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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Mar 18. 2022

반 고흐의 초상

자신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다르다. 20대 초반, 첫인상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며 그 사실을 경험했다. 낯을 가리는 나의 모습이 상대방에겐 냉랭하게 보인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낯을 가리지만 첫인상을 의식하며 행동한다. 그 모습이 조금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누군가에게 차가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뭐 어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아니면 되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첫인상이 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좋은 일일까?


30대가 되고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은 선해진 분위기 덕분인지 요즘은 인상이 좋다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의식하며 행동했던 것 덕분에 인상이 달라졌고 사람들도 그것을 느낀 것이다. 몇 년 전 사진을 보면 얼굴은 똑같은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매일 보는 나의 얼굴은 익숙하지만 매년 달라지는 내 얼굴은 낯설다. 우리에겐 사진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있기에 이렇게 미묘하게 달라지는 얼굴을 기록하고 남길 수 있다. 덕분에 나도 몇 년 전의 낯선 나와 오랜만에 마주했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고흐의 자화상은 최소 35점이 알려져 있다. 젊고 어린 고흐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의 모습이 담겨있는 자화상을 통해서 우린 고흐의 일생을 추측할 수 있다. 귀한 자료인 셈이다. 하지만 고흐가 바라본 본인의 모습은 타인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고흐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고흐의 자화상에 담긴 그의 모습과 같았을까? 사람들이 바라본 고흐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번에는 타인의 눈을 통해 고흐를 봐야겠다.



By John Peter Russell

Portrait of Vincent van Gogh, John Peter Russell, 1886 / Van Gogh Museum 소장

호주의 화가 존 피터 러셀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이다. 반 고흐가 애착을 가진 그림이기도 하다. 한 손에 붓을 쥔 모습, 어깨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 실제 고흐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또 한 명의 고흐의 친구, 스코틀랜드의 화가 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은 1913년 회고록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반 고흐는 초췌한 이목구비, 엷은 갈색의 머리와 수염, 밝은 파란색 눈을 가진 다소 몸이 마른 작은 남자였다. 그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가 섞인 문장을 쏟아낸 후, 그의 어깨너머로 재빨리 상대방을 흘긋 쳐다보고, 말이 끝날 때 이 사이로 쉬익(쉿) 소리를 내는 기이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흥분했을 때는 약간 화가 난 것 이상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러셀이 포착한 이 표정이었다.' 하트릭은 러셀이 그린 이 초상화를 보고 그 어떤 고흐의 초상화보다 가장 정확하게 그려진 그림이라 말한다. 러셀의 초상에서 붓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또한 눈빛은 예리한데, 아마 화가의 시각으로 무엇을 연구할 때 이런 표정으로 그 대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림의 모델이 되는 순간에도 그는 마치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림은 여전히 인상파의 기법으로 표현됐지만 사진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사진이었다면 고흐의 강렬한 눈빛을 미처 다 담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담은 듯한 그의 눈빛은 화가의 손길로 붓을 통해 그림에 담겼다. 다른 예술가들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 어떤 초상화보다 당당하기에. 33살의 고흐는 생기있고 빛이난다. 고흐의 시선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신사적으로, 그저 점잖게.

러셀이 그린 내 초상화를 잘 보살펴줘. 그건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

1889년 10월 6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By Henri de Toulouse-Lautrec

Portrait of Vincent van Gogh, Henri de Toulouse-Lautrec, 1887 / Van Gogh Museum 소장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Café Le Tambourin'에서 압생트 한 잔을 앞에 두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고흐의 모습을 그렸다. ('Café Le Tambourin'은 고흐가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곤 했던 바(Bar) 겸 레스토랑이다.) 파스텔로 그려진 이 그림은 다른 초상화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따뜻하고 포근한 색감만으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지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의 모습과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정면이 아닌 측면이라는 점도 특히 신선하다. 우리는 그와 마주 보는 것에 익숙하다. 고흐의 자화상 덕분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 고흐의 모습은 새롭다. 높은 아치형 코, 들쭉날쭉한 붉은 턱수염, 파란 셔츠, 갈색 재킷을 입은 빈센트는 두 손을 움켜쥐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는 혼자였을까? 아니면 그의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있었을까? 혹시 고흐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레스토랑의 주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니가 그의 곁에 있진 않았을까? 똑바로 앞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빈센트는 이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34세의 반 고흐는 깊은 생각에 잠겨 앞을 응시한다.


By Lucien Pissarro

 Vincent van Gogh in Conversation, Lucien Pissarro, 1887 / Ashmolean Museum 소장

(* 특별히 이 글에서 형 반 고흐는 빈센트로 칭한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를 지칭하기도 하기에 혼선을 없애기 위함이다. 참고로 테오는 파리 사회에서 그의 성(Surname)인 반 고흐(Van Gogh)로 알려졌지만, 빈센트는 항상 그의 기독교 이름(Vincent)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우리에게 반 고흐는 형 빈센트를 지칭하는 말인데... 아이러니하다.)


프랑스의 화가 뤼시앙 피사로가 그린 빈센트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는 테오와 빈센트, 두 형제가 함께 그려진 유일한 그림이다. 사실 오른쪽 남자에 대한 확실한 신원은 남겨진 바가 없지만 빈센트의 동생인 테오가 가장 유력하다. 한때 파리의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이라고 추측되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가 '빈센트를 개인적으로 알 만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라고 쓴 편지가 발견되면서 제외되었다. 오른쪽 남자의 이목구비는 파리에 있는 빈센트의 예술가 친구들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비록 과장되게 희화화되어 있지만)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얼굴은 틀림없이 테오이다. 뤼시앙은 1887년 파리에서 두 남자를 스케치했다. 두 형제는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아 야외의 어딘가에 앉아있는 듯 보인다. 코트가 아닌 재킷을 보니 이때는 아마 여름이나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테오 앞의 곡선은 둥근 테이블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무릎에 신문지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오는 격식을 갖춘 탑햇(Top hat)을 썼고 빈센트는 그의 자화상에서처럼 부드러운 펠트 모자를 쓰고 있다. 동생 테오는 다소 방어적인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 그의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보아 아마 그들은 그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1887년 테오는 30살로 빈센트보다 4살 어렸다.


By Emile Henri Bernard

van Gogh, Emile Bernard, 1891/Van Gogh Museum 소장

프랑스의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그린 고흐의 초상화이다. 1891년 에밀 베르나르는 잡지 'Les Hommes d'aujourd'hui'에 고흐에게 헌정하는 짧은 전기를 쓰고 삽화를 그렸다. 고흐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였다.(이 글은 고흐의 첫 번째 전기이다.) 짧지 않은 그의 글에는 고흐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삽화는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작품 '고흐의 자화상'을 모작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림을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처럼 느껴진다. 강렬한 크로키 때문인지, 에밀 베르나르의 초상화에 더 강한 힘이 느껴진다. 에밀 베르나르의 눈에 비친 고흐의 인상은 이랬다. 굳게 다문 입, 화가 난 기분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 원작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 역시 이 삽화에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데 여기서 한 가지의 감정이 더 느껴진다. 바로 경외심이다. 15살이 어린 에밀 베르나르에게 반 고흐는 마냥 친근하고 편한 친구만은 아니었다. 선배로서 날카로운 비평을 아낌없이 이야기했는데, 그런 그는 때론 베르나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때론 깐깐한 예술가였다.

사람들은 그의 초상화의 눈에서 슬프거나 부끄러운 존재, 선하거나 사악한 존재에 대한 고백을 읽는다. 그러면 우리는 빈센트를 이해하고 그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세에 죽었다.

Les Hommes d'aujourd'hui 의 전기 중...

By Paul van Ryssel

Vincent van Gogh on his deathbed, Paul van Ryssel, 1890

닥터 폴 가셰가 그린 고흐의 모습이다. 가셰 박사는 반 고흐의 시신이 관으로 옮겨질 때까지 하루 이상 그의 옆을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고흐의 초상화를 두 점 남겼다. 왼쪽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 점이고, 오른쪽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한 점이다. 가셰 박사는 고흐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꼈다. 그가 떠나는 길에 한 마디 남기지 못할 만큼 크게 울어 혼란스러운 작별 인사만 더듬더듬 남겼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셰 박사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알았다. 고흐의 마지막을 남기는 것, 그것도 그림으로 말이다. 이 그림은 반 고흐의 가족에게 전해졌다. 초상화에 담긴 고흐는 초췌할 만큼 살이 빠진 얼굴에 훼손된 귀까지 노골적으로 그려졌다. 지칠 대로 지친 그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권총으로 상처를 입었고 며칠을 앓다 생을 마감했으니 마지막마저 편하지 못했다. 죽음마저도 절망적이었던 고흐의 마지막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겼다. 1890년 6월, 고흐는 폴 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1890년 7월, 폴 가셰 박사는 고흐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다.




고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림으로 남겨졌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흐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기도 하고 또 같기도 하다. 이 초상화들을 보면서 사람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빛이다. 러셀의 초상화와 베르나르의 초상화에 사로잡혔다. 그의 열정이 눈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반면 가셰 박사의 그림 속, 눈을 감고 있는 고흐의 모습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이 슬픔은 가셰 박사의 것이다. 나 또한 그의 감정으로 인해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친구이자 동지, 존경하는 예술가를 남겼다. 우리가 자화상을 통해 알고 있는 고뇌하는 화가의 모습이 아닌 조금은 편안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나는 이 그림들을 통해 고흐를 친구처럼 때로는 위한 예술가처럼 느낀다.  나도 언젠가 고흐의 초상을 그려봐야겠다. 과연 나의 그림에 그는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나는 마르고 악마처럼 창백했다.
- Vincent Van Gogh

* 고흐가 세상을 떠난  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를 덧붙인다. 그림은  마음에 들지만, 고흐가 사망하고 한참 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에서 본문에는 제외했다.

Portrait of Van Gogh, Archibald Standish Hartrick, 1913/ Van Gogh Museum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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