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길에 면허를 따야겠다는 강력한 생각이 들었다.
그간 상상만으로도 무섭길래 (범퍼카도 무서워하는 인간) 상상 시도조차 못했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생애 최초로 무섭지가 않았다. 이때다 싶어 면허 학원을 검색하고 요즘 학원비가 얼마인지 후기들을 들춰봤다.
그날은 우리 부부의 기념일이기도 했다. 남편과 외식을 하다가 '여보 나 면허 따려고!' 포부를 밝혔고 '주말에 같이 등록하러 가자!' 제안을 했다. '주말까지 언제 기다리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자 남편이 '지금 갈까?' 하는 거다. '와 나는 왜 그 생각은 못했지?' 파워 J유형 인간은 저런 즉흥적인 생각을 잘 못하는 것 같다. 파스타를 부랴부랴 욱여넣고서 학원에 전화를 했다.
- 저...혹시 지금 가도 등록할 수 있나요?
- 앗 10시에 마감인데 어디쯤이세요?
- 이제 출발하려는데 여기서 차로 20분 정도 걸려요!
- 그러면 기다릴게요 오세요!
- !!!!!
통화를 마치자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이런 추진력 나답지 않아. 남편 차를 타고서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은 밤에도 빛이 아주 훤했다. 그 시간에도 기능시험장에서 교육을 받는 차량들이 보였다. 흥분한 나는 콧바람을 연신 몰아쉬며 번호표를 뽑았다.
- 학원 등록하려고 하는데요!
- 아! 전화하신 분 이신가요? 필기시험은 보고 오셨나요?
- 헐 아니요! (쫄음)
아뿔싸. 필기시험 보고 학원 등록하는 거였나? 나 집에 가야 되나? 놀란 나를 두고 데스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학원 튜토리얼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등록하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었다. 필기시험 전 교통안전교육을 학원에서 먼저 들을 수 있기 때문. 반대의 경우 국가시험장에서 교육 1시간을 들어야 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필기 합격자도 학원 등록시 교육 3시간은 의무이기에 저 1시간을 아낀 셈이다. 세상에! 귀한 시간을 벌었다니! 벌써부터 뭔가 술술 풀리는 기분이야! (아직 아무것도 안 함)
코로나 이전에는 토요일에도 필기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평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선 그 주 토요일에 안전교육을 듣기로 하고선 계획을 세웠다. 시험용 사진 찍는 김에 여권도 갱신해야지! 다음 주에 반차를 쓰고 시험을 본 다음 근처 구청으로 가서 말이야! 어쩜 여권도 딱 지금 갱신기간이야!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초심자의 패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그날은 우리가 처음 연애를 시작한 날이었고, 그러니까 자동차와의 만남을 시작하기에도 꽤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사 온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주특기인 '과잉 의미부여'를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 앞으로 나의 시야는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이 될 수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이게 될 새로운 시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