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나갈 때 필요한 능력
한국의 건설업체는 국내에선 이윤을 많이 남기다가 해외로 가면 폭삭 망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게 겉으로만 보면 국내에선 하도급 후려치며 폭리를 취하고, 외국 나가면 영어도 못해서 눈뜨고 코베인다 뭐 그런 식으로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 시각을 유지할 분은 그냥 이 포스팅을 지나쳐 주시고, 조금이나마 개똥철학을 들어나 보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번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공정관리에 취약하다. 며칠 전 CM에 관한 글을 쓰면서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한국과 해외의 차이점은 장비와 인원을 임대해서 사용하느냐 구매해서 사용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이걸 쪼금 전문용어로 얘기하자면 CAPEX인데, 즉 Capital expenditures의 개념이다. 이는 기업이 고정자산을 구매하여 투자로서 돈이 사용될 때 발생하는 개념이고, 일반적으로 현금흐름표;Cash Flow Statement 상 장비나 토지자산에 대한 투자 등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단순한 차이가 어떻게 영업이익 +10%에서 -10%, 심지어 -50-60%까지 발생하는가에 대해서 난 얘기해 보고자 한다. 물론 하기 예시는 전혀 실제와 상관없으며 고냥 가정에 가정을 더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댓글로 막 공격하고 그러면 곤란하다.
자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 옆에 콘크리트 탱크 4단짜리 구조물 3개를 짓는다고 치자.(석유를 저장하는 원통형 구조물을 탱크라고 한다. 물론 그 탱크는 철판으로 이루어지지만, 기초는 콘크리트다) 콘크리트를 치려면 기본적으로 땅을 파야하고, 철근을 가공 조립하고,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붓는 일까지가 1 cycle이다. 여기에 땅을 파기 위해 포크레인이 필요하고, 거푸집과 철근을 운반하는데 크레인도 필요하고, 콘크리트를 붓는데 펌프카와 레미콘이 필요로 한다.(용어는 정식 용어가 아니라 최대한 보통사람에게 친숙한 용어로 언급했다) 여기서 총 4개의 팀이 운용되는데, 땅을 파는 팀 10명, 철근을 매는 팀 20명, 거푸집을 설치하는 팀 10명, 콘크리트를 치는 팀 10명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이 팀들은 돌아가며 언급한 구조물 3개를 만들어야 한다. (땅파는 팀은 땅만 파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나머지 팀은 4단이니 계속해서 돌아가며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첫 팀이 스타트를 끊었다. 자 이제 땅을 파자. 아 공기 측면에서 일단, 땅 파는데 5일, 철근 조립하는데 10일, 거푸집 설치하는데 5일, 콘크리트 타설하고 양생 하는데 5일 걸린다고 가정하자. 첫 팀이 땅을 5일 만에 파고 다음 탱크로 옮겨갔다. 다음 철근팀이 와서 철근을 10일 동안 조립을 했고, 그다음 거푸집 팀이 와서 거푸집을 설치했다. 그러니까 가족오락관 폭탄 돌리기 하듯이 각 팀은 첫 번째 탱크의 작업이 끝나면 그다음, 그리고 그다음 탱크로 옮겨간다. 이제 콘크리트를 부으려고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콘크리트 업자가 옆동네 건설현장이 바쁘다고 우리한테 콘크리트를 줄 수 없다고 한다. 어허 이거 참, 예정된 시간에 콘크리트를 쳐야 하는데, 그 업자를 설득하는데 3일이 걸렸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저 옆에 먼저 시작한 탱크 세 개에는 각각 토공팀, 철근팀, 거푸집 팀이 붙어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첫 번째 탱크에는 예정된 시간에 비해 3일을 늦게 콘크리트를 부었다. 그럼 이 세 번째 탱크를 돌아 다시 첫 번째 탱크 2단 구조물의 철근을 매기 위해 온 철근팀은 고대로 3일을 놀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일대;day work개념으로 일을 시키니, 이 3일 동안 크레인도 오지 말라고 하고, 작업자 아저씨들도 한 3일 쉬었다 오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해외에선 아저씨들도 1년 계약 월급으로 주고 장비도 내 장비기 때문에 감가상각비;Depreciation cost는 고대로 날아간다.(물론 국내도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임을 알려드린다) 처음이 3일이지,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선행 공종, 즉 철근 작업이 당초 10일보다 오래 걸려 15일에 된다거나, 거푸집을 5일이 아닌 10일에 완료한다면 후행 공종은 자꾸자꾸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공백 기간에 놀면서 대기하는 인력과 장비는 늘어나고, 이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매니저와 현장소장의 속은 타들어가고 노무자와 운전사는 초초할 수는 있지만 놀면서 월급 받아가는 것이다. 이 아프리카쯤되면 Contingency, 즉 만일의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불도저나 포크레인은 반나절만 일하다 퍼질 수 있으며, 노무자들은 그 무더운 태양 아래 픽픽 쓰러지기 일수다. 그런 contingency 한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공정은 늦어지게 되고, 선행공정의 지연은 후행 공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게 자칫하여 터빈같이 500억 원짜리 겁나 비싼 기계가 다음 달에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다음 달 까지 그 밑에 기초가 완성되지 않으면 터빈을 만드는 독일의 지멘스나 일본의 후지쯔 이런 선진국 회사한테 엄청난 대기료도 물어야 한다. 저 멀리 독일에서 터빈 기계를 설치하러 온 비싼 아저씨들을 며칠 동안만 대기시켜도 그 월급에 체재비는 몽땅 우리가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 후속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추가 페널티까지 청구하면 참 답이 없어진다. 공기가 지연이 되면 당연히 발주자에게 LD;Liquidated Damages, 즉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샌드위치로 원가는 쭉쭉 마이너스를 뽑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공정표를 미리, 아주 잘 작성하여야 한다. 이건 그냥 선으로 찍찍 긋는 엑셀 바 차트;bar chart 말고, 적어도 프리마베라로 선행 공종, 후행 공종을 이어주는;relation 수준의 현실적인 공정표를 짜야한다는 말이다. 그럼 자연스레 Critical path가 보이게 되고, 그 외의 공종들은 조금조금 Float;여유기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아까 위에 언급한 철근이니 거푸집이니 하는 공종들의 이 Float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늦어도 되는 여유일수를 계산하여 계속 mornitoring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Critical에 걸려 절대로 늦으면 안 된다(그러니까 이거 늦으면 터빈 기계 설치를 못해서 벌금 겁나 물어야 한다)하면 미리 Mitigation plan을 준비하거나 Risk management를 통해서 대안을 많이 많이 만들어 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할 수 있는 건 돌관공사(밤샘공사), 혹은 100명으로 작업할 걸 200명을 넣어서라도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일은 MD;Man-Day나 MM;Man-Month로 풀어낼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철근 100톤을 매는 일이 40명으로 10일 걸릴 일이라 한다면 이건 400 MD의 일이다.(=40명*10일) 이걸 공기가 부족해서 5일 만에 다 매려고 한다면 80명을 집어넣으면 된다는 것이다.(물론 이것도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물리적 제약으로 400MD의 일을 하루에 400명 투입한다고 일이 될 리 만무하다. 적어도 철근을 맬 자리는 있어야지 않은가) 헌데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공정표를 제대로 짜는 이유 중의 하나는 Resource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Resource, 즉 자원은 무어냐 하면 인원과 장비와 경유 등의 경비성 자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Peak 치를 예측하는 것인데, 아프리카와 같이 주변에 여관은커녕 풀 한 포기도 없는 곳에서 공사를 하려면 노무자들이 자는 Camp도 지어야 할 것이고, 불도저니 포크레인이니 하는 것들도 예상치에 맞는 수준으로 구매를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유도 적절한 용량의 기름탱크를 구비해야 하며, 발전기도 적정용량 수준으로 구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Peak치가 달라진다면...
당초 계획 Peak치가 노무자 2천 명이었는데, 공기에 쫓기어 4천 명까지 늘었다고 치자. 그러면 노무자 Camp도 2배로 늘려야 한다. 땅도 추가로 임대해야 하고, 건물을 올리는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장비도 없으니 장비 수배를 하여 2배의 장비를 구매하고, 디젤도 발전기도 모두 2배로 구매해야 한다. 이것도 시장이 주변에 있으면 땡큐 한 거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세렝게티 초원 정도 되면 저기 저 멀리 바이 바이 두바이에서 사서 배 타고 오고, 세관검사하다 보면 시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앞서 언급한 Supplier에 대한 추가 비용, 발주처에게 지불해야 할 페널티까지 겹쳐서 공사비는 무지막지하게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해외공사에서 이 공정관리의 중요성, 이건 두말해도 잔소리가 아니며, 세말 네 말을 하면서까지 닦달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공정관리는 10년이나 20년에 걸쳐 5-6개의 프로젝트를 거쳐간 그 손길이 닿아야 영혼이 실리는 법인데, 우리나라엔 그러한 인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얼리어답터, 보통 이 앱등이라 분류되는 젊은 직원들이 프로그램은 잘 만진다. 헌데 공사 경험이 많은 분들은 또 이 프로그램을 무지하게도 싫어하신다. 뭐 연세가 들면 새로운 것에 친숙하지 않고 하던 방법대로 하는 게 좋으시겠지. 헌데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해 최신 공정관리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경력자는 많지 않고, 이런 환경이 지속될수록 한국의 기업들은 해외에 나가서 팡팡 깨지기 십상인 경우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에, 또 그러니까 뭐냐. 나는 그래도 나름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여태 이상한 소설을 주욱 쓰며 잘못된 상상 속의 사례를 들긴 했지만, 점점 나아지리라고 본다. 항상 얘기하지만 이 LL;Lessons Learned, 형식적인 LL 말고 좀 도움이 될만한 LL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몇천억, 몇조 원씩을 손해 보며 중동에 가져다 바친 돈, 이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 가며 얻는 게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흔히 중국이나 인도의 추격이 온다면 우리의 해외 건설업은 미래가 없다고들 한다. 헌데 그건 겉으로, 고냥 피상적인 관점이라 생각한다. 위에 쭈욱 언급한 바와 같이 생각보다 디테일한 CM이나 공정관리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능력이 아니다. 중국이나 인도가 비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수시장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결국 우리와 같이 해외시장에 나온다면 차갑디 차가운 페널티와 지체보상금의 세계에 노출될 될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와 같이 또다시 몇십억 불의 수업료를 내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이전 미국이나 유럽업체와 같이 조금 더 나은 기술력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궁극적으로 Concession이나 PPP사업 등 개발사업 쪽으로 업역을 확장해 나간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조선업도 그러하다. 예전부터 이런 조선업의 위기를 알았다고 훈수 두는 양반들은 참 답답하다. 이러한 사태는 누구 하나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세계 경기 흐름과 조선업 전반의 흐름에도 기인하는 바도 크다. 따라서 어느 정도 고통은 따르겠지만, 이 고통을 통해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건설이나 중공업, 석유화학 및 전자산업,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 그만두면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힘내자. 끝.
주) 급하게 쭉 쓰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음. 고런 오류는 오롯이 나에게 있으니, 사소한 것에 괘념치 말고 전체 맥락을 이해해 주었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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