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Jun 19. 2018

외식의 품격, 이용재, 2013, 오브제

세대차이가 느껴진다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예컨대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갑자기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삼시 세 끼를 먹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나는 것처럼 우려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아무리 메인 메뉴를 맛있게 먹었다고 해도 밥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얘가 내가 사 준 밥 맛이 없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 여기서 조금 더 나가자면, 밥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 식사를 혼자 하면 뭔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밥은 같이 먹어야 제 맛이라며 같이 먹기를 강요하는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60년 우리나라 일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129만 원이었고, 2017년은 3065만 원이다. 이게 명목으로 가자면 1:3364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물가지수를 감안하더라도 1960년의 소득 수준은 현재의 4.2%에 불과한데, 당시의 식사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도 똑같이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다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이나 에어컨, 중형차 등은 과소비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어떠한 문화에 대한 가치판단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성인 남성이 기초대사량이 대략 하루 1500-2000 kcal이며, 하루 만보를 걸어봐야 소비되는 칼로리가 대략 400 kcal, 5km를 뛰어봐야 300-400 kcal 가량 소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농사일과 같은 피지컬 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하루에 2,500 kcal 이상을 섭취하는 것은 다소 신체에 무리가 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 끼의 열량을 대략 700kcal로 잡고, 간식으로 치즈케이크나 저녁에 치맥이라도 한잔 한다면 당장 과도한 열량 섭취로 비만의 길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경우 대개 아침을 거르고, 공복을 피하기 위해 비스킷 한두 개와 커피물을 꾸준히 마시고, 점심도 대충 칼로리 채우는 수준의 식사를 하고, 저녁에 먹고 싶은 것을 먹거나 불가항력 회식자리 같은 것에 참석하여 하루에 요구되는 칼로리를 채우곤 한다.

이렇게 하루에 저녁 한 끼에만 집중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그 미식이라는 것에 눈길이 가게 되는데, 하루 한 끼 맛에 집중하는데 대충 만들어진 음식을 접하게 되면 하루를 망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을 들인 게 한 삼 년여 되었고, 그 사이 나의 체중은 자연스럽게 7kg가량 줄어들었으며, 배는 볼록했던 것이 오목하게 변모하였다. 일단 벨트가 빵빵하다 느슨해지니 옷을 입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마음에 든다. 여하튼 나름의 미식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니 조금은 더 음식의 세계를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는데, 이 책은 그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이 책의 목차는 서양 음식을 먹는 순서에 따라 빵, 와인이나 맥주 등의 식전주, 전채요리인 샐러드, 수프, 가공육, 그리고 1코스 피자 파스타, 2코스 햄버거, 튀긴 음식, 스테이크에 이어 중간휴식 치즈, 디저트인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이크, 마지막으로 커피와 식후주인 위스키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별로 저자의 주관적 식견과 음식의 물리 화학적 요소가 어우러져 흥미진진한 서사를 이어간다. 특히나 스테이크 편에서는 당장 마트에 가서 스테이크 한 덩이를 사와 숙성시키고, 전용 주물팬으로 요리를 하고 싶을 정도의 뽐뿌질을 자극시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현재 거주하는 곳에서는 소고기를 접할 수 없어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저자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스스로 요리를 하고,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접하면서 음식평론가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건축을 전공한 이력답게 음식 세계의 계량화를 계속해서 강조하는데, 다시금 전문분야 계량화를 통한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실 그 흔해 보이는 건물의 콘크리트 한번 타설 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이론적 배합비율 실험, 그리고 물리적인 실제 배합 시험을 통해 수도 없이 많이 만들고 강도를 테스트하며 파괴를 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물 몇 kg, 시멘트 몇 kg, 모래 몇 kg, 골재 몇 kg, 혼화제 몇 g 등의 목표 강도에 따른 배합비를 만들었으면, 그다음부터는 철저히 해당 배합비에 따라 품질관리를 하며 시공을 하게 된다. 그냥 대충 눈대중으로 시멘트 한 포대에 물 붓고 자갈 섞어서 건축하는 것은 공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도 문화이자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스테이크는 레어로 먹어도 되지만, 함박스테이크는 레어로 먹으면 안 되는 이유는 "고기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어 지지면 죽는 대장균(E. Coli O157:H7)을 골고루 섞어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까지 완전히 익히지 않는다면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노약자의 경우,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음식을 열량과 문화, 그리고 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저자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까칠함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대안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 또한 다 그럴만한 분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요즘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여, 이 책의 절반 가량은 조깅이나 집안일을 하며 리디북스 음성 듣기를 통해 들었다. 물론 음성 듣기를 한 부분도 다시 아이패드를 통해 훑어보기는 했지만, 음성 듣기만으로도 꽤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재미의 목적도 있지만 지식 전달의 목적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계속 조깅을 하면서 곱씹어 들을 것 같다. 저자의 최근작, 한식의 품격은 물론, 바로 구매각이다 ㅋ

오늘도 혼밥과 혼술을 통해 고독한 미식을 즐기려는 분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책이라 감히 권해드리며, 이 서평을 나를 미식의 세계로 인도해 준 도하의 리처드형님에게 헌사하는 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