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만두 Sep 13. 2022

운전면허와 함께 배운 것들


면허를 딴지 50일 정도가 지났다. 새로운 것을 배운 다는 건 시야가 그만큼 넓어지는 일이 확실했다. 운전을 하며 틈틈이 적어두었던 자투리 감정들을 모아봤다. 



# 선생님이 이런 말을?

첫 기능교육 때 일이다. 강사님이 브레이크 밟는 법을 설명하며 "밟는 둥 마는 둥 해보세요"라고 했다. 저 말이 내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무언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라>는 선생님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가르침도 있다니! 


브레이크는 한 번에 세게 밟으면 차가 급하게 멈춘다. 급정거를 하게 되면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가 등을 세차게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서서히 밟으며 속도를 줄여 정차하는 것이 핵심이다. 강사님의 멋진 표현에 단박에 이해가 됐고 이후에도 나는 브레이크 하나는 기똥차게 잘 밟는 학생이 되었다. 



# 강점이 약점이 된 순간 

나는 뭐든지 미리 해야 안심하는 성격이다. 약속 장소에 10분이던 30분이던 일찍 도착하는 게 좋고, 회사일이고 학교 시험이고 교통편이고 미리 알아보는 게 마음 편하다. 부랴부랴, 허둥지둥은 내 사전에 없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은 목줄이 없는 사냥개가 쫓아오는 것과 동일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이런 성격 덕을 많이 봤다. 미리 준비해서 나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미리 해서 나쁠 일이 뭐가 있어?


그래서 내 좌우명은 '유비무환'이 되고 만다. 그런데? 엥? 운전을 배워보니 미리 하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나는 차선 변경을 빨리해버리는 학생이었다. 이다음에는 좌회전이니 미리미리 좌측 차선으로 바꿔놓자. 그 성격이 어디 안 갔다. 하지만 차선이란 것은 미리 바꿔놨다가는 전혀 다른 길이 나와버렸다. 맙소사. 미리 하는 게 안 좋은 일도 있다니. 운전은 정말 다른 세상이야. 



# 양보가 양보가 아니었음을

외길을 걸을 때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보고 먼저 지나가세요 헤헤. 하는 건 양보다. 하지만 자동차는 아니다. 먼저 가 주는 게, 잽싸게 속도를 내서 피해 주는 게 정답일 때가 있었다. 오히려 배려랍시고 서 있거나 천천히 가는 게 민폐였다. 이건 또 무슨 세상이람. 운전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신념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다. 


출근 길마다 건너는 작은 횡단보도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씽씽 달리는 차들 먼저 보내준답시고, 쁘띠 횡단보도 앞에 곧잘 서있었다. 그때마다 차들이 안 가길래. 아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나보다! 감사해라! 양보에 목례를 하며 그 횡단보도를 건너고는 했었다. 이제 봤더니 나는 우회전을 앞둔 차량에게 건널지 말지 모르는 사람이었던 거다. 요즘은 그래서 잽싸게 그 길을 건너고는 한다. 그동안 얼마나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는 보행자였는지 생각하면서. 나 딴에는 양보였는데 전혀 아니었구나. 민망해진다. 





면허학원을 나와 겪어본 도로는 정말 실전이었다. 아직 면허증에 잉크도 안 마른 초보운전이지만 다채로운 감정을 겪은 것만으로도 큰 걸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이렇게나 다른 세상을 만나다니.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늘었다. 아니 배움이란 표현은 좀 거창한 것 같고, 안 해본 걸 두렵다고 피하지 말고 '하는 둥 마는 둥'이라도 해봐야 하는 이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범퍼카도 무서워하는데 면허 딸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