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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16. 2016

직장인의 책 읽기

월급쟁이 직장인이 권하는 책 읽는 습관

세상에 책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고, 스스로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더 많이 읽은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이 존재한다. 아주 대단할 만큼 독서량이 많거나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다.


잠깐만 자기고백을 해보자면, 필자는 어려서부터 과학이나 세계사를 만화 전집으로 배웠고, 공대를 졸업하기 전까지 딱히 문자로 된 책은 교과서 외에 그다지 많이 읽지는 않았다. 대학입시 논술시험에서 1,200자 기준에 800자도 다 못쓰고 나와 입시에 낙방한 기억도 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일주일에 한두권 정도 읽기 시작한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요즘은 대충 일 년에 육십 권 정도는 읽는 것 같다. 아마 어려서부터 책을 열심히 읽은 고수들이 보면 땅꼬마 수준의 독서량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독서를 처음 습관으로 시작해보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고 글을 시작해 본다.

독서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더듬어 보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 적립식 펀드에 대한 책을 보고 있던 어느 동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2008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 호황이었고, 펀드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쑥쑥 오를 때였다. 따라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재테크를 하기 위해선 그 동기같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고 적립식 펀드에 대해 술술 설명하는 그가 조금은 부러웠던 모양이다. 적립식 펀드 책을 읽다 보니 부동산 경매책도 읽게 되고, 책을 조금 싸게 살 도량으로 예스 24에 책을 두세 권씩 시키다 보니 좀 딱딱한 재테크 책 말고 베스트셀러도 한두 권씩 끼워넣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는 고수들은 대부분 이 베스트셀러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마케팅의 산물이니 멀리하라 하지만, 나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후술하겠지만 지금은 나도 베스트셀러를 굳이 찾아보지 않고, SNS에서 괜찮은 서평이 있는 책을 골라보지만, 처음에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많이 팔린 책이니 다수의 사람들이 읽었고, 때로 어떤 모임에서 쉽게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수월하다. 베스트셀러라면 책을 굳이 안 읽어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봤기 때문에 대략의 대화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든지 '블루오션 이론'같은 책은 이제는 상식이라 할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념이다. 상기 책을 읽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면 어떤 모임이나 이성친구에게 대화할 때 주제로 사용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이 계속된다면 책을 더 읽고 싶어 지게 마련이다. 아울러 한 일 년 정도 베스트셀러를 섭렵하다 보면 이제는 서점에 가도 매대에 펼쳐진 책들은 대부분 내가 읽은 책이 되고, 무언가 모를 뿌듯함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도 한 일 년을 넘게 읽다 보면 조금씩 질려가게 마련이다. 사실 정말 이 마케팅적인 측면이 있어서, 좀 깊이가 얕거나 가십 위주의 책들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판사는 전체 국민을 소비자로 본다면 중간층, 즉 일 년에 한두 권쯤 트렌드에 의해 사는 소비층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좀 물리는 느낌이 발생한다. 이럴 경우, 이젠 자기가 흥미로워하는 분야에 조금 파야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일단 철학이나 종교, 그리고 심리학에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 같이 다소 피상적인 인간관계보다는 그 근원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지금은 아주 선호하진 않으나 당시 강신주 씨나 이재철 목사, 혹은 도올 김용옥이나 김두식 교수의 책을 즐겨봤다. 조금 허세를 부려 종종 버트란드 러셀이나 장 폴 샤르트르의 책들도 같이 사긴 했지만 끝까지 완독 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울러 자기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는 서적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소설도 균형 있게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나 만화와는 약간은 차별된 자기 상상과 결합된 내러티브는 추리력과 사고력에 도움이 된다. 이는 간간히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되어, 관계를 수동적이라기보다 능동적으로 변화시켜갈 수 있게도 만들어 준다.
초기에 읽어보는 것을 추천할만한 소설은 할리니 호세이니의 '연을 날리는 아이',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공지영 작가의 '높고 푸른 사다리' 정도를 추천한다. 서사에 익숙하기 시작하면 움베르토 에코나 마이클 크라이튼, 김훈 작가 등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책은 사실 같이 읽는 사람이 있어야 계속해서 읽게 된다. 혼자 골방에 앉아 책을 읽고, 주변에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지속 가능한 습관이 되긴 요원하다. 사실 이건 어느 취미나 비슷하다. 가장 좋은 것은 모임을 갖는 것인데, 다들 바쁜 요즘 사회에서 물리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모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내가 찾은 방법은 SNS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기가 읽은 책은 서평(이라 쓰고 독후감이라 읽는다)으로 아웃풋을 생산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내 것으로 소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좋아요도 없고 댓글 다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꾸준히 작성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책을 읽은 사람들이 댓글도 달아주고 하면 재미도 생긴다. 아울러 이제는 약간 서평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웬만해선 완독을 하는 습관도 생겼다. 솔직히 혼자 읽을 땐 네 권을 사면 두 권정도는 읽다 팽개쳐서 아내님께 혼나곤 했는데, 지금은 다섯 권 중에 한 권 정도 팽개치는 수준이다. 책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 가끔 그 답답함이 목에 차오를 때까지 느껴진다면 100페이지 정도에서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좋은 책이라면 아마 몇 주, 혹은 몇 달 후에 다시 찾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울러 책을 읽는다는 것도 리듬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두껍고 재미없는 책을 1-2주일 들고 있기 시작하면 리듬 자체가 완전히 깨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론 5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은 비행기를 타거나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읽곤 한다. 일단 지하철에 들고 타서 읽기가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 년에 책 구매비용으로만 들어가는 돈이 백만 원이 넘어가다 보니, 아내님은 자꾸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라고 채근한다. 하지만 자고로 책은 볼펜을 한 손에 들고 중요한 부분은 찍찍 그어가며, 내 생각을 군데군데 적어가며 읽는 게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다니엘 예긴과 같이 에너지에 있어서 세계적 전문가의 책은 900페이지 중 절반은 귀퉁이가 접혀있고 줄을 쳐놨다. 그 주옥같은 정보를 그냥 읽고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설의 경우,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 그런지 등장인물 이름과 관계가 초반에 머릿속에 잡히지 않아 읽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책 맨 앞에 빈 공간에 등장인물 관계도 및 이름을 적어 놓으면 structure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학을 읽을 시에는 차라리 A4 한 장을 따로 붙여서 적어가며 읽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까지 독서를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그러면 결국 독서를 습관으로 가져오면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한 번 나열해 보고자 한다. 나는 외출할 때 회사든 마트든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니며, 그 가방 안에는 책이 한 권 이상 있다. 좀 편집증 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던 안 읽던 일단 가방에 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일단 자투리 시간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갑자기 외근을 나간다던지, 지방 출장을 간다던지 하는 시간이 생기면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으면 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주차장에 대기하거나, 애들을 키즈카페에 풀어놓더라도 그냥 멍 때리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배터리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하다가 배터리가 떨어져서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어도 된다. 그리고 솔직히 책을 읽는 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 거나 멍 때리고 있는 것보다 폼이 나질 않는가. 고냥 가끔은 그런 목적으로도 들고 다니다가, 정~ 할 일이 없을 때 뒤적거리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습관이 시작될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어휘력과 사고력, 추리력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이메일을 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어휘력의 한계이다. 예컨대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고 적절한 동사 및 형용사를 사용해야 하는데, 따로 국어공부를 하지 않는 회사원에겐 독서만한 매개체가 없다. 아울러 아서코난도일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사고력과 추리력의 근육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사람은 다들 각자의 인센티브에 의해 행동하기 마련인데, 이것도 어느 정도의 훈련이 되어야 파악을 하기 수월해진다. 물론 글로 배우지 않고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적어도 책을 읽으면 안 읽는 것보다 증진되기는 한다.

세 번째로 지식의 양이 늘어난다. 예전 인터넷이 잘 발달하기 전만 해도 "어느 박사님이 그랬다더라"하는 둥의 주워들은 지식도 통한 시절이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선 그런 지식을 함부로 읊어댔다가 상대방이 사파리로 검색하여 바로 망신당할 수도 있다. 책을 보다 보면 각주와 미주 등 참고문헌을 인용하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위키백과도 자세히 보면 이 각주가 상당히 덕지덕지 많이 붙어 있다. 서구권은 예로부터 이 written basis 문화가 발달되어 명문화된 지식이 아니라면 법적으로도 그 근거를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결국 이 written basis라는 것은 책이라는 매개체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인쇄물에 눈이 적응하기 시작한다면 각종 보고서나 리포트를 분석하기도 수월해진다. 나의 경우 Method statement를 작성할 일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도 도움은 된다.

작문능력이 배양된다. 이것은 사실 책만 많이 읽는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쓰기를 병행해야 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나도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책을 많이 읽고 어쭙잖은 글을 쓰기 시작하니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도 꽤나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보고서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면 안 된다. 보고서는 그 양식 나름대로의 틀을 유지해야 하지만, 일단 초안은 어느 정도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일관되게 가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블로그를 하는 것도 추천하는데, 비단 1년 전에 쓴 글도 지금 보면 참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글이 없다면 아마 1년 전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어떠한 추억을 갖고 살았는지 오직 사진에만 의존해야 할 것이다. 페북에 글을 쓰던, 블로그에 쓰던, 일기를 쓰던 무언가를 작문하는 습관을 들이면 궁극적으로 자기 경쟁력 및 전체 인생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타심이 생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접하게 된다. 삼천년 전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시대, 중세 교부 및 스콜라 철학을 비롯하여 현대까지 정말 다양한 시대와 인물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그 많은 생각과 역사를 접하다 보면 나의 이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지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고, 과거에 비해 현재는 어떠한 세상인지 반추해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로도 접할 수 있지만, 사실 영상제작이라는 게 대규모 상업자본이 결합되다 보니 약간은 상업성을 더 띄게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책은 사람의 지평을 열어주는데 도움이 된다.

이상으로 주절주절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길게 나열해 봤다. SNS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독서고수들이 즐비하다. 사실 나는 명함을 내밀기엔 많이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도 취미의 일종이므로 단기간 측면보다 십 년 이십 년 중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조금 미약하지만, 일주일에 한 권이라도 읽는 습관이 십 년이 되면 500권이 넘고, 이십 년이 되면 1천 권이 넘게 된다. 물론 가장 안타까운 분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정성적 측면보다 정량적 측면에 집착하시는 분들. 가볍고 쉬운 책만 읽으면 일 년에 100권도 200권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숫자 자체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멀리할 수도 있다. 적절한 수준의 책 읽기 목표가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도 바로 오늘부터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한다면 언젠가 선현들의 그 많은 지식을 조금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경사진 출처 : unsplash.com/photos/o4-YyGi5J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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