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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07. 2018

[책]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혁명의 러시아,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어크로스


1991년 나는 지금은 효리네 민박으로 유명한 제주도 애월읍 소길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국민학생(현재의 초등학생)이던 나는 신제주에 있는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대략 편도 14km 정도 걸리는 구간이었다. 물론 이는 초등학생에게는 걸어갈 수는 없는 길이었고, 매일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1991년 4월 19일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채비를 하는데 그 날은 시외버스가 오지 않더라. 알고 보니 그 날은 소련이라는 나라의 고르바초프라는 대통령(참고로 그는 85년부터 91년까지 소련 공산단 중앙위원회 서기장을 했으며, 90년부터 91년까지는 소련 대통령도 역임을 했다)이 오는 날이었고, 당시만 해도 전 세계 공산주의 최고지도자의 방문에 따라 제주 전 지역 도로의 이용은 차단된 상태였다.


공산주의 최고지도자이긴 했지만 그는 이미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유명했으며, 이미 공산주의 진영의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인해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상태였다. 소련은 당시만 해도 냉전시절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힘이 있는 국가였고, 소련의 최고지도자는 남한은 물론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도 한번 방문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고르비(고르바초프의 당시 애칭)의 방문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18일에는 남북한이 동시 UN 가입을 했으며, 9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기에 이른다. 


사실 당시 한 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이유는, 이미 저물어가는 소련이 하계올림픽까지 치른 떠오르는 동아시아의 신흥 경제강국인 한국으로부터 경제협력 차관을 빌리기 위하러 온 것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산업,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참여로 총 14억 7천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했으나, 소련이라는 국가체제는 이 책의 제목에서와 같이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해체되고 만다. 물론 러시아라는 승계 국가가 있었으나,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도 딱히 나이스 한 상태는 아니라 이 차관을 두고 이래 저래 말이 많았고, 이는 또 불곰사업이라 하는 방산 및 군사기술 관련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된다.


여하튼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고르비 라 하는 파란 눈의 대머리 아저씨 덕에 14km라 하는 길을 걸어가야 했다. 소길리는 현재 제주경마장인 렛츠런 파크 인근에 있는 동네인데, 이 동네가 대략 해발 500m에 위치한 지라 계속해서 오르막 길이고, 이제 열 살을 갓 넘은 아이에겐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무려 네 시간을 '고르비~ 고르비~ 고르비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해~'하며 길을 걷던 초등학생을 보던 경찰 아저씨는, 안쓰러웠는지 뒤늦게 경찰차로 집까지 안전하게 이송해주기도 했다. 그때 탄 경찰차가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타 본 경찰차이다.


여하튼 그러한 개인적 이유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나의 뇌리 속에 오래 남았으나, 당시 초등학생인 나는 특별히 그 아저씨가 왜 제주도에 방문했으며,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왜 그 아저씨가 있는 나라는 붕괴되고, 그 이듬해부터는 왜 중공이라는 나라는 중국이라는 호칭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으로 점철된 현대 중국을 알게 되고, 레닌으로부터 시작하여,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로 이어지는 소련을 알게 되며 뒤늦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년에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책을 꼽아보자면 덩샤오핑 평전(서평 참조: https://brunch.co.kr/@aboutheman/227)과 젊은 스탈린(서평 참조: https://brunch.co.kr/@aboutheman/208)이다. 91년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이 붕괴되고 난 후 현재까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독주체제인데, 사실 20세기 후반부, 그러니까 냉전시대에 한 축을 담당했던 나라는 소련이었다. 그 소련이라는 나라가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일어난 것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공이지만, 미국과 자웅을 갖출 정도로 경제개발을 실행하고, 나치 히틀러로부터 전 세계를 구해내며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스탈린의 덕이었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소련이라는 나라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8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완만히 실시하며 중국을 현재 G2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것은 덩샤오핑의 덕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에 저 두 권의 책만큼 두 국가의 중요인물을 이해하기 수월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여타 좋은 책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먼저 중요인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다른 책들도 읽기가 수월해진다.


중국이야 사실 덩샤오핑이 조성해 놓은 집단지도부 체제를 이해하고 나면 현재의 중국 정치도 이해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소련의 경우는 레닌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르바초프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거시적 차원에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련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891년, 그러니까 제정 러시아 정부 시기의 대기근으로까지 올라가 봐야 한다. 현재도 그러하지만 국가가 붕괴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아무리 사우디아라비아 같이 인권이 부족하거나 종교적 억압이 심하다 할지라도 먹고사는 것에 있어 불만이 없다면 국가의 존속은 위협받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근과 같이 국민들 자체가 먹고살기 어려워지면 대중들은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대기근의 연속으로 인해 러시아 민중들은 제정 러시아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어 당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평화적인 청원 행진을 했는데, 1905년 1월 22일,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이 날, 근위군은 발포를 하여 500-600명의 사망자를 낳게 된다. 이후 제정 러시아에서는 파업과 폭동이 이어지고, 1905-1906년 간 농민 폭동으로 인해 대략 15%의 대저택이 파괴되기도 했다. 당시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사에서 몽타주 기법의 도입으로 기념비적인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을 보면 된다. 전함 포템킨에서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오데사 계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장면이 등장한다. 


사실 책의 내용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는 블로그로 부족할 지경이다. 백 년의 넓은 역사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본 이 책 자체가 그 엑기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을 잠깐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국정농단 사건에 종종 인용되던 제정 러시아 말기 라스푸틴의 이야기, 

레닌의 4월 테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지는 러시아 내전, 그다음 벌어지는 쿨라크로 대표되는 계급전쟁, 

노동자의 수보다 공무원의 수가 많았던 소비에트 러시아, 레닌 사후 레닌 숭배의 시작,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라크, 언제나 임박했지만 결코 도래하지 않았다는 공산주의 유토피아, 

말 자체에 모순이 있는 '사회주의적 경쟁', 어느덧 물질적 복지와 행복의 추구를 강조하는 스탈린 정권, 

민족주의로 변모해가는 공산주의, 평등주의적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계층화 사회를 다시 만들어가는 소련,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는 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던 코민테른의 정책, 나치 독일의 국제적 확장에 결정적 기여를 한 소련의 불가침 조약,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인해 급격히 자세전환을 하던 스탈린,

국가 농토의 4%인 개인들의 작은 텃밭에서 생산된 엄청난 비중의 돼지, 가금류, 과일, 감자 생산량, 이로 부터 도출되는 집단농장의 허구성,  

레닌과 고르바초프를 제외하고서는 학사학위도 없었던 소련의 최고지도자들, 

마지막으로 소련의 역사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는 푸틴, 그리고 그 과거 냉전시대를 추억하는 러시아 여론


공산주의의 기본이념은 늘 매력적이다. 소련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물질적, 도덕적 우월성, 나치주의 격퇴, 농업집단화를 통한 국가의 현대화, 대중 기반의 혁명, 등을 보자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 그러니까 집단 테러, 집단화와 기근, 카틴 대학살, 굴라크의 공포, 세계대전 최고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소련국민의 무모한 희생 등을 고려해보면, 그러한 이상은 현실에서 얼마나 이루어지기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과거를 열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현재 세계 어느 국가든 완전경쟁 자유주의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 근간으로 삼았던 정당하고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의 지향은 어느 정도 잘 다듬어 현대사회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하지만, 지나치게 인간의 이기심을 배제한 체 이타심만 강조한다면, 결국 전체 파이의 감소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파이의 감소는, 소련이나 중국의 사례와 같이 기근과 기아로 인한 일반 국민들의 피해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덧 국제무역의 발달로 인해 흉년이 들더라도 우리는 크게 먹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세상이 출현한 것도 비단 1백 년의 역사도 되지 않는다. 물론 현재 사는 사회에도 단점이 많이 있고, 고쳐나가야 할 점은 많지만, 그러한 단점 몇 가지로 현재 우리가 풍족히 누리고 있는 근간 자체를 흔드는 일은 분명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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