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공장에서 석유를 분별 증류했을 때 최종적으로 남는 물질인 까만 아스팔트는 주로 도로 포장재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가보면 시내와 다르게 하얀 바닥의 도로를 종종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 콘크리트를 도로 포장재로 썼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포장과 콘크리트 포장은 그 성질이 매우 상이하다. 이 둘을 구별하는 말로 업계에선 연성 포장과 강성 포장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아스팔트는 좀 말랑말랑하고 콘크리트는 아주 딱딱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상하수도관이나 광통신관 같은 것 때문에 일부 구간을 파고 다시 덮을 일이 많은 시내에선 아스팔트 포장을 주로 사용하고, 웬만해선 잘 마모되지 않으나 한 번 깨지면 다시 복구하기 어려운 콘크리트 포장은 고속도로나 공항 활주로에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 콘크리트 포장이 주로 쓰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첨부 그래프에서 나오는 가격 변동성 때문이다. 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석유값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그에 따라 아스팔트 가격도 급등했다. 따라서 건설업계에선 대안을 찾아야 했고, 당시 크게 시공되지 않던 콘크리트 포장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2차 석유파동 이후 80년대 초반에 건설된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국내 최초 전구간 콘크리트 고속도로이다.
유가가 급등했던 2008년엔 아스팔트 가격도 급등했는데, 당시 신규포장을 해야 하는 곳에는 당장 시공을 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만큼의 가격 리스크를 감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콘크리트 포장은 변동성이 심한 아스팔트 포장에 대해 꽤나 괜찮은 대안이며, 도로포장에서 이 둘을 같이 운용하는 것은 괜찮은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비단 도로포장만 그러할까. 회사 운영 혹은 가정경제 운영에도 이러한 포트폴리오 구성은 중요하다. 주식 격언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느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격언일 것이다. 때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탓하고, 잘 나가는 외국 기업들은 한 우물만 판다고 하는데, 이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거시경제나 세계경제 흐름은 나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상관계수가 낮은 두세 가지 사업영역은 거의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건설업으로 따지자면 토목공사로 대표되는 공공사업과 아파트로 대표되는 민자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경기가 좋을 땐 너도나도 아파트를 사려고 해서 민자사업은 빛을 발하지만, 국가재정은 쉽게 풀리지 않아 공공사업 경기는 바닥을 친다. 하지만 IMF나 2008년 경제위기를 생각하면 아파트는 분양하는 족족 미분양이 되어 회사의 존폐를 걱정하게끔 만들지만, 재정정책으로 인한 SOC사업의 확장으로 공공사업은 또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런 기업의 생리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러나저러나 다 아니꼽게 보이겠지만, 실질적으로 무언갈 손으로 만들어가는 분들에겐 이 적절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성, 중요한 것이다.
아스팔트가 비쌀 땐 콘크리트도 생각을 해보는 혜안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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