오핑도 하루에 크루아상 하나를 먹고살았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이 시절 프랑스에서 서구사회를 처음 직접적으로 접하고, 이어 1926년에는 모스크바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시야를 꽤나 광범위하게 넓힌 것으로 보인다. 후술 하겠지만, 이때 갖게 된 덩샤오핑의 국제적 시각은, 훗날 중국의 개혁을 이끄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과 구분될 수 있는 능력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할 수 있다. 그는 세계 발전의 흐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이론보다는 실제 행동을 책임졌다. p.41"

그는 서른이 되기 전인 1930년 초에 대장정에 참여하게 된다. 대장정은 중국 공산당이 국민혁명군을 피해 중국 내륙에서 서북부로 근거지를 옮기려고 감행한 행군인데, 이후 그는 국공내전과 항일전쟁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게 된다. 그는 스스로도 그 젊은 시절의 군 경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사실 간혹 보이는 그 혁명은 안단테로 라들지, 청년이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 라들지, 카펜터 정과 같은 불란서를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조금 화가 나는 게, 이 분들은 그 혁명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여 남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어린 시절 은행을 털어 레닌에게 자금을 대어주었다던지, 마오쩌둥과 같이 수십 년을 국민당을 피해 다니다가 마지막 역전극을 펼쳤다든지, 이러한 과정에 있어 그들은 수없이 많은 동료를 잃었고, 피를 흘리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거인들 말고 대부분의 범인들은 그 역사책에 이름 하나 올리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 경우가 상당하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고자 한다면, 본인부터 어서 저기 파출소라도 뒤집어엎고 앞장서란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러 현 체제 안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켜야 하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은 가능한 자제해야 한다 생각을 한다.


덩샤오핑의 화룡정점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 후반까지 인데, 사실 이러한 성과도 그가 마오쩌둥의 과오를 똑똑히 지켜보았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마오쩌둥은 공산당으로서 국민당을 이기고 그 큰 영토를 수복할 만큼 영민하고 훌륭한 혁명군이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그 혁명에 성공한 지도자와 국가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지도자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그는 마르크스-레닌 사상에 지나치게 심취하고, 실리적인 생각보다는 몽상에 가까운 정책을 시행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약진운동이다. 물론 문화 대혁명과 같은 공동 뻘타를 날리기는 했지만, 이 대약진운동이 작금의 한국에 시사하는 바도 조금 있어 보인다. 대약진운동은 모든 농민들을 공사에 소속시키고, 밥은 동네 급식소에서 모두 같이 먹고, 소유를 금지시키며, 토고로라는 소규모 제철소를 동네마다 지어 평등하고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밥을 두 공기 세공기씩 먹어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근로의욕은 감퇴되고, 수확량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아울러 전문성이 필요한 제철업에 농민들이 가담하게 되자, 그 용광로를 운영하기 위해 뒷산의 나무는 다 가져다가 떼지만, 순철을 만들 능력이 없어 거의 똥철을 만들게 된다. 결국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그 민둥산은 산사태가 나게 되고, 산사태가 나면 경작하던 논밭의 소출도 줄어들게 된다. 농산물 소유 및 축적 자체를 금지시키다 보니, 한 해 흉년이 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게 된다. 그렇게 대약진운동의 결과로 중국에서는 당시 3-5천만 명이 아사했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이를 보며 낭만적인 몽상가와 실용주의적인 집행자 사이에서 후자 쪽을 택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숨길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덩샤오핑은 은연중에 류사오치와 같은 대약진운동을 비난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고, 결국 문화 대혁명의 시기에 '자본주의 길을 걷는 당권파의 제2인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덩샤오핑은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고, 그의 가족들은 그 유명한 홍위병들에게 공격당하기 시작한다. 그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그들 아버지의 죄상을 실토하라고 강요를 받았으며, 끊임없는 홍위병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장남인 덩푸팡은 건물 유리창에서 뛰어내려 척추가 부러지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래도 덩샤오핑은 마오 주석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자식이 있는 부모로서, 이 시기의 덩샤오핑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가족들이 극한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사실 견디는 방법 외엔 달리 방도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덩샤오핑은 1973년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국무원 부총리로 복권이 된다. 그가 1904년 생이니, 거의 일흔이 다 된 나이에 복권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이미 인생을 놓은 시기였을 것 같기도 한데, 여하튼 여기서부터 진짜 스토리는 시작된다.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이 죽은 이후, 덩샤오핑은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화거펑과 조금의 힘겨루기가 있었지만, 여하튼 그는 중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책의 일부를 잠시 들여다보자.


"덩샤오핑은 조직이 신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단 한 명보다는 집단 지도부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만일 지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설사 작다 할지라도 일단 집단 지도체제를 갖추고 있다면, 다른 지도자가 대신 업무를 맡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55"


작금의 중국 정치체계가 왜 이렇게 변화해 왔는지 조금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나는 현업에서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어떠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그만 조직에선 맞을 수 있지만,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한 소수의 엘리트가 물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나중에 어느 조직에 수장이 된다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할지 고민이 된다. 뭐 일단 그런 고민은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


공산주의 지도자였던 그는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예컨대 힘들고 위험한 업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한 일인데, 이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반적인 습성이 있다. 따라서 그는 공산주의라 할지라도 노동자에 대한 보너스 차등 지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물질적 보너스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역에 따라 먼저 부자가 되는 지역이 있을 수 있는데, 성장을 위해서는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먼저 부자가 된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인민들이 따라올 수 있게 의무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마오쩌둥과 마르크스-레닌 사상에 경도된 보수성향(?) 간부들은 이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과 같이 공산주의 정치에 시장경제를 가미시키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한 일이 70 퍼센트 정도 옳다면 아주 괜찮은 일일 것이다. 만약 내가 죽은 후 인민들이 내가 한 일의 70퍼센트 정도가 옳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일 것이다. p.279"
사실 이 책을 읽으며 1/3 지점까지는 덩샤오핑이라는 인간에 대한 매력을 느꼈으며, 2/3 지점까지는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이어지는 텐안문 사태에서는 인류의 폭력성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치가 떨리는 부분도 존재했다. 책에서는 숫자적으로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전두환의 518보다 사망자가 적다고 한다. 그럼 518은 정말 ㅠ) 무고한 시민을 총칼은 물론 탱크로 밀어버린 일은 이 인물의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이 없었다면 작금의 중국은 절대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 하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자급자족만 옳다고 여긴 중국에 외국자본과 기술을 유치했다. 소련과 베트남을 상대로 군사외교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나타냈고, 중국민들의 주적이라 할 수 있었던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실리적으로 얻을 것을 얻어가며 인민을 기아에서 해방시켰다.


여기 매트릭스가 있다. 당신은 GDP 500불도 안 되는 나라에서 깨끗한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학교도 못 다니는 곳에서 살고 있다. 주변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열명 중 한 명은 돌이 되지 않아 사망하고, 이가 아파도 병원은 커녕 약도 먹을 수 없다. 파란 버튼을 누르면 당신은 덩샤오핑과 같은 지도자를 만나 넉넉히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 현대화 과정에서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들은 희생될 수 있다. 빨간 버튼도 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현대화 과정은 거칠 수 없어 잘 살기는 힘들지만, 지금 이대로의 삶을 계속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대로의 삶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수준에서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별반 다를 바 없어진다. 당신은 어느 버튼을 누를 것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한 버튼을 누를 기회가 있었다면, 중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텐안문 사태와 같은 것을 알고도 파란 버튼을 눌렀을까. 그것 참 세상 사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나의 확고한 판단은 조심스럽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난 후 얻게 된 또 하나의 교훈이지 싶다. 덩샤오핑의 정책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벌써 A4 기준 5페이지가 넘어가니 여기서 서평을 줄이고자 한다. 앞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얻은 중국 정치에 대한 지식은 언론 기사 공유 등을 통해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간 출장 오며 업어 온 책들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