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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y 21. 2016

초급 관리자가 지켜야 할 몇 가지 덕목

얼마 전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생각하다 십여 년 전에 배운 것들과 지나온 시간 동안 느낀 것을 정리해 보았다. 뭐 월급쟁이 생산성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똑부, 똑게, 멍부, 멍게 이 네 가지로 분류되기 마련이다. 내가 저 넷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분이 계실까 해서 한 번 시작해 본다. 업계 및 개인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나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익혔고 현장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썼으며, 이는 공장이나 다른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다소 상이할 수 있다.

1. 확인하는 습관
관리자라 함은 본인이 혼자 무슨 일을 직접적으로 하는 자리가 아니다. 비록 초급 관리자라 할 지라도 지시할 일이 많은데, 지시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항상 feedback, 즉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 피드백이 안되기 시작하면 작업자나 외주업체도 눈치채기 시작하고 ‘적당히’ 해도 된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백 번의 지시보다 한 번의 확인이 중요하다.

2. 일단은 예스맨
다소 무리한 목표가 주어지더라도 일단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그 말 한 마디에 수많은 목표들이 죽어나간다. 안 된다고 얘기하려면 일단 숨을 한번 고르고, 분석을 해보자. 공정과 원가를 고려해 보았을 때, 우리 프로젝트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때 안 된다고 보고를 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감만 믿고 안 된다고 하는 초급 관리자와는 일을 하기 어려워진다.

3. 앎
모르는 건 적당히 넘어가려 하면 안 된다. 지금 모르면 다음에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은 엉덩이를 의자에 부착시켜 놓고 알 때까지 깊게 팔 필요가 있다. 어차피 뭐 일이라는 게 맥스웰 방정식같이 편미분 방정식이 이리저리 얽혀있지 않다. 그저 숫자, 수식 뚫어져라 잘 보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이해만 잘 하면 그만이다. 한번 이해하고 나면 다음엔 당당해질 수 있다. 앎의 즐거움을 즐기기 시작해야 한다.

4. 내 눈만 믿자
남의 말은 반만 믿어야 한다. 특히나 작업자나 외주업체 직원은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 남의 말은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지, 그대로 토스해서 위로 올리면 망신살을 면치 못한다. 현장이나 공장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 발에 물집 잡히는 날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

5. 모르면 물어라
초급 관리자의 최고 장점은 기본적으로 ‘모른다’라는 전제조건이 달렸다는 것이다. 중급을 넘어 고급으로 가게 되면 본능적으로 이 ‘모른다’가 ‘아는 체한다’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물어볼 땐 직급을 떠나 가장 확실히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예컨대 복잡한 철근 도면은 철근반장님께 물어보는 편이 손 윗 선임보다 나을 수 있다. 어설프게 아는 상급자보다 선임 기능공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6. 작업지시
내가 내린 작업지시에 대해선 절대로 부인하면 안 된다. 잘못은 시인할 줄 알아야 더 큰 실수를 방지할 수 있고,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기계나 신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괜한 자존심 세우다 양치기 소년이 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7.Top management
현장이나 공장에서 현장소장이나 공장장을 만나면 피하지 말아야 한다. 초급 관리자가 Top management를 독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당신이 맡고 있는 공종에 대해선 당신만큼 디테일하게 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얼또 당또 않은 질문이 오기 전에 선제공격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 때론 윗사람이라 할지라도 분위기를 리드해 나갈 필요도 있다. 다 내 구역 아닌가.

8. 친구
현장이나 공장에 근무한다고 친구들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한국에서 제조업 기업에 취직하면 울산이나 여수, 수도권이라 할지라도 수원이나 천안 쪽에 근무하게 된다. 몸이 멀리 있다고 친구들을 멀리하는 세월이 길어지면 자신은 외톨이가 된다. 꾸준히 만남을 유지하고, 물리적으로 안 된다면 종종 전화라도 해야 한다. 아주 가깝지 않더라도, 친구나 동기는 결국 나중에 큰 힘이 된다.

9. 은폐 혹은 엄폐
숨기면 안 된다. 상급자는 나름 그 바닥에서 먹은 짬밥이 있으므로 설령 일은 못한다 할지라도 귀는 열려 있다. 귀신처럼 알아내는 재주도 있고, 알고 있으면서도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숨겨야 할 것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이때 오른손이 하는 일은 당연히 왼손도 모를 정도로 은밀히 해야 한다.

10. 계획 혹은 추리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 하면 늦는다. 그 불을 미리 찾아 제거해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게 분위기가 돌아가거나 평소보다 생산성이 나오지 않는다면 추리를 시작해라. 잘못을 인지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11. 계산기
일을 할 땐 대체로 남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한 엑셀 시트나 숫자로 가득한 두꺼운 보고서를 주면 찬찬히 검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남이 나쁜 마음먹고 속일 수 도 있지만, 실수로 계산을 틀릴 수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알아채지 못하고 윗선으로 올렸다가 발각되면 당신의 능력 부족이 된다.
아무리 복잡한 계산이라도 단순화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예컨대 복잡한 형상의 물량이라도 대충 가로세로 때려서 계산기로 개산 견적을 해보자. 10%-20% 차이는 날지라도 십만 단위, 백만 단위 정도는 잡아낼 수 있다. 때론 그러한 실수도 횡횡하다. 가만 놔두면 당신만 바보 되기 십상이다. 1mm, 1원이라도 적당히 넘어가려 하면 안 된다.

12. 넓은 시야
현장이나 공장에서 자기 업무만 하다 보면 시야가 많이 좁아진다. 내 것에만 집착하게 되고, 자기 영역만 보이게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도 직급이 올라가면 현장 전체를 봐야 할 것이며, 일련의 relation을 이해하려면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시야가 트인다. 아울러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종종 우리 팀, 우리 본부는 정말 뛰어난 인재가 많은데 왜 홀대하냐 하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세계 경기 및 국내 경기에 따라 조금의 노력으로 잘 나가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거시적인 경기가 따라와 주지 않아 실적이 안 좋은 조직도 존재한다. 그 흐름을 읽고자 하면 내 영역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13. 메모
인간의 메모리 능력은 한계가 있다. 오늘은 피 끓는 열 받는 일이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이 지나면 모두 다 잊혀진다. 중요한 사항, 아니 중요하지 않은 사항도 꼭 기록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시비를 가리거나, 소송에 까지 가게 된다면 그때의 기록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다. 눈뜨고 코 베이는 경우, 기록이 없는 경우다.

14. 기억력
현재 진행 중인 공정에 필요한 도면이나 계약서의 페이지 정도는 외우는 편이 좋다. 이 작은 기억력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른 업무능력을 보여줄 때도 있고, 상급자와 회의할 때 페이지 번호 정도를 읊어주면 그 분야에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페이지 번호까지 외울 정도면 이 놈과 더 이상의 논쟁은 필요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노력으로 더 많은 능력을 보여줄 때도 있다. 상급자든 노무자든 똘똘한 사람과 일하기를 선호한다.

어줍잖고 지극히 편협하지만, 그래도 나름 터득한 초급 관리자의 덕목에 대해 논해 보았다. 나도 아직 완벽한 관리자는 아니고, 앞으로도 뭐 괜찮은 관리자가 되기 만무할 수 있겠지만은,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노력하지 않는 관리자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겠냐는 바람이 있다. 부디 각자 자기 자리에서 머리를 굴리며 최선을 다한다면 갑이든 을이든 서로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만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파이팅~!

주) 상기 항목은 일부 내가 스스로 터득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뛰어난 사수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종합했을 뿐임을 알려드린다. 나의 독창성을 주장하고픈 생각은 없다.


배경사진 출처 : www.doortraining.com/training/management-leadership/top-man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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