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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Jan 13. 2020

제주에서 자연 느끼기

전지적 이모 시점 PART 3

아이들은 자연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하고, 풀을 좋아하고, 심지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떨어진 나뭇가지와 돌멩이까지도 좋아한다. 우리 조카는 길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획득한 나뭇가지를 한동안 아주 재미나게 가지고 놀며 어떠한 장난감보다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행동을 도심에서는 늘 느긋하게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깨끗한 옷을 입고 이쁜 신발을 신고, 그것들을 감히 망가트리는 자연의 것들을 쉽게 용납하기엔 우리의 삶은 필요 이상으로 깨끗하고 정돈된 곳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니도, 배려심이 넓은 엄마조차도 아이가 주워 온 땅의 물건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우린 늘 말한다. 그것은 더러운 것이라고 그래서 만지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어있는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시대에 태어난 나는, 컴퓨터와 핸드폰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고 보니 AI 컴퓨터와 함께 지내고 있는 빠른 변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은 늘 야외에서 자연과 함께 였다. 그래서 나의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 시절의 사진이다. 사진 속의 나는 흙을 입에 묻힌 채 거지꼴을 하고 있는 사내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그 사진에 대해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럴 때마다 놀러 나간 내가 밖에서 흙을 먹었는데 그걸 자신이 무슨 수로 말리냐는 쿨한 태도를 보인다. 그 모습을 정돈해주지도 않고 사진을 찍었던 엄마는 그것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세기의 나는 밖에 있는 흙으로 거한 한 끼 식사를 했는데 21세기의 조카에게는 바닥에 있는 돌멩이 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조카가 그때의 나처럼 자연을 즐기기엔 우린 너무 먼 길을 온 것일까?




자연을 즐길 줄 아는 4살

4일 동안 우린 우리가 세운 계획을 착실히 수행했다. 물론 별 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나마 있었던 계획들은 모두 조카를 위해 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늘 제주도에 와서 며칠을 지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 계획들은 정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기 보단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았던 것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린 남은 시간을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린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조카가 좋아하는 검은 모래 해변 공천포. 2019년 여름과 겨울.


이쁜 돌멩이를 찾고, 부드러운 모래를 만지고, 조카는 그냥 그거면 충분하다. 조금 더 일찍 자연으로 데려왔어야 했다. 여기서 우린 또 우리의 욕심을 깨닫는다. 어쩌면 이전의 일정들은 조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좋아했으면 하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4살

제주도에서 우리 모두의 컨디션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한 달 전부터 안 좋았던 엄마의 피부병은 제주도에서도 여전했고, 감기를 달고 왔던 조카의 감기는 낫지 않았고, 거기에 나와 언니도 제주도에서 감기가 걸린 것이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역시 섬의 매서운 바람은 무서웠다. 더 이상 야외활동을 할 수 없었던 우리 눈에 새로 생긴 롤러스케이트장이 포착됐다. 남을 일정을 온전히 조카를 위해 쓰자고 결심했던 우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도전을 선물했다. 4살의 아이는 롤러스케이트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하는 아이


우리 집안 여자들은 대체로 겁이 많다. 그래서 운동은 좋아하지만 레저를 즐기진 않는다. 하지만 형부를 닮은 조카는 여간해서 겁을 내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어린아이의 배포가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그런 악바리 근성은 이 제주도에서도 여전했다. 4살 아이가 도전하기엔 어려울 수 있는 스포츠지만 아이는 본인이 혼자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도전, 또 도전했다. 그리고 롤러스케이트장을 이틀이나 도전해서 결국 성공했다. 힘들거나 어려우면 금방 포기할 것 같았던 조카는 그렇게 스스로 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마지막은 바다

우리의 제주도 여행은 웬만해선 남쪽을 벗어나지 않는다. 간혹 서귀포를 중심으로 섬의 서쪽과 동쪽을 이동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협제나 세화 해변 같은 에메랄드 빛의 해변을 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런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바로 중문에 있는 색달해수욕장이다. 물론 성수기인 여름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해변이지만 그 성수기를 피한다면 한산한 바다를 볼 수 있다. 며칠 때 계속됐던 강추위가 서서히 풀리고 있기에 우린 마지막으로 이 색달해변을 찾았다.



4월과 7월, 12월까지 올 해만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조카는 이곳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래놀이가 아닌 이쁜 조개 찾기 놀이를 했다. 아무 제약이 없는 이곳에서 조카는 자유로웠다. 더러워질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몸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서 조카는 지겨워서 떠나고 싶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구속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렇게 편해진다. 이 순간은 제주도에 와서 계속 힘들었던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린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 일정을 편하게 바다에서 보냈다. 힘들었던 2019년의 제주도 안녕.


조카가 찾은 조개들




미래의 조카에게

안녕 어른이 된 조카야. 우리의 제주도는 이렇게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좋은 곳을 가고 예쁜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여행이자 일상의 한 부분이었지. 내가 별 다를 것 없는 제주의 한 부분을 기록했던 것은 이곳에 너가 이렇게 머무른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야. 매번 완벽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우린 너를 위해 최선을 다 했고, 너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 여행을 즐겼던 것 같아. 물론 우리가 항상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어찌 보면 어린 시절의 넌 우리의 계획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우린 이곳에서 이렇게 추억을 만들었고 난 이 여행의 추억이 지금, 너의 한 부분을 조용히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아마 우린 이 여행 뒤에도 수많은 제주도와 몇 번의 해외를 더 경험하겠지. 그게 몇 번이 되고 그중에 몇 번을 너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난 앞으로도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아마 지금의 너에게 이 4살 제주의 기억은 없을거야. 나도 4살의 기억은 거의 없으니깐. 하지만 난 너가 기억이 아닌 추억을 담고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추억을 통해서 너의 인생이 그리고 너가 빛나길 바란다. 물론 앞으로 1년간 그러니깐 너의 5살에 제주도는 없을 거야. 이 여행 이후로 우리는 1년간 여행 파업 선언을 했거든. 4살의 너는 어느 정도였는지 좀 알겠지? 하지만 1년을 여행이 없는 한 해로 보내면서 난 너와 더 많은 일상을 보내려고 해. 그리고 난 그렇게 많은 일상을 보낸 우리가 다시 가게 될 또 다른 여행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언제가 되든, 그리고 어디가 되든, 다음 여행도 잘 부탁할게. 그때까지 일상에서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자. - 2020년 늘 너만 바라보는 이모가.


제주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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