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철학자 - 우애령
2024년 5월 11일(토) BnJ의 제26회 독서모임.
이날은 문화의 날이었다.
국립극장에서 연극을 본 후, 와인바에서 진행된 독서모임.
이거 마치 유러피안 같잖아?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중간에 바꾸자고까지 했었는데, 최종 감상은 어땠어?
J: 초반의 감상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어요.
B: 그거 봐!
J: 그래서 나중엔 끝까지 읽자고 했잖아요.
B: 초반의 감상은 어땠길래?
J: 흠... 완전 초반 읽었을 때, 난 이런 남편이랑 살면 못 살겠다 싶었어요. 근데 언니는 막 되게 귀엽다고 하길래, 이 언니 되게 관대하다 싶더라고요?
B: 이 정도면 귀엽다고 생각했어. 옛날에 나온 책을 다시 재판한 책이고, 우리 부모님 세대 거나 부모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선배 세대 거나 그런 분들이니까. 그분들 감성에서 이 정도면 깨어 있는 사람들이고. 오히려 두 사람의 긍정적인 사고가 귀엽게 느껴졌어. 나라면 정말 화가 나서 뒤엎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그냥 웃어넘기시더라고. 그래서 행복한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싶기도 하더라고.
J: 사실 이 사람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고 책도 내고 교수도 한 분들이라 이 사람들의 인생을 감히 내가 평가할 것은 아닌 것 같고. 독서 모임의 취지에 맞게 오롯이 책으로만 평가하자고 하면, 킹링 타임용 책?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언니가 좋다고 했던 그 뒷부분에 아빠의 편지도 너무 좋았고, 뒤에 그림까지 넣은 동화도 너무 좋았고, 앞에 엄마가 쓴 내용도 되게 좋았는데 난 전반적으로 조금 조잡하다는 느낌이 좀 있었어요.
B: 왜? 어떤 면에서?
J: 한 책에 모든 걸 다 때려놓은 느낌? 뒤에 동화책도 그냥 동화책으로 따로 출판 됐다면 동화로서도 좋고, 아빠의 편지만 모아둔 책이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고, 앞에 엄마 소설책만 있었으면 그걸로도 좋았을 것 같은데...
B: 원래 이 책은 편지나 만화가 없는 책인데, 이번에 재판하면서 가족들의 삶이 더해진 거라서가 아닐까? 나는 모든 내용이 한 권에 있어서 이 가족한테 되게 의미 있는 책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알츠하이머일 거야. 혹시 알고 있었어?
J: 몰랐어요.
B: 이 작가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어. 그래서 엄마가 매일매일 기억을 잊어버려. 최근에는 인스타에 뭐가 올라왔냐면 '내가 썼던 책들 다 어디 있어? 하나같이 안 보여.' 하면서 자신이 썼던 책을 찾는다는 얘기가 올라오더라고. 치매환자들은 기억이 다 지워지는 와중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찾는다고 하잖아. 이 작가한테는 자기가 쓴 책들인 거지. 그 책들이 이제 잊히는 게 무서웠던 거야. 이 책은 그 시점에 나온 거고 그래서 이 가족들의 그런 서사가 여기 뒤에 덧붙여져 있고, 딸의 편지 같은 것들이 더 이 가족한테 되게 의미 있는 책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해. 책 후반부에 "나는 이미 이 안에, 이 가족 안에 들어와 있다. 얼마나 더 그립게 될지만 상상할 뿐이다."라는 말. 나는 그런 말들이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굉장히 감정이란 생각도 들었어.
J: 그런 비하인드를 듣고 보니 책이 좀 달리 보이긴 하네요. 이 책을 읽을 다른 저자들도 사전에 그런 내용을 알고 보는 게 좋은 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언니가 말한 면에서 가족 간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행복한 철학자가 멋있는 아빠였고, 그런 아빠를 감당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가족으로 완성된 집.
B: 휴. 다행이다. 진짜 유쾌한 철학자였어.
J: 두 부부가 연애할 때 썼던 편지가 짧게 나오는데,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맞아. 문장 안에 쓰인 단어부터가 몹시 지적이고 적절해. 예를 들면 어른들은 특히나 서양 우월주의 같은 게 있잖아. 근데 그 와중에 내 딸의 남자친구가 외국인이고 아시아계, 태국 남자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콘에게도 지대한 안부로 전한다." 하면서 쓰는 그런 문장을 읽어보면, 딸이 이 남자를 만나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이제 알릴 수 있는 거는 다 이렇게 편견 없고 넓은 시야를 가진 부모 아래 자랐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자기 자아와 행복을 찾는데 편견이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
J: 이 철학자가 되게 고생했잖아요. 좋은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어머님이 아이들 키우려고 고생했고, 돈 없는 와중에 유학도 갔고, 그러니까 결코 이 사람이 평탄하게 철학자의 길을 걸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남자가 교수가 되고 와이프도 소설을 쓰면서 나중에는 그냥 부유해지는 게 배부른 사람의 이야기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약간은 모순 같다는 느낌도 좀 들었어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배부른 소크라테스인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이 사람이 여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은 다 먹고살 걱정 없으니까. 그냥 배부른 소리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초반에는 들었거든요. 아파트에 오리를 데리고 와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안하무인 한 태도처럼 느꼈거든요.
B: 안하무인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을까? 지금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을 거고.
J: 그게 철학자의 시각으로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그 사람 때문에 고통받았던 이웃의 입장으로 본다면 '자기가 철학자면 다야?' 약간 이런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B: 근데 그 일은 그 시대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 지금 같았으면 민원이 그냥 그렇게 부드럽게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아. 지금이면 바로 민원 넣고 경찰서 오가고 막 이랬겠지.
J: 그냥 그런 부분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B: 난 또 이런 생각도 했지. 역시 이번에도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구나.ㅎㅎㅎㅎㅎㅎ
J: 책 중에 가장 좋았던 건 뒷부분의 아빠 편지였어요.
B: 아빠 편지 너무 좋지. 나도 내 아이가 그런 아빠를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J: 그런 아빠일 수 있잖아요.
B: 아닌 것 같아.
J: 딸이 생각하는 아빠는 어떨지 모르지만 언니가 그런 엄마가 되어주면 되지.
B: 그래야 될 것 같아.
J: 내가 옛날에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조카랑 마지막으로 갔던 제주도를 브런치에 글로 남겨놓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조카가 커서 내가 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보여줘야겠다고 해서 편지로 남긴 게 있었어요. 조카도 나중에 내 편지를 보면 이런 아빠의 편지처럼 감동하는 조카로 클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B: 연세가 좀 있는 사람분들 특유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런 고즈넉한 느낌의 그런 문체가 너무 좋아.
J: 근데 결국에 이 사람도 그럼 속세에 찌든 철학자는 아니었던 건 맞지. 노년에는 고향이었던 집에 내려가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려고 하잖아요. 물론 그것 때문에 괴로웠을 학생들도 안타깝긴 했지만요.
B: 나는 이 작가가 참 대단한 것 같아. 책의 저자이자, 철학자의 아내는 사실 굉장한 부자였잖아. 성인이 될 무렵에 가세가 기운 것뿐이지. 굉장히 유복하게 자란 사람인 거지. 그런 사람이 배고픈 철학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J: 되게 대장부 같은 여자 같아요. 미국 유학도 따라가고 거기서 애도 낳았는데 거기서 애도 혼자 키우고 이러면서 똑똑하고 당차고 대단한 여성이지.
B: 그래서 이 부부의 티키타카가 너무 재밌어.
J: 난 남자가 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B: 나도. 그래서 추천 도서를 여기 나온 책으로 하려고 했어.
J: 이 책을 보니까 이렇게 우아한 사람으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되게 우아하고... 고풍스럽다기보다는 뭔가...
B: 기품 있어.
J: 맞아요. 그렇게 늙고 싶어졌어. 카톡이 있어서 언제든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는 시대에도 길게 이메일을 보내는 그런 기품?
B: 그리고 엄마가 지금 치매라고 그랬잖아. 엄마의 치매를 대하는 가족들의 자세도 되게 좋은 것 같아.
J: 다 배운 사람들이겠지.
B: 맞아. 근데 지식을 습득했다기보다 그런 삶의 지혜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잘 배운 사람들인 것 같아.
J: 철학자 아빠와 소설가 엄마였으니 얼마나 잘 키웠겠어요. 그래서 정말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B: 맞아.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인들도 얼마나 인문학적 사유가 깊은 분들이었겠어. 그래서 그런지, 큰아들이 써넣은 코멘트도 굉장히 좋더라고.
벗어나려 해도 멀어질 수 없고, 다가가려 해도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다. 나는 이미 이 따듯하고 마법 같은 이야기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그리워질지 가늠할 수 없을 뿐... - 멀지만 가까이 사는 큰아들 진우
B: 나는 그 엄유진 씨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파콘이 최근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 일본어를 왜 배우기 시작했냐면 자기가 수년간 연마한 한국어를 어린 딸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따라잡는 걸 보고 위기의식을 느껴서 뭐라도 더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일본어를 하고 있대. 진짜 재밌고 사람들이지?
J: 나는 그것도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세탁실 옆의 창고에서 고생하면서 공부를 해서 자기가 나중에 서울에서 집을 사면 가장 큰 방을 서재로 해주고 싶었고, 또 실제로 만들어줬던 것. 그것을 보면서 참 멋있는 여자라는 생각을 했죠.
B: 나는 한인이 별로 없는 아파트에 살면서 애를 키우는 그 용감함과 세탁실 옆에 문도 없는 창고를 빌려서 자기만의 서재를 꾸며서 공부한다는 그 열정부터가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기찻길 옆에 앉아 있어도 공부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J: 맞아요. 그러니까 그 시대 때 유학을 갔겠죠. 멋있는 엄마, 아빠야. 이런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될 수 있을까?
B: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J: 공부랑 상관없다며 방금 전에!
B: 삶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지식을 쌓는 게 아니고.
J: 맞아요.
B: 문장력 2.5점 + 구성력 2.1점 + 오락성 2.7점 + 보너스 1점 = 총 8.3점
J: 문장력 2.2점 + 구성력 2.3점 + 오락성 2.5점 + 보너스 1점 = 총 8.0점
B: 엄정식 - 당진일기 : 행복한 철학자와 그의 오리들이 살고 있는 당진의 여유로운 풍경이 궁금하다면?!
J: 영화 '리틀 프레스트' : 고향에 내려가서 사는 행복한 철학자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