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Jan 03. 2016

석유의 하루

‘황금의 샘 Ⅱ ’를 통해본 석유 이야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석유와 1분 1초도 뗄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와 닿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석유의 하루’라는 이야기를 통해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석유의 하루 - 퀘벤하운

아침에 일어나 ABS 수지로 제작된 ‘휴대폰’ 알람을 끄고,
PVC ‘상수도관’을 타고 온 물로 샤워를 하고,
도톰한 폴리에스터 ‘패딩’을 입고  출근합니다.

폴리염화비닐 ‘카드’로 찍은 경유 ’ 버스’는 ‘아스팔트’ 바닥 위를 달립니다.
폴리카보네이트 ‘맥북’을 열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배가 출출해,
폴리스티렌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폴리에틸렌 ‘비닐’에 담긴 사과 한 조각으로 입가심을 합니다.

퇴근길, 복합화력 발전소에서 온 전기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온 후,
폴리에틸렌 필름으로 덮인 ‘LCD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혼합 ‘극세사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합니다.


조금은 삭막한 감은 있지만, 이처럼 석유는 우리 삶의 24시간을 같이하는 원료입니다. 석유는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이 검은 액체일 뿐만 아니라,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플라스틱의 원료로서 일상의 다양한 부분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검은 액체 자체로도 화력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생산해 내고, 자동차 및 비행기, 선박 등을 이동시키는 원료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플라스틱은 우리가 생각하는 휴지통이나 휴대폰, 자동차, 선박 등과 같이 딱딱한 제품의 재료로 쓰이는  것뿐만 아니라, 의류, 이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쓰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석유는 실제로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물론 아주 먼 옛날에도 선박의 방수 등을 위해 역청 재료로 쓰이긴 했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 쓰인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제가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황금의 샘; The Prize’라는 책은 그 일 백여년의 역사를 가진석유의 역사를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은 1993년에 초판만 발행되어 현재 1권과 3권은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겨우 2권을 찾아 읽었는데, 여기서 그 2권을 중심으로 석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2011년부터 약 2년 동안 중동에서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초창기 모빌에 투입되어 중간에 귀국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이라크나 카타르 등의 산유국들을 출장을 통해 돌아보며 조금은 신기한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산유국들 정부기관 혹은 공기업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산유국 공무원이라고 다 같은 공무원은 아니고 석유나 가스 관련 공무원은 ‘갑of갑’이었습니다. 예컨대 사우디의 아람코(ARAMCO), 카타르의 QP(Qatar Petroleum), 등의 파워는 여타 도로나 빌딩을 주관하는 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한과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이 기관이 국가 부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흔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친미, 이란은 친영 등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책을 읽기 전에 저는 이런 부분도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냥 음모론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가진 회사라는 사우디의 아람코라는 정유회사는 비상장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삼성전자의 3배를 상회합니다. (참조 : 매일경제, FT 기사 참조 아람코 시가총액 예상치 약 780조 : http://news.mk.co.kr/newsRead.php?no=545704&year=2006 )

헌데 이 책을 보며 어떻게 사우디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이란은 어떻게 영국과 그런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책의 스토리를 보자면, 2권은 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전후 OPEC(석유 수출국 기구)이 조직되는 단계까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아마도 1권은 2차대전 이전 석유산업의 태동기, 3권은 OPEC의 본격적인 활약 및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꼭 기회가 되어 1,3권을 읽길 바라며, 2권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진주만 공격은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하와이는 주요한 공격 목표가 아니었다. (중략) 일본군은 동인도제도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진주만 공격은 측면 방어, 즉 저항을 받지 않고 동남아를 침공하기 위해 미국 태평양함대의 전투능력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함대의 위협이 없으면 동남아를 수중에 넣은 후에도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에서 일본 본토에 이르는 유조선 항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P.45”


저는 영화 진주만을 보면서도 항상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대체 왜 일본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호랑이를 건드렸는가 였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석유였습니다. 사실 전쟁이 아닌 시기에는 석유를 대체할만한 연료가 꽤 있습니다. 석탄,  LNG부터 시작해서 원자력, 풍력, 태양열까지 요 근래에는 다양한 원료가 있습니다. 허나 전시에는 석유의 중요성이 절대적입니다. 공군의 비행기, 해군의 항공모함, 잠수함 등이 모두 석유로 움직이기 때문에 석유의 비축은 곧 전쟁의 승리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제외한 주요 강대국, 즉 일본, 영국, 독일, 등은 산유국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인도차이나, 보루네오 섬 쪽에서 나오는 석유의 확보가 최우선이었는데 미국 해군의 번번한 방해로 안전한 루트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미 해군의 본거지인 진주만, 즉 하와이의 항공모함 및 전투기를 폭격함으로써 동남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니얼 예긴은 여기서 일본의 결정적 실수를 짚고 넘어가는데요. 일본은 항공모함 및 전투기 폭격에는 성공하지만, 하와이에 있는 석유저장시설을 폭격하지 못함으로써 반격의 실마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와이도 석유가 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캘리포이나에서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석유저장시설이 건재함에 따라 미국은 빠른 시일 내에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할 수 있었다는 논리입니다.


“(소련을 공격하던 독일) 기갑부대는 새로운 물자공급을 기다리는 동안 종종 며칠씩 정지상태에 있었다. 석유를 실은 트럭 역시 연료 부족으로 그 부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결국 독일은 낙타의 등에 석유를 싣고 운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P.64”


저자는 일본에 이어 독일 측면에서도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소련을 공격했던 독일도 석유의 부족으로 뒷심 발휘를 못하고 패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저자는 모스크바로 진격했던 히틀러의 독일군이 소련의 석유생산기지가 있는 바쿠(카스피해 연안) 쪽으로 진격했다면 소련을 이겼을 수도 있다는 진단합니다. 책을 읽다 보니 정말 현대 전쟁에 있어서의 석유의 중요성이 느껴집니다. 이는 롬멜이라는 걸출한 독일군 장군의 말에도 녹아듭니다.


“아무리 용감한 자라도 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총도 탄약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총 도탄 약도 기동전에 있어서는, 그것들을 운반해 줄 차량과 석유가 충분치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P.75”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동지역은석유에 있어서도 변방이었다고 합니다.

“1940년, 이란과 이라크 및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한 전 지역은 세계 석유의 5% 미만을 생산한데 비해 미국은 63%를 생산하였다. P.155”


여기서 현재 석유 최대 생산국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미국 회사들의 개발로 그 시작을 같이 했습니다.

“1948년 12월, 뉴저지와 소코니의 대여금이 지불됨에 따라 아람코의 합병은 완결되었다. 사우디의 매장량에 더욱 부합하는 새로운 기업체가 등장한 것이다. 협상이 완결됨으로써 아람코는 소칼, 텍사코, 뉴저지와 소코니의 소유로 되었다. 그리고 아람코 자본도 100% 미국계로 구성된 것이다. P.196”

※상기 언급회사의 현재 이름 참고 : 소칼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셰브론),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 (엑슨), 소코니-바큠 (모빌)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사우디 아람코의 지분변동 및 사우디-미국 회사 간의 이익 협상 과정이 나옵니다. 그리고 위키백과로 알아보니 아람코의 지분은 결국 1980년대에 와서 완전히 사우디 아라비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초창기 100% 미국 지분으로 시작한 이 거대기업은 향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친미 성향에 상당 부분 기여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사우디의 영국 견제 방법으로 시작한 것이고,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의 경쟁에서 미국을 이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Win-Win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Win-Win관계와 대조적으로 영국과 이란은 앵글로-이란(현재 BP;British Petrol)이라는 거대한 석유회사가 국유화되면서 서로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석유회사는  국유화하면 그 매출이 모두 우리나라로 올 것 같지만, 공급망의 부재로 매장량을 그냥 매장시킬 수 도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실 페르시아 왕국의 후예인 이란은 매장량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뒤지지 않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세와의 갈등 지속으로 현재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과 경제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정치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정치감각도 중요해 보입니다. 그 결과 이란은 아래와 같이 전락합니다.

“이란의 사정은 훨씬 더 악화되어 갔다. 국유화 조치 이전에는 외화수입의 2/3와 정부 재정수입의 절반을 석유수출로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제 2년 동안 석유 수입은 한 푼도 없었으며, 인플레이션이 만연하고, 경제는 붕괴되고 있었다. 국유화 이전보다 사정이 훨씬 악화되었다. 법과 질서도 무너져 테헤란 경찰국장이 납치되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P.267”


석유를 둘러싼 전쟁, 및 전후 각국 정부 간의 정치 이야기를 보며  석유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이해 갈 수 있었습니다. 석유와 관련된 건설현장에 있었음에도 Upstream 및 Downstream을 구별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러웠고요.

(출처 : supplychainn.blogspot.kr)


이 책을 읽게 된 연유도 페이스북에서 어떤 글 잘 쓰시는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분이 했던 말이 또 생각이 납니다.

퓰리처 상 수상한 책은 매년 읽어도 후회하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저도 앞으론 퓰리처 상을 받은 모든 책은 읽진 못하더라도 종종 논픽션 부분의 책은 읽어 봐야겠습니다. 일주일이나 걸려 완독하기 힘든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고 책에서 얻은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글은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이 책은, 국제경제 및 석유산업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정말 강력추천합니다.


황금의 샘, 대니얼 예긴 / 김태유 옮김, 고려원


P.S. 90년대 초, 영문 번역 책임에도 술술 읽혔던 이유는 옮긴이인 김태유 교수님의 필력도 반은 되지 싶습니다. 부디 이런 좋은 책이 재 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배경화면 사진 출처 : http://keranews.org/post/downside-cheap-prices-gas-pump-oil-field-layoffs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