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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02. 2017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2015

작년에 황금의 샘을 처음 접한 이후로 역사소설인 거인들의 몰락, 동아시아 현대 산업사를 분석한 아시아의 힘,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 등을 읽으며 나는 20세기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거기에 올해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와 같은 인류를 거시적으로 분석한 책을 보면서도, 젊은 스탈린이나 덩샤오핑 평전과 같이 현대 국가를 형성한 거인들의 발자취를 톺아보며, 나의 포커싱은 다시 동아시아, 더 나아가 한국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다행히 서구권에서부터 시작한 이 역사에 대한 관심은 거버닝 차이나와 일본의 재구성 등의 책을 거치며 동북아시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었고, 얼마 전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리얼 노스코리아를 읽으며 북한의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은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이 책,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읽는 내내 느낀 바지만, 참 적기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이 아닌가 싶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책들로 얻어진 20세기 및 동서양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이 책을 온전히 소화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책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아주 오랜 중국 한인의 이야기인 삼국지적인 세계관이 열국지적인 세계관으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작금의 국제관계를 바라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책은, 제목에서도 보여진 바와 같이 동아시아를 해양과 대륙의 관점에서 조망한 책이다. 저자는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국문학 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일본에 대한 전문가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 책은 일본에 대한 설명이 많고, 그 시작도 임진왜란으로 출발한다. 임진왜란 전까지의 동아시아와 그 이후의 동아시아는 바라보는 틀 자체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사실 나도 이에 많이 동의하는 편인 게, 기술이 진보하며 국제관계도 그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양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5세기 이전의 동아시아는 중국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러했는데, 칭기즈칸을 필두로 한 거대한 몽골제국이 13세기 무렵까지 맹위를 떨치고 원나라가 중국에 세워진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스텝(Steppe) 지역이 동서양의 연결로 역할을 하여 서쪽으로는 헝가리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고려까지 하나의 제국으로 묶이게 되었다. 헌데 그때에도 하나의 제국으로 묶이지 않았던 지역이 있었으니, 일본이었다. 해양기술의 발달이 더디기도 하였고, 몽골이라는 제국 자체가 기마민족을 바탕으로 이룩한 국가이기에 그렇기도 했다.


간혹 남한은 북한으로 단절되어 있어 작은 섬나라라며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발전에 제약이 있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 하지만 항공과 해양기술이 발달한 작금의 시점에서 이러한 관점은 상당히 진부하다 생각되는 게, 국제 제조업 무역거래의 구할은 해상물류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중국과 같이 내륙을 중심으로 국가를 유지해도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현대사회에 있어서 해양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도 현재 일대일로(一帶一路)라 하는 육해상 실크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일본은 그같이 큰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전기와 석유가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는 작금의 세계에서 그 해양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는 냉각수와 원자재 물류 때문에 대부분 해안가에 지어지게 되며, 석유나 LNG는 유조선을 통해 대량으로 말라카 해협이나 파나마 운하를 통해 이동하게 된다. 언뜻 떠오르는 세계의 대도시들, 그러니까 런던, 뉴욕, 상하이, 도쿄, 상파울루, 홍콩, LA 등도 대부분 항구도시이며, 문명의 발상지도 강가에 위치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강은 바다로 이어져 있다. 20세기 이후 급부상한 도시국가들 역시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등 해상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던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역시 모두 섬나라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상기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해양의 중요성은 현대사회로 이어질수록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며,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대륙에서 해양으로 양분화되는 동아시아의 정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해양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꾸 외국 학자들이 쓴 책을 주로 읽게 되는데, 그 오랜 기간의 연구를 대중서로 펴 내어줘서 감사하단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면서 국내에는 이러한 전공에 대한 대중서를 낸 학자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마음을 제대로 씻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독창적인 식견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임진왜란을 일종의 종교전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세례명까지 있는 가톨릭교도 장군이었으며, 그와 대립한 가토 기요마사는 열렬한 불교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토 기요마사가 믿는 불교는 13세기 몽골/고려 연합군에 대항하던 시기에 니치렌이라는 승려가 개창한 니치렌슈라는 종파로서, 이는 일종의 일본식 호국불교 성격이 존재한 것이라고. 임진왜란 때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와 같은 예수회 신부도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이들은 조선민족을 보았을 때, 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이교도들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나 역시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인간은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었을 때 가장 잔인하게 전쟁을 치렀음을 역사는 수천 년에 걸쳐 증명한다. p.56"
예전에 언급한 바가 있는 에피소드인데, 언젠가 몇 년간 같이 근무하던 JV사 스페인 동료에게 남미에 대해 물어본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피사로와 두께라는 군인과 신부에 의해 잔혹하게 정복된 잉카제국의 아따우알빠 황제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터라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확장에 대해 다소 미온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 스페인 동료는 식민지 근대화 수준의 논리로, 자신들이 16C 아메리카의 후진적 사회를 Civilization을 시켜준 것이라 하더라. 확신에 찬 그의 말에 딱히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어려웠으며, 이게 보는 시각에 따라 어느 한 사건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침략을 이러한 종교와 근대화론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상당한 논리를 실어주게 되고, 살인을 하면서도 특별히 죄의식을 지니지 않게 된다. 상당히 무서운 부분인데, 이렇듯 정복자의 관점과 피지배자의 관점은 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형성되기 마련이고, 이런 부분에 있어 간혹 종교는 그 타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사례는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청교도 혁명, 스페인 가톨릭의 아메리카 정복 등 셀 수 없이 많이 있으며, 현재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전, 알카에다, ISIL 등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임진왜란 시점에 이미 서구와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조총을 무기로 침략한 것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대에 쇄국 체제를 유지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막부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통해 일 년에 한 번씩 풍설서라 불리는 해외 정보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나가사키항은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중심으로 독점적으로 네덜란드 무역을 할 수 있게 허용해주고 말이다. 여기서 조선의 쇄국정책과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조선의 경우는 정말 문고리는 물론 망원경까지 걸어 잠그고 쇄국을 한 반면, 일본은 그래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라는 창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밥먹고 하는 일이 해외 인프라 공사를 찾아보고 견적을 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라 먹고살기 위해 국제정세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알아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은 한국이라는 사회를 다시 들여다보기에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 북아프리카-중동이나 동남아시아 역사를 들여다보며 그 오랜 식민지배의 아픔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터키의 역사를 통해 대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 북유럽의 낮은 법인세와 높은 소득세 및 부가세를 통해 어떠한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보기도 하며, 50%가 넘는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국가들을 보며, 국가의 기간산업이란 어떤 것이며,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느껴가고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글로벌 트렌드를 거시적, 미시적으로 톺아보는 일은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국내 정치 경제를 들여다보는 안경의 역할로도 꽤 괜찮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끊임없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여진족을 비롯한 타이완, 필리핀, 심지어 인도까지 거론하며 동아시아의 오백 년 역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있고.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바는,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의 역사는 그 한반도 자체적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역사이며, 근대 역사 역시 일본과 한국과 만의 단선적인 선악구도의 관점에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미 백 년도 더 전부터 이 한반도는 다양한 플레이어가 현란하게 얽혀 국제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흔히 우리는 900여 차례의 외침을 받은 평화로운 민족임을 자처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고구려도 영토를 확장하며 북방민족들을 없앴으며, 그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조선도 여진인을 탄압했고, 태평양전쟁에는 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다른 동아시아 국가를 침략하기도 했다. 근래의 베트남 전쟁에서의 고엽제, 민간인 피해 등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한국도 그렇게 당하기만 한 피해자는 아닐 수도 있다.


침략과 피침략을 모두 경험한 국가로서, 어떻게 앞으로 그러한 침략과 피침략을 피할 수 있을지, 대비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입체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러한 역사의 반복은 계속될 수 있다. 부디 다양한 사람들이 이러한 책을 접하면서, 조금 더 입체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고 한걸음 더 진일보한 토론을 통한 미래대비가 중요하지 않나 싶다. 동아시아가 더더욱 중요해지는 작금의 시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한다.


같이 산 책인 저자의 또 다른 저서, '그들이 본 임진왜란'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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