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노스코리아, 안드레이 란코프 지음, 김수빈 옮김, 개마고원, 2013
북한은 2017년 9월 3일, 제6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그 위력은 진도 5.7이라는 어마 무시한 크기의 형태로 전해졌다.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WP에 따르면 이 정도 수준의 수소탄 폭발력은 TNT 환산 100kt 가량으로 추정되며, 이는 히로시마 폭발력의 7배 수준이라 한다. 아직 ICBM 등에 장착할 수 있는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한반도에 거주하는 1인으로서 충분히 우려할만한 사건이다.
그런 와중에 완독 한 책, 리얼 노스코리아는 현재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안드레이 란코프 씨께서 지으신 책이다. 구소련 레닌드라드, 그러니까 작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저자는 대학 재학 시, 김일성 종합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수학한 바 있고, 민간전문가 자격으로 백악관 자문위원으로 초대될 만큼 북한에 대해 정통한 학자이다.
북한을 이야기하려면 그 공산주의의 대부, 소비에트 유니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의 경험과 학식은 더 빛을 발휘한다. 마르크스-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이 20세기 초반의 전 지구적 공산주의 실험은 소련은 물론 중국, 북한, 베트남은 물론 동유럽의 수많은 국가들로 이어져 나갔다. 혁명을 일으키고 성공시킨 재능과 통치의 재능은 언제나 일치할 수 없어서, 마오쩌뚱의 경우엔 장제스를 밀어내고 그 대국을 접수했지만,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 대혁명 등 인류 최악의 레알 공산주의 실험을 실시하여 수천만 명을 아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소련의 경우엔, 마오쩌뚱에 비해 그 시점이 삼십여 년가량 앞서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아오시프 스탈린은 형식적 평등이란 공산주의 사상에만 매몰되지 않고, 경제개발계획 및 공업화 등을 통해 선진화를 이루어낸다. 물론 수많은 학살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이것을 두고 제대로 된 통치라 평가 내리기 어려운 측면은 있지만, 이 시기에 선진화된 소련이 없었다면 우리의 북한도 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나쁜 악마인 히틀러를 때려잡으려다 보니 처칠과 해리 트루먼, 스탈린은 동지가 되었고, 그렇게 2차 대전 후 한반도는 연합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렇게 해방 후 5년의 시간 동안 한반도는 새롭게 재편이 되고, 북한은 김일성이, 남한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고 국가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당시만 해도 소련의 연락사무소장 수준이었으니, 강철의 대오 스탈린에게 늘 눈치를 보는 신세였다. 김일성은 그 기간 동안 계속해서 스탈린에게 남침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고, 철저히 국제관계 이해득실을 따지는 스탈린은 그 요구를 묵살했다. 하지만 그 사이 마오쩌뚱은 중국을 접수했고, 소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그러한 헤게모니의 변화 속에 이루어진 것이 한국전쟁이다.
그나마 국제사회의 질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철저히 이득을 따져가는 스탈린이란 거인이 존재할 때와 그의 사후 북한의 행보는 달라지게 된다. 스탈린은 한국전쟁이 휴전되기 전인 1953년 3월 5일 서거하게 되는데, 문제의 주체사상은 그 이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주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1955년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가 발표된 이후부터라 한다. 그렇게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김일성 국가로 변모하게 된다.
해방 시점만 하더라도 북한은 공업으로 발달한 지역이었고, 남한은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에 따라 북한의 경제 수준이 남한에 비해 괜찮았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형태의 자산을 바탕으로 북한은 약 사십여 년간 나름의 강고한 공산주의 체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대기근으로 인해 2-3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공식 배급제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제도였고, 이때부터 비공식 암시장이 출현하게 된다. 이 시기 한국의 방송에서도 공공연하게 북한 주민들의 실태를 보여주었던 기억도 난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주의 깊게 그러한 다큐를 보고, 매 일요일 아침 남북의 창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고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벌써 광화문에 도착했다. 실은 그 이후부터 벌어지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꿀잼(이라 하기엔 너무 슬픈)인데,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가 작금의 핵폭탄 6차 실험까지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현재 북한은 어떻게든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국가라 생각한다. 아래서부터 무너지든 위에서부터 무너지든, 이는 시기의 문제이지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북한 정권의 급격한 붕괴는 주변 국가 어느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사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여행이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 변환이 더 빨랐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인식 변환으로 인한 정권의 붕괴는 과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남한 사람들과 같이 집집마다 수도와 전기가 잘 나오고, 컴퓨터도 가정마다 하나씩 가질 수 있고, 자동차도 끌 수 있는 부유한 삶을 꿈꾸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불평등 양극화로 인해 받게 되는 고통은 단기간에 해결할 길이 요원하다. 차별과 멸시를 버티긴 쉽지 않을 것이고, 당장 밥벌이에 영향을 받는 남한 사람들이 느낄 감정적 동요 역시 극단적인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내가 여태 출장을 다녀본 나라 중에 가장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다. 그런데 이 남아공은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보자면 아프리카 top 3 안에 드는 강국이며, 인프라는 웬만한 호주 뉴질랜드 못지않다. 문제는 최악의 지니계수인데, 오랫동안 실시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인종 간의 양극화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러니까 소웨토 지역의 아주 못 사는 흑인 아이가 지나가는 백인 아저씨의 뒤통수를 가격하여 아이폰이나 몽블랑 지갑만 얻어도 감방 갈 리스크를 상쇄할만한 요인이 된다고. 그래서 요하네스버그 거리엔 한낮에도 혼자 걷고 있는 백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집집마다 쳐져있는 고압 철조망들을 보면, 이러한 형태의 국가도 국가일 수 있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게 마련이다.
사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 하면 한국은 남아공과 같은 형태의 국가가 될 확률이 높다. 아무리 연방제와 같은 형태로 속도를 늦춘 국가 형태를 띠게 한다 하더라도, 남북한 인력의 이동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회의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그렇다고 작금의 북한은 지속 가능한 상태로 저 위에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의 악독 국가이며 예상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계속해서 자행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을 비롯한 수뇌부가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시하는 정책들이다. 참으로 답이 없는 문제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 것도 이제 조금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해보는 것은, 그 북한이라는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우리의 동포 국가에 대해 조금 더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포스팅을 출근길에 아이폰으로 쓰느라 책을 하나도 인용하지 못했고, 이 포스팅은 책의 내용을 거의 담고 있지 않다. 부디 조금 더 대북관계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