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인간의 타락 서사

제로섬게임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y 영화편애


1. 우아한 표현주의적 특성들


<어쩔수가없다>는 가족영화이면서, 노동영화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노동영화는 리얼리즘 미학과 맞닿아있다. <자전거 도둑>도 그렇고, 켄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브레이크>와 같은 영화도 그렇다. 그런데 <어쩔수가없다>는 노동영화와 양식적으로 화려한 형식주의의 만남으로 유니크한 결과물이 탄생하였다.


대체로 사실주의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재현하고자 한다. 영화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지 않고, 영상미가 지나치게 아름답게 찍기보다는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현실을 재현하고자 한다. 주로 사회의 하층계급을 다루고, 도덕적 문제들을 탐구한다. 서사도 느슨하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형식주의자의 영화는 스타일 면에서 화려하다. 종종 표현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형식주의 영화에서 현실은 양식화 되고, 테크닉을 최대한으로 사용한다. 영화의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는 대부분 형식주의자다. 영화 해석에 있어서도 형식과 미장센이 핵심에 놓여있기에 진정 감독의 영화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 중간 어디 쯤에 있는데 박찬욱감독님의 영화는 형식주의쪽으로 강하게 쏠려있기에 일반관객들이 낯설어하고, 호불호가 있으면서도, 평론가나 이론가에게는 해석의 즐거움을 안겨다주고 창작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앙드레 바쟁이 말했듯이 영화가 ‘어떻게 말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2. 타락의 서사


영화는 타락의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 만수 가족의 오프닝 씬은 마치 죄가 있기 전의 에덴동산과도 같은 완벽하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온가족이 즐겁게 식사를 하는 장면이 완벽한 낙원처럼 그려지고, 만수는 대사를 통해서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시, 만수가 일하는 회사인 제지공장에서 해고통보를 받게 된다. 첫씬의 행복한 집 풍경의 장면과 그 다음의 공장의 정신이 없는 풍경과 시끄러운 사운드는 충돌을 일으키고 대비를 주는 점이 인상깊다.


만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문득 자신의 라이벌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과 커리어가 유사한 범모, 시조, 선출이 제거 대상 후보이다. 만수는 장속에 유물처럼 보관되어있는 아버지의 유산인 권총을 꺼낸다.

그가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권총은 ‘원죄의 상징’과도 같다. 그 총은 그의 아빠가 살인을 할 때 사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만수의 살해 대상으로 선정된 3명은 만수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면서, 더 중요하게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동료이기도 하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몇 명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한 동료인데 자신이 살기 위해 살인을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을 하기 전에 그들과 마음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기에 만수의 행동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런 만수가 처한 딜레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자빠트려야하는 구조가 점점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를 경쟁자로 보아야하는 구조가 사실 입시 교육 시스템부터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더욱 극복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3. 소외효과


만수가 살인을 실천할 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연출을 한 점이 인사깊었다. 이런 연출이야말로 박감독님의 사려깊은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리원이 헤드폰을 끼고 TV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엄마가 뒤로 잡아끄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감독의 ‘거리두기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영화는 관객들이 스토리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을 의도하고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감을 조율했다는 것이 놀랍다.



4. 제로섬게임으로써의 한국 사회


이 영화는 서바이벌과도 같은 지금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삶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고 자신과 라이벌로 여겨지는 사람을 제거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직장 안에서도 그런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점점 프리랜서가 많이지다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만수처럼 총을 들고 살인을 하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경쟁해야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놓여있는 현대인들의 삶이 만수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잔혹한 살인을 하기보다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처리를 하는데, 만수의 행동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만수가 시조를 죽일 때에 아들 역시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빠와 아들의 범행이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할아버지의 원죄가 계속 되물림되고 있음을 영화적으로 표현해 낸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밝혀져 결국 경찰서에 오게되는데 만수는 또 한번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친구의 약점을 잡아서 친구의 아들이 범죄를 주도했다고 거짓 진술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대화씬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자주 보여주는 숏이 인상깊다. 마치 두 사람의 어두운 내면이 외현으로 드러난 듯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5. 범죄 이후의 삶, 과연 해피엔딩일까?


모든 살인이 끝나고, 심지어 만수의 범행을 범모가 뒤집어 쓰게 되면서 용의자 신분을 벗어나게 된다. 이 때 하늘은 첫장면과 달리 흐린 하늘이다.

그리고 사랑스런 딸의 첼로 연주를 처음으로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리원은 개 두 마리를 관객으로 첫 연주를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영화는 리원의 성장을 의미있게 다룬다.

리원의 순수함은 만수와 대조를 이룬다. 그녀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만수가 떠주는 밥을 입에 무는 모습이나, 첼로에 열중하는 모습, 음악을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게 해피엔딩이 되어버리면 만수의 살인이 정당화가 될 위험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살으라는 것인가? 라고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단순히 희망적 결말로 묘사하지 않는다.

첫씬에서 보여준 이 가족의 모습은 그 자체로 완전한 행복을 보여주었다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위장된 행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당에 시체가 있는 집에서의 삶이 그들을 매번 불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수는 다시 제지 공장의 관리자로 일하게 되는데 작업 풍경이 처음과 다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인공지능이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은 만수 혼자 뿐이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외롭다.

사실 업무 첫날이야 모든게 신기하고 신나겠지만, 그렇게 어둠 속에서 수년을 살아간다고 하면 그리 행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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