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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n 20. 2016

[책] 아시아의 힘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외부 컨설팅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지만, 그래도 주기적으로 컨설팅 같은 외부 자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컨설팅 사가 제한된 시간에 한 회사를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에 무비판적으로 경영진이 회사의 방향을 튼다면 조금 문제겠다. 하지만 내부인원들끼리는 관행처럼 여겨진 것들이 외부 시선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보안을 중시하다 보니 타회사와 디테일한 비교를 못해본 내부자 관점에서는 그 컨설팅이 때론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



저자인 조 스터드웰은 이코노미스트 및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 글을 써 온 아시아 경제 전문가이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영국에서 동아시아를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의 블로그를 보면 현재는 이탈리아 중부 산골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가 극찬한 것으로 유명한 이 책은 동아시아를 크게 두 부류로(동북과 동남) 나누어 경제성장의 성공요인과 실패 요인을 분석한다. 이는 그간 세계은행과 IMF 같은 경제기구들이 개발도상국에게 역사적 근거 없이 선진국의 관점에서 부실한 조언하는 것들을 비판한다. (예컨대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금융 및 시장을 자유화하며, 규제를 완화하는 것들) 물론 앞서 언급한 사항들은 선진국의 관점에선 정답에 가까운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빈국들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진 편법적인 측면인 육성과 보호 안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개발의 경제학을 이야기한다.

책은 토지, 제조업, 금융, 그리고 중국이라는 주제로 구성된다. 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선 텃밭농사에서 승리를 해야 하며, 한국과 같이 수출 중심 제조업 산업이 육성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개발도상국 수출규제의 도구라 할 수 있는 금융을 이야기하고, 중국의 과거와 미래를 한번 짚어 본다. 책을 하나하나 읊어가며 서평을 써보려 했지만, 그렇게 했다간 아마 반나절이 지나도 이 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기억에 의존한 사실과 그에 대한 나의 의견으로 서평을 진행하고자 한다.


저자는 먼저 토지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가르는 그 단초가 전후 토지분배에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 대만, 한국은 전후 토지분배를 실시하여 소작농을 감소시키고 가족농의 출현이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반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대규모 집단농장이 존재하여 그로 인한 족벌 가문은 현재까지 은행 및 각종 소매업까지 거느린 존재가 되었다고. 흔히 대규모 집단 농장이 소규모 농장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노동력이 저렴하고 풍부한 빈국의 경우는 가족농 같이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가령 토마토 줄기 하나에서 20kg을 생산할 수 있다. 성숙기가 다른 작물을 혼합 재배하면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금치나 샐러리처럼 그늘에서 잘 자라는 채소는 키가 큰 채소와 함께 심으면 공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수확은 손으로 해야 한다. p.40”

단위면적 당 수확량을 비교하면 텃밭농사가 대규모 집단농장보다 수확량은 확연히 많다. 헌데 왜 농업 선진국인 미국이나 호주는 텃밭농사를 짓지 않는가? 텃밭농사 수준의 소출을 올리려면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을 이제 막 시작하는 빈국의 경우는 소수의 자본가가 소유한 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집단농장보다는 소규모 가족농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라고.


두 번째 제조업으로 가자면 저자는 독특한 해석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자유시장 개념에서 익숙한 현대 경제학의 관점에선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강제하는 정책이 범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는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경제적 성공을 이룬 모든 사회가 형성기에 보호주의라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이례적인 역외 금융 중심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자유교역정책을 통해 일류로 개발된 경제권은 없다. p.139”


이는 16세기 튜더 왕조의 영국도, 17세기 프랑스도, 20세기 초 미국, 프로이센 이후 독일,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일본까지 대다수의 선진국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저자는 박정희와 정주영에 대해도 자주 언급한다. 물론 그들의 산업 부문의 잘한 점과, 인권 및 사생활의 단점을 두루 언급하는 균형감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물론 이는 입으로 그저 나가라고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해외로 물건을 파는 모든 기업에게 우대금리를 적용한 융자를 제공했다. 수출업체가 지불하는 금리는 일반금리의 1/4에서 1/2에 불과했다. (중략) 즉 수출업체들은 물가상승률에 맞추어 판매 가격을 올릴 수만 있다면 돈을 빌리는 것이 이득이었다. p.158”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을 중심으로 대규모 중화학산업 투자계획을 제시한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정신 나간 짓으로 치부했고, 세계은행도 1974년 보고서에서 현실성의 결여를 지적하며 계속 직물산업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박정희 정부는 친미적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과 세계은행 그리고 IMF가 국가 주도산업정책을 철회하도록 촉구할 때마다 동의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저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사실 개발도상국은 사정이 어렵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핵심적이 교훈을 소화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다. p.171”


저자는 또한 중소기업이 주를 이루는 대만에 대해서도 터치한다. 헌데 그 독자적 브랜드가 없는 중소기업은 결국 고마진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며, 스마트폰 세계 1위를 기록한 삼성의 예를 들며 대기업 존재의 역설적 논리를 보여준다. 결국 적절한 수준의 내부 경쟁을 토대로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개발도상국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대기업 없이 성장한 선진국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의 박정희나 정주영의 공로를 크게 부각하며 종종 아래와 같은 시니컬한 이국인다운 면모도 과시한다.

“정주영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6시에 가족들을 모아서 아침을 먹기 전에 회의를 하며 간부들에게 전화를 하는 의욕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때로 간부들을 때리기로 유명한 독재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정주영의 주된 취미는 외도였다. 인정받은 8명의 아들 중 6명은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며, 인정받지 못한 자식들도 많았다. p180”


박정희에 대해서도 그 탁월한 능력을 칭송하다가(수출을 위해 추진했던 국내 은행 융자, 해외 대출 보증, 수출 보조금, 면세 혜택, 공공요금 감면, 관세 환급 등의 정책도 자세하게 소개),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인들을 가두던 서대문형무소도 언급한다.


현대차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다. 사실 자동차의 경우 현재는 거의 전 세계에서 독자 브랜드로 생산하는 국가가 드물기 때문에 분석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개발도상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후 기술적 독립을 하려고 했지만, 이는 실상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현대는 이러한 관점에서 스스로 개발하려고 노력했고, 일본에서 기술자문을 받긴 했지만, 다시 유럽의 엔지니어를 고용해서 받은 기술자문에 대한 타당성을 2중 3중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즉, 선진의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적용할 것은 적용하되 맞지 않는 것은 폐기 처분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잡상으로 흘러갔는데, 개인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자기계발 및 리더십 서적이나 강연을 접한다 하더라도 자주적인 판단이 있어야지, 각기 환경과 능력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훌륭한 강연이나 코치를 받는다 하더라도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선진기술은 많이 접하되,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싶다.


저자는 한국, 일본, 대만의 산업을 훑고 이제 동남아시아로 넘어간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사실 그 제조업 산업으로 가는 정책을 추진하긴 했지만, 몇몇 한계의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물론 실패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도하지 않는 편보다는 시도하다 실패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경쟁구도가 드물고 합작사에게 계속 기술적으로 의존하도록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기술의 도입 관점에서 저자는 이번엔 철강산업을 예시로 든다. 말레이시아는 일본제철이 이끄는 컨소시엄을 받아들였고, 검토하지 않고 신기술의 도입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공정을 무시하고, 철광성을 바로 고등급 해면철로 바꾸어서 직접환원철로 생산하는 신기술이었다. 결국 일본 컨소시엄은 신기술 적용에 실패하고 1987년 초기 프로젝트 비용의 1/3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반면 포스코는 똑같이 일본의 가이드를 받기는 했지만, 호주의 광산기업 BHP에 돈을 지불하고 일본의 엔지니어링 계획을 검토하게 했다. (3rd party 개념인 듯하다) 일본제철은 자동화 시스템을 권했지만, 한국인들은 기본적인 철강 제조 절차를 속속들이 이해하기 전까지는 수동 조작 시스템을 하겠다고 했다. 결국 기술의 도입은 수박 겉핥기식 배움인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움인지,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그것을 잘 가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프로톤(말레이시아 자동차사)과 미쓰비시의 합작사업은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추진한 합작사업이 전 세계의 신생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적절한 기술적 학습을 제공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두 협력사의 이해관계는 상충할 수밖에 없었다. p.231”


“현재 말레이시아는 20년 동안 대학까지 다녔지만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아서 이제는 원하는 경제 수준에서 살기에는 부족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마하티르는 1981년에 총리가 됐을 때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필요한 산업화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대학교육을 받은 교장의 아들인 그는 경쟁을 하려면 산업적 학습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빈농 출신의 박정희만큼 효과적으로 절차를 수립하지 못했다. p.237”


책은 이 이후로 금융과 중국에 대해 디테일하게 다룬다. ‘경알못’인 나는 금융에 대해선 그저 배우는 자의 입장으로만 읽었고, 전 세계 중에 내가 가장 잘 모르는 국가인 중국 부분도 그저 겸허하게 머리에 입력만 하는 수준으로 읽었다. 꽤 재미있는 부분인데 소화할 능력이 없는 나로선 그다지 할 말도 없고, 이제 슬슬 아이들과 놀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에 글을 접어야겠다. 참고로 나는 두 아이의 아빠이며, 주로 글을 쓰는 시점은 일요일 아침이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해, 아이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면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



여하튼 이 책은 참 흥미롭다. 맺음말도 ‘거짓말 배우기’다. 결국 공정한 구도 안에서 빈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러한 예도 없다고 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의 경제개발 과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3가지 요소로 성공의 비법이 간단하게 정리된다. 그 3가지 요소는 바로 가족농과 수출 중심 제조업, 그리고 이 두 부문을 뒷받침하도록 긴밀하게 통제되는 금융이다. p.389”

아울러 위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저자는 개발의 경제학은 육성과 보호, 그리고 ‘경쟁’을 요구한다고 한다. 무작정 육성과 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적절한 경쟁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말레이시아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수입차 관세 200%를 부과하며 자국 자동차 회사의 ‘육성’과 ‘보호’에 힘썼지만, 그로 인해 경쟁력 상실로 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 잘못된 공기업 독점의 예가 동남아시아에선 종종 보였고, 중국의 경우는 워낙 시장이 커서 각 공기업 별로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중국은 건설 관련 공기업만 China Railway, China Communications, China State Construction, 등등 상당히 많다) 결국 빈국들은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해야 성공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부국들이 홍보하는 ‘자유시장’ 경제학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한편 실제로 먼저 부유해지기 위해 필요한 개입주의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수많은 빈국들에게 지침이 될만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우리나라의 경우는 계속해서 그렇게 인위적인 경제정책을 쓰기엔 좀 어려운 감이 있다. 지난 시절에 대한 공과 과는 존재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는 잘 해내 온 케이스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의 해석을 사후 확증편향의 논리로 몰고 갈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나 책들이 많이 나온다면, 전 세계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겐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에게 반나절 정도 한국의 터널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나에게 몇 십분 동안 질문을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터널의 시공방법인 TBM과 NATM을 설명하고, 여러분 나라에 있는 터널도 다 비슷한 방법입니다 라고 했더니, 어느 개도국 공무원이 그러더라. “설명 고맙지만, 우리나라엔 터널이 없어요” 라고. 거 참 생각보다 세상은 많이 넓은 것 같다. 최소 수준의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은 더 힘써야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괜찮은 책이었다. 끝.


아시아의 힘;How Asia Works, 조 스터드웰 저, 김태훈 역, 프롬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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