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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Apr 28. 2016

공돌이 관점에서 본 지속 가능한 논의를 위한 방법 하나

필자는 교량이나 터널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거가대교 해저터널도 지어봤고(요건 아주 잠깐),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도 지어봤습니다. 요즘은 요러한 프로젝트들의 공사비를 산출하는 일을 해서 딱히 하이바 쓰고 현장에 나갈 일은 그다지 없긴 합니다. 그래도 언젠간 또 나가야 저의 CV도 더 빛날 것이고, 어디 가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몇 백 미터마다 “덜컹” 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릴 것입니다. 요게 핑거조인트라는 고무마개 같은 것인데(양 손가락을 교차하고 있는 것 같이 생겨서 finger joint라고 합니다), 교량의 상판과 상판 사이를 연결해 주는 재료입니다. 그냥 몇십 킬로 다 아스팔트로 쭈욱 깔면 그만인 것을 왜 중간중간에 이런 이상한 걸 만드느냐. 아무리 단단한 콘크리트고 아스팔트라 할 지라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에 의해 늘어나고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거 없으면 짝짝 균열이 가서 몇 년 안되어 조각조각 난 도로는 차량이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들야들한 고무 판때기(실제론 그렇게 야들야들하지는 않지만) 같은 걸로 중간중간 박아줘야 이 강성의 콘크리트가 쪼개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Steel 핑거 조인트 설치 장면 (출처 : www.sjinews.co.kr)


교량의 밑을 가만히 지켜보면 생각보다 교량 상판과 교각의 맞닿아 있는 면적이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교량 상판과 교각이 완전 다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교좌장치;bridge bearing이라는 조그만 판때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냥 교각 위에 얹어 놓으면 될 것 같은데 왜 이 조그만 판때기에 얹어 놓느냐.

교좌장치 설치장면


구조물을 만들 때는 지점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고정 지점이라 하여 완벽히 고정시키는 방법이 있고, 헐렁한 볼트같이 위아래로 약간 움직이는 힌지;hinge방법, 그리고 앞뒤,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는 롤러;roller방법이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당연히 완벽히 고정시키는 편이 튼튼한 구조물을 만드는 지름길 같지만 실제는 힌지나 롤러 방식이 쓰이곤 합니다. 약간의 움직임을 허용한다는 뜻은 그 물체에 구속된 응력;stress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지요.


콘크리트 교량같이 어마 무시한 무게의 구조물이 무슨 움직임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움직임, 그러니까 변위가 발생할 여지는 많이 있습니다. 온도차에 의한 팽창력, 지진에 의한 움직임, 바람에 의한 움직임, 상부 차량에 의한 움직임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많은 움직임을 다 흡수하며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선 전술한 힌지나 롤러 등에 의해 약간의 움직임을 허용해야 하며, 이 것이 교좌장치라는 네모난 판때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길가다 신호등 옆에 달려 있는 표지판을 한번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냥 아래서부터 위까지 모두 볼트로 꽉꽉 조여놓으면 좋겠지만, 가만 보면 큰 표지판은 위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표지판을 모두 볼트로 꽉꽉 조여 놓는다면 강풍이 오거나 태풍이 발생할 시 표지판 기둥 자체가 뽑혀 나가버리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지판을 잘 못 설계/시공한 예


굳이 왜 이런 의미 없어 보이는 구조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느냐면, 우리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살짝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각이 있습니다. 이 시각이 틀리지 않는다고 꽉꽉 볼트로 조여놓는다면 언젠가 나의 그 사고의 기둥이 송두리째 뽑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조금씩 느슨하게, 경우에 따라선 힌지나 롤러 같은 개념을 생각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의 시각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어느 정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견지하고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 sustainable 한 논의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의견과 맞부딪혔을 때 당황스럽긴 하지만, 조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자세. 뭐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를 들고 나오는 분들까지 다 보듬을 수는 없지만 말이지요. 끝.


배경사진 출처 : 영문 위키백과 'Sustainable development'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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