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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Dec 29. 2017

상대적 빈곤율에 대하여

문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오늘 회사가 공동 연차라 휴무인데, 서울에 볼 일도 있고 급하게 처리할 일도 있고 해서 잠시 회사에 나왔다. 아이들 유치원이랑 학교를 다 데려다주고 길을 나서니 아홉 시가 넘었는데, 오래간만에 늦은 오전 1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오래간만에 늦은 오전에 타긴 했는데, 내가 1호선 전철로 인천-서울 통학을 하기 시작한 대략 18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노인분들도 많이 보이고, 방학을 맞이하여 서울구경을 하러 가는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다 대방역 정도에 어느 아저씨가 전철에 탔는데, 이 분은 맨발에 다리도 조금 절으시는 분이셨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고, 대략 미남형 얼굴이기도 하여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엄동설한에, 맨발이라니. 아저씨가 탑승하고 나서 얼마 후 사람들은 해당 전철 칸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이런 단어를 써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자연스럽게 옆 칸으로 이동했는데, 문득 무슨 사연으로 저 아저씨는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울 수준, 그러니까 빈곤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육이나 양육, 교육부터 잘 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본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상대적 경제 수준에 둔감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특히나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는 그 객관적 인식이 더 떨어지기 마련인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도 부친이 교사시고 외벌이를 하셨는데, 그 때문에 나는 대학에 다닐 시절까지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떨구지 못하고 살았다. 대학에 가서 강남 출신 친구들이 방학 때 스페인과 같은 곳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나의 그 자괴감은 더욱더 커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대에 가고 나서,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태어나서 인서울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훈련소 동기들을 보며, 대대장에게 우리 대대 100여 명 사람들 중에 너의 수능점수가 가장 높을 것이라는 이야길 전해 들으며, 무언가 내가 알고 있던 상대적 경제 수준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작위로 추첨하여 훈련소가 배정되고, 사단이 배정되는 군대라는 특이한 조직을 통해, 그렇게 이 나라에는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소득이나 학력과 같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소 생활 3주 차가 된 어느 하루,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감기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지 않고 있길래 나는 그 동료에게 어서 양치라도 하고서라도 누워있으라 했다. 아플 때라도 몸을 더 깨끗이 해야 빨리 낫는다고. 그 동료는 내 말을 듣고 주섬주섬 관물대를 뒤지기 시작하더니, 보급 칫솔을 뜯기 시작했다. 분명 훈련소에서 해당 칫솔을 나눠준 것은 3주 전이었는데, 이 친구는 3주가 되어 처음 칫솔을 뜯었던 것이다. 나는 기겁을 하고, 그럼 여태 한 번도 양치를 안 했던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원래 양치를 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하더라.


이 거짓말과 같은 대화는 자대 배치 후에도 이어졌다. 당시 나에게는 좌우 구분을 못하고, 시계조차 읽을 줄 모르는 동기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도대체 왜 군대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소대장이 하도 걱정되어, 백일 휴가 갈 때는 나보고 그 친구 집까지 데려다주고 가라고 할 지경이었다. 누구보다 즐거워야 할 백일 휴가, 가족들도 어서 보고 싶고, 어서 빨리 집에 가야 할 나는, 그렇게 그 동기 집인 안양까지 가서 동기 어머님을 뵌 후에야 인천 집에 갈 수 있었다.


나의 단편적인 경험에서 보이듯이,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곳에 살면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환경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꽤나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대학생들은 강남이나 잠실과 같은 곳에 살면서도, 부모나 형제가 교사나 공무원과 같이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중산층이 아니라서 장학금 혜택을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여전히 계시다. 평생 강남이나 잠실과 같은 곳에 거주하며 보아 온 주변 ‘상대적’ 부자 친구들과 비교하다 보니 그러한 ‘주관적’ 판단에 사로잡혀버린 것이지 않나 싶다.


물론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늘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생활을 하며, 장학금 혹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겠지만, 적어도 한정된 재원의 정부재원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이 누구에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재원은 꼭 대학생에게 가야 할 것인지,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친구들에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말이다. 여전히 한국은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나라다. 고등학교 학자금과 대학의 반값등록금,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고민해 보자면, 나는 후자보다 전자가 더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아닌가 싶다.


상대적 빈곤율 (출처: 통게청 소득분배지표, 2017년 12월 기준)


통계청 소득분배지표 결과에 따르면, 상대적 빈곤선은 중위소득인 183만 원의 절반 수준인 91만 원, 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무려 14.6%라고 한다. 흔히 스카이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략 수능 3% 대라고 가정하고, 인서울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대략 10% 대라고 가정을 해본다 하면, 주변에 보이는 그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상대적 빈곤선 이하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많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간혹 정말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한 인류사적인 시도는 이미 소비에트 유니언이나 중국, 인도와 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시행을 해보고, 실패사례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 국가의 재정이라 하는 것은, 경제가 활성화되어 소득세, 부가세, 법인세를 통해 창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수를 늘려 상대적 빈곤에 처한 분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편이 오히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상식이다. 결과의 평등은, 그러한 예산을 오히려 줄이게 만들어, 모두이 빈곤을 만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 인도의 네루 시절 힌두 성장률이 이를 보여준다.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 결과의 평등과 인력을 통한 기계화 저지는 결국 수천만명의 아사로 귀결되었다


전 세계에서 복지 수준이 가장 높다는 북유럽에 가더라도, 거지는 존재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들 나라는 분명히 복지의 수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현격히 높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빈곤의 늪은 해결하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문제이고,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에서 제시하는 상대적 빈곤선 소득은 91만 원 수준이지만, 하위소득계층 평균소득의 관점으로 가자면 더 낮은 55만 원 수준이다. 그렇게 하위소득계층은 계속해서 소득을 발생시켜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빈곤갭의 값이 점점 커지게 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아마르티아 센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불평등과 빈곤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관련 좋은 연구결과 및 저서들을 많이 내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어찌 보면 전 지구적 관점의 시각이고, 우리나라에 적합한 연구가 아닐 수 있다.


물론 한국 경제학계에서도 빈곤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정부도 빈곤 계층의 최소 생활 유지를 위해 현금/현물 지원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빈곤율의 측정부터 과소보고 혹은 보고 누락 등의 이유로 현실을 정확히 반영시키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떠한 지원이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는지 해결책은 찾기 어렵다.


진보정부가 9년 만에 들어섰다. 외교나 정책이나 다양한 방면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보수만, 혹은 진보만 집권하는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영희 선생의 말씀대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있게 사회를 변화시켜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이번 문정부가 5천만 국민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켜 줄 것이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보수정권이 잘 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진보정권이 잘 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빈곤이라는 사회적 주제. 이번 정부 안에서는 어느 정도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 조금은 더 빈곤율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세상 어느 문제 하나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존재한다. 요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150년 전 메이지 유신만 하더라도, 그 다양한 변수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혁명이라 생각한다. 사쓰마 번이나 죠슈 번의 활약, 에도막부의 조용한 퇴장, 라스트 사무라이와의 전투, 페리 함대의 위협, 이와쿠라 사절단의 서양문물 학습,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메이지 유신을 이룬 과정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어느 것 하나 빠진다 하더라도, 이 조용한 혁명은 성공할 수 없었을 수 있다. 게다가 이 아시아에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조용한 혁명도, 결국 쇼와시대 제국주의로 이어져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죽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에도막부의 지배가 계속되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는, 역사의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쿠라 사절단, 1871년부터 2년간 영미를 포함한 12개국을 시찰했다. 우측에서 두번째 인물은 훗날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조선통감부의 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당 변화시켜야 할 것은 존재한다. 어렵겠지만,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해결해야 할 문제, 그것이 상대적 빈곤율, 빈곤갭이지 않나 싶다. 부디 이번 정부가 잘 해결해 나가길 기원해 본다.


*배경그림 출처: https://www.twenty20.com/photos/8e605b4b-953f-49b4-a3c7-3f0266e517e4

*통계청 자료 출처: http://kostat.go.kr/incomeNcpi/income/income_dg/4/5/index.sta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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