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대 국가, 다니엘 예긴, 조셉 스태니슬로 공저, 주명건 옮김, 세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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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의 제목은 The Commanding Heights인 이 책은, 전후 반세기 동안 인류가 각 국가를 이루어가며 그 시장과 국가가 어떻게 서로 우세한 고지를 점령하며 변모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나부터 그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20세기 후반의 세계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각 국가들은 그 반세기 동안 상당히 다채로운 형태의 국가 형태를 구성해 왔으며, 작금의 시점에서 이를 반추해보는 일은 꽤나 유의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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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영국의 경우 전후 페이비언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국가의 근간이 되었는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은 1945년 7월부터 시작된 연합군들 간 개최된 독일 포츠담 회담 중, 총선에서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패배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애틀리는 영국의 제43대 총리로서, 노동당 당수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영국은 각종 산업을 국유화하기 시작했고, 각종 사회복지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전국 병원들을 국영화하기 시작하며 현재 영국 복지의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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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약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애틀리 역시 사회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그 기본적인 사고는 비슷할 수 있지만, 애틀리의 경우만 놓고 보자면 그 개념은 아주 상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브르주아를 때려잡고 프롤레타리아를 사회의 주류를 만들고자 하는 급진적인 생각이 공산주의라면,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로 성장시키자는 점진적인 생각이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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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구분은 1930년대 독일에서도 존재하였는데, 당시 독일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관계를 틈타 반대급부적으로 부상한 정당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고, 흔히 이를 Nazi당이라 일컫는다. 사실 이 나치당은 민족주의 및 반유대주의, 전체주의로도 유명하지만, 이들은 공산주의도 극렬히 싫어했다. 여기에 당시 독일의 보수당이던 독일 국가 인민당과 내각을 구성했으며, 마침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공산당의 소행으로 만들어 독일에서 공산당을 금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건한 독일의 사민당은 아무리 소리를 외쳐봐도 이미 그 히틀러는 수상이 되고, 1933년 총선거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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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 사상은 같은 시각을 바라볼지라도, 그 속도와 방법에 따른 차이로 인한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금의 한국정치를 다시금 거시적 시각에서 조망하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그러한 속도의 차이, 혹은 디테일의 차이가 국가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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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은 거의 모든 세계의 역사를 훑어가며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점이다. The Prize, The Quest 등으로부터 접하게 된 이 다니엘 예긴의 서사구조는 꽤나 독특하여, 지엽적인 개인 간 스토리를 거시적인 담론의 수준으로 확장하는 능력을 가진다. 그래서 마치 독자는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다 전체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 예로, 예긴은 제3세계 부분을 언급할 때, 인도의 스토리를 이어가는데, 여기서 자와할랄 네루와 마하트마 간디의 관계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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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립투쟁의 정신적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와 국민의회당의 당수 네루는 독립을 같이 쟁취한 동지이긴 했지만, 국가를 이루어가는 관점에서는 다소 상이했다고 한다. 간디는 널리 알려진 스와데시, 즉 가내 생산, 마을 단위 자족, 가구마다 방적기를 갖추며 자족경제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루는 국민의 비참한 가난을 제거하는 방법은 기술의 진보, 그리고 기계를 바탕으로 한 산업화, 공업화라 믿었다. 그 둘은 경제적 비전이 매우 상이했다. 여기서 간디는 비극적으로 힌두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되고 마는데, 예긴은 조금은 냉철하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948년 1월 30일. 한 힌두 극단주의자가 간디를 암살했다. 나라 전체가 충격과 깊은 슬픔에 잠겼다. 네루로서는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경제 계획을 막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1964년 죽을 때까지 수상으로서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네루 수상 아래서 인도는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다. p.113"
사실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본다면 네루의 인도가 실패한 이유는 사회주의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강했던 탓이라 생각한다. 20세기 중반, 네루의 인도는 분명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국가의 크기가 상당히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였다. 당시 애틀리의 영국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시스템을 둘 다 차용하여 국가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핵심 사업을 국유화하고, 규제와 통제 부문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마할라노비스라 하는 뛰어난 경제학자는 경제가 투입과 산출로 상세하게 분석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과학이라 여겼다고 한다. 공공 부분은 확대되었고, 일부분은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를 했다. 문제는 그 예측대로 국가의 경제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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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j라는 단어가 있다. 처음 인도에 가서 이 단어가 무엇인지 영어사전을 찾아보고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를 일컫는 고유명사임을 안 적이 있다. Permit Raj. 이 단어는 독립 이후 허가의 지배를 받는 인도를 비꼬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인도는 무수한 규제와 쿼터, 관세, 그리고 끝없는 허가와 면허, 통제들이 난무하는 사회다. 만모한 싱이 1990년대 이후로 개혁한 현 상태의 인도도 막상 사업을 하려고 하면 그 무수한 세무 장벽 때문에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문을 두드리다 돌아오곤 한다. 지난 7월 인도 정부는 상품 서비스 세라는 GST의 대개편을 통해 이러한 규제와 장벽을 조금 더 낮추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경제발전의 결과로 다가오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규제의 늪은 빠져나오기 조금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인도는 여전히 외국법인에 대해 법인세율을 43.26%나 부과하고 있다. 리스크를 안고 해당 국가에 투자하려는 외국자금에게는 분명 크나 큰 장애요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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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국가가 나서서 설정해야 하는 규제는 존재한다. 예컨대 독점방지를 위해 공정거래 규제는 할 필요가 있고, 근로기준법의 설정으로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근로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세금이나 기업의 의무, 리스크의 부담 등을 강조하다 보면 투자가 저조해질 수 있고, 이는 부가가치의 낮은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세율을 올려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세수는 줄어들고, 공공복지의 바운더리도 제한될 수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그러한 허가의 지배, 네루, 그의 딸, 그 딸의 아들로 이어지는 사십여 년 간의 사회주의 성향의 통치, 그리고 민족 간 갈등으로 인해 너무나 오랜 기간 가난에 노출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인도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만모한 싱의 개방경제 정책 이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인도와 같이 거대한 인구의 시장도, 내수경제로는 결코 경제발전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에 회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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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으면 조금 더 많은 측면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제 주일학교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 둘째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해서 마무리를 해보자면. 이 책은 절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제약은 있지만, 황금의 샘과 같이 재출간을 통해 작금의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평에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저자는 유럽을 시작으로, 중국, 소련, 인도, 미국 등의 거대한 국가에서부터 아프리카나 남미의 소국들까지 언급하며 다양한 국가의 형태를 비교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좌우의 균형은 존재한다. 간혹 그 균형이 깨지어, 어느 한쪽으로 흘러가게 되면 그 국가의 미래는 조금, 혹은 많이 암울해지는 것이고.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현 정부의 초기 방향이 다소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지난 십여 년 간 보수정부 아래 행해져 왔던 다소 오른쪽의 한국을 조금은 왼쪽으로 가져올 수 있는 측면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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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급진적인 정책이 계속해서 발표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당초 현 정부를 지지한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이것이라면 처음 반년에서 일 년 정도는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의 역할이 점점 더 크게 된다면, 혹은 조금은 국가가 과도하게 소비재 하나하나의 금액까지 통제하려고 한다면, 시장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대 영국이 애틀리의 노동당으로 시작하여, 대처의 보수당으로 개혁을 한 후, 다시 블레어의 제3의 길로 접어들었듯이, 한 국가의 운명도 그렇게 좌우로 가면서도 궁극적으로 우상향의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그러한 낙관적 나의 생각이 한국의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이 나라가 그 정도의 폭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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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찾는 길은 쉽지 않다. 그리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전후 칠십여 년 간, 인류가 지구 각지에서 펼쳐 온 국가운영의 사례를 축적하여, 그리고 작금의 다른 나라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축적되는 판단과 경험 속에서 정책을 추진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방향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누군가의 생각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길보다는, 조금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