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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l 17. 2017

[서평]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지음,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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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언 모리스 교수의 최신작인 가치관의 탄생을 흥미롭게 읽은지라, 모리스 교수의 역작이라 일컬어지는 이 책도 자연스럽게 들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그 1천 페이지에 가까운 벽돌 책이라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역시 읽은 보람은 분명히 있는 책이다. 모리스 교수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총, 균, 쇠의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흥미진진한 소설과 같다는 표현으로 이 책을 평가했는데, 주관적 관점에서는 인류 역사를 선사시대로부터 서술해온 대중 역사서 측면에서 보자면 꽤나 포괄적이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책은 좀 두꺼운 측면이 있지만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 그럼 책의 일부를 조금 들여다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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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은 '베이징의 앨버트'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19세기 초반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영국에 굴복하게 된 사건의 반대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흥미롭게 시작한다는 것. 사실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기념비적인 사건은 이 아편전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논리를 말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서양문명의 근원으로 보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실로 오랜 기간 서양의 문명은 동양을 압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후, 6세기경부터는 동양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데, 모리스 교수가 창안한 사회발전지수 측면에서도 동양의 지수가 서양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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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6세기부터 대략 1천 년의 시기 동안에는 동양의 사회발전이 서양을 압도하였는데, 단적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배와 정화의 배만 비교하더라도 그 차이는 확인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단 세 척의 배에 90명의 선원을 이끌 시절의 일백 년 전, 중국의 정화는 거의 300척의 배를 이끌고 2만 7천 명의 선원을 데리고 인도를 비롯한 아라비아, 아프리카, 어쩌면 호주의 해안까지도 항해했다고 한다. 역사의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물리적으로 정화의 선박은 캘리포니아까지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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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언급한 까닭은, 결국 이 역사학자 혹은 인류학자들은 어떠한 키워드를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려 노력하는데, 이언 모리스는 여기서 학제 간 접근을 통해 역사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물학, 사회학, 지리학을 통해 서술하게 되는데, 이는 어느 정도의 정량적 수치를 고안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같이 읽은 책은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인데, 이언 모리스의 책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매 챕터마다 지도를 먼저 보여주고, 언급된 지명을 심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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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대서양 및 태평양 항로가 제대로 발견되기 전인 수천 년간 동서양의 이동통로는 그 실크로드와 스텝 지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지도로 표시해주기 전까지는 아무리 그 단어를 들어봐야 이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언 모리스는 지도에 친히 그러한 루트를 표기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해도를 높이게 만들었다. 나는 때로 소설의 경우에도 그러한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거리의 개념이 작가와 독자 간의 괴리가 있으면 글을 이해하기 상당 부분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현대소설은 종종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데, 00시와 같이 가상의 도시가 등장하기 시작하면 나의 위치감각은 상실되어 극에 빠져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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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중고등학교 시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시작한 유인원에 대해 배웠지만, 사실 그 유인원들의 차이는 잘 구분하지 못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통해 사실상 그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는 전혀 다른 종, 혹은 아종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멸종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알게 되었다. 역사는 늘 해석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 100% 단정 짓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설에 대한 접근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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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러한 유인원 관점에서 보자면 최초의 동양인은 베이징원인이라 볼 수 있는데, 저자는 지난 100만 년 안에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별개의 원인이 동양과 서양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종 거론되는 것이 인종주의적 장기 고착 이론인데, 여기서 또 저자는 이를 유령이라 평가하며 사실상 가치가 없는 이론이라 여긴다. 이언 모리스는 고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에서 가르치는 좀 고매한 부류의 사람임은 틀림없지만, 그 문체로 가자면 직설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 인종주의적 장기 고착 이론에 대해서도 언급하자마자, '아니다'라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로 유전학적으로 프랑스에서 중국까지 그다지 차이가 없음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현생인류는 몇 번의 밀란코비치 주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에 살아남게 되고, 이 아프리카에서부터 7만 년 전 경부터 유럽으로, 아시아로, 그리고 아메리카로, 호주로 뻗어갔다는 말이다. 그러니 현재 인류는 동서양 상관없이 유전학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든 중국의 호모 에렉투스든 상관없이,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된 현생인류의 공통된 조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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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그 문명의 발달이 기후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점이었다. 지구온난화는 기원전 1만 7천 년 경 급속도로 진행되어 2-300년간 해수면이 12미터가량 상승했다고 한다. 남극의 얼음덩어리 안에 갇힌 공기방울에 포함된 산소 동위원소 간 비율로 추정한 지난 2만 년간의 온도 변화를 보면, 지난 2천 년 간에도 꽤나 편차를 두고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기원전 6천 년 정도로 가면 그 편차가 매우 심해지는데, 측면 구릉지대, 그러니까 현재의 이라크-터키 쪽에 존재한 농경생활이 기원전 9천 년 경임을 감안한다면 그 시절의 지구와 작금의 지구는 조금 다른 환경이었을 것임은 주지할만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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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 년 전쯤 이라크 남부 바스라라는 지역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보고 가장 깜짝 놀랐던 것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인근이 완전히 메마른 사막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인근에 산도 없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과연 이러한 곳에 인류가 어떻게 문명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온도 변화를 보면, 당시만 해도 기후는 현재와 상이했을 것이고, 농경을 시작할만한 충분한 환경은 갖추어졌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따뜻하고 습한 지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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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원전 3800년이 되며 세계는 다시 서늘해지기 시작했는데, 비가 내리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니 작물의 생장기간이 짧아지고, 메소포타미아 농부들이 수천 년간 구축한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확량이 충분하면 누구나 각자 자기가 소유한 지역에서 농산물을 먹으며 살 수 있었겠지만, 흉년과 풍년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 농산물의 축적이란 것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조직을 이루어야 했다. 즉, 국가가 출현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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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 강이 범람하고 비가 불규칙하게 오는 자연현상은 인간이 해석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만들게 되고,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통치자를 수호신의 아들로 표현하기도 하고, 이집트와 같이 파라오라는 신과 동일체인 왕을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갠지스강에서 공사하는 프로젝트에 잠시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그 갠지스강에 가보니 참으로 유역이 넓더라. 그러니까 인도의 몬순시즌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데, 이 시기에는 갠지스강의 수면이 평소보다 8-9m가량 상승한다고 한다. 높이가 8-9m이면, 강폭으로 따지자면 거의 2-3km에 이르게 되는데, 작년에 기록적인 홍수가 난 이후 인도 파트나 시를 관통하는 갠지스강의 경우는 그 수로 자체가 틀어졌다고 한다. 강변에 살던 사람들은 이러한 홍수 하나로 삶의 터전을 잃을 수도 있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약간 인샬라적인 측면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수천 년 전 인류는 이러한 환경에서 딱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긴 어려웠겠단 생각도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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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렇게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중세, 근대, 현대까지 동서양의 역사를 훑으며 쭉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여기서 모리스 교수만의 특징은 사회발전지수라는 정량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 시기의 동서양 문명을 비교하는데, 이러한 시도에 대해 모리스는 역사학은 전기톱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역사는 현재가 아니므로 늘 유적 혹은 기록을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어떠한 합리적 해석을 도출하기 위해선 오차범위를 감안하더라도 정량적 접근을 하며 판단을 내려가는 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부록을 할애하여 그 인덱스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저 정성적인 평가만으로 비교를 해봐야 어차피 끝도 없는 논쟁의 연속일 터인데, 이러한 지수를 고안하며 오류를 보완하며 발전해 나가는 편이 무언가 의미 있는 결괏값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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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인 왜 서양이 지배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더듬어 보자면, 사실 개인적으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시점으로 한 유럽 경제의 부흥, 그 생산성의 격차를 따라잡으려던 영국의 산업혁명, 이 두 가지 사건이 가장 중요한 차이였지 않나 싶다. 저자는 책에서 끊임없이 역사는 압력이 가해질 때 변화가 시작된다, 게으른 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역사는 변화하게 된다는 논조의 말을 한다. 동양이 과거 1천 년간 우위에 있던 시절, 오히려 궁핍하여 열악한 선박으로 신대륙을 발견해 내겠다던 콜럼버스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증기기관을 만들어 인도에 비해 현격히 증가한 생산량으로 영국의 방직산업을 일으킨 요인, 그 이후 화석연료의 사용을 통한 비교할 수 없는 산업혁명의 도래. 이러한 측면이 서양의 패권을 어느 정도 만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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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지난 50년간 동양은 무척이나 열심히 서양을 따라왔고,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서양이 계속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고조부보다 두 배 가량 오래 살고, 15 센티미터 가량 크게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여성은 더 이상 임신과 육아로 상당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으며, 영아기에 죽는 사례는 현격히 감소했다. 동양이 앞서든 서양이 앞서든 현대문명은 확실히 그 과거 어느 시점보다 인간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그 펼쳐질 불평등의 가속,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 로봇의 출현, 유전자 조작을 통한 기존 가치관의 충돌,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것에 대한 고민과 해결방법 도출을 위한 노력은 동서양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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